• 즐겨찾기 추가
닫기
은밀하게 조작된 오월 역사…신군부 집권욕망 ‘원흉’

[위기·기회의 갈림길 5·18] ③ 군 기관 은폐·왜곡 사건
조사위, 80위원회 등 5개 단체 분석
광주사태 진상조사 보고 왜곡 밝혀
‘배후조종 가두시위 변질’ 등 정황
신군부 정당화 활동 경위 조사 부실

2024년 05월 16일(목) 20:09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을 감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왜곡했다는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지만,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왜곡의 근원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왜곡·조작 경위를 규명하지 못한 것으로, 당시 정부에 의해 은밀하게 조작된 5·18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은 향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게 됐다.

16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조사위는 5·18에 대한 은폐, 왜곡, 조작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80위원회, 육군대책위원회, 511연구위원회, 보안사 511분석반의 결성 경위와 활동 내역 등을 분석했다.

조사위는 5·18 은폐·왜곡·조작과 관련된 인물 47명과 42개의 기록물 등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조사결과,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의 집권욕망이 5·18 왜곡 담론의 원천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가해자들은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악성 유언비어와 불순세력의 선동에 의해 시위가 과격화됐고, 무력진압과 인명피해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들었다.

1985년 총선 이후 5공화국 정권은 수세에 몰리며, 5·18 진상규명 요구가 사회전반으로 고조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안기부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 육군본부, 치안본부까지 망라한 범정부 차원의 ‘80위원회’라는 기구가 조직됐다.

1988년에는 신군부의 집권 욕망에 5·18 왜곡이 극에 달했다.

노태우 정권의 ‘육군대책 위원회’, 국방부의 ‘511연구위원회’, 보안사 ‘511분석반’은 모두 1988년 국회의 5·18진상규명을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5·18 청문회에선 참가군인들의 체험수기가 변경됐고, 증인들도 통제돼 발포명령과 지휘체계 등 핵심쟁점을 규명하지 못했다.

조사위는 이번 진상규명 작업을 통해 5·18 이후 신군부가 주도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광주사태 진상조사 보고’에도 은폐·조작이 있음을 확인했다.

보고서에는 5·18 당시 불순재야 세력의 배후조종을 받은 전남대와 조선대 등 학생 1만여명이 정치일정 단축 등을 외치는 가두시위로 변질됐다고 기술했다.

1980년 5월 20~26일에는 시민까지 시위에 합세해 폭동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방화·무기탈취 등을 자행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27일 계엄군이 진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황보고에선 광주 소요 선동을 위해 ‘김대중 별동대 조직 광주침투’라고 조작했고, 5월 19일 광주고 앞 발포는 11공수여단 장교가 아닌 불순세력의 행위로 왜곡하기 위해 ‘무성권총으로 사격’으로 왜곡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은폐·왜곡·조작’에 관여한 조직과 관계자에 대한 부실 조사 등으로 결성 시기와 경위, 활동 내역 등을 밝히지 못했다.

1988년 결성된 육군대책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는 활동과정에서 회의 자료와 관계자들의 메모까지 기록으로 남겼지만, 조사보고서에선 찾을 수 없었다.

육군대책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의 경우 활동과정에서 회의 자료, 관계자 메모까지 기록으로 남겼으나 조직 활동 시기조차 명확하게 특정하지 못했다.

대인조사 인원 47명 중 실무자 조사는 11명 뿐이었으며, 80위원회의 경우 실제 44명이 활동했지만 조사위는 단 2명의 관계자를 조사하는데 그쳤다.

보고서 작성 실무자는 △제5공화국전사 2명 △광주사태초안 0명, △광주사태와 유언비어 0명 △광주사태의 실상 0명 △윤성민 장관의 국회 보고자료 0명 △국회 광주청문회자료 9명으로, 진상규명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전원위는 평가했다.

은폐·왜곡·조작 사건에 대한 실체를 분석하는 조사도 미진했다.

조사보고서엔 ‘전투상보, 상황일지, 회의록 등 수많은 군의 1차적인 작전관련 문서의 원본을 왜곡·변조·폐기했다’고 기술했지만, 어느 부대의 전투 기록인지 사례를 제시하진 않았다.

전원위 위원들은 “변조 지시가 실제로 어떻게 실행됐는지 파악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지만 관련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조사를 수반하지 않은 주장과 결론은 또 다른 왜곡이 될 수 있다. 기록물 작성 시 어떤 의도성과 고의성을 가졌는지 실무자들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