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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 항쟁의 기억…“허위 보도에 분노, 죽을 고비도”

[오월 그날, 못다한 이야기] ④ 5·18 가두방송 김정업씨
광주 MBC 화재사건 직접 목격
계엄군 시민들 모이자 셔터 닫아
장갑차·총기 탈취 후 항쟁 참여
동구청 옥상 저격수에 죽을뻔

2024년 05월 27일(월) 19:20
1980년 5월 시민군으로 활동한 김정업씨
“전두환이 광주시민 절반을 죽인다는 소문에 화가 나 시민군이 됐어요.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거리 방송에 나서게 됐습니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도심 곳곳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거리 방송에 나섰던 김정업씨(63)는 10일간의 항쟁 기억을 떠올렸다.

김씨는 “5월 17일 전두환이 광주로 향하는 계엄군에게 시민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졌다”며 “당시 광주역 앞에서는 시민과 계엄군 사이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당시 길거리에서 투석전을 지켜본 김씨는 계엄군의 진압이 시작되자 집으로 급히 대피했다.

계엄군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잡기 위해 건물 구석구석을 헤집고 돌아다녔고, 김씨의 집 안까지 들어왔지만 다행히도 숨은 장소가 발각되지 않아 계엄군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집 내부에 라디오 40박스를 겹겹이 쌓아놓은 뒷공간을 확인하지 않고 다른 장소로 수색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당시 언론은 광주시민의 피해는 보도하지 않고, 광주에서 불순분자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허위 보도를 했다”며 “계엄군들이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광주MBC 앞으로 모이자 건물 안에 있던 계엄군들이 즉시 셔터를 내려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5월 20일 오후 10시께 광주MBC 건물 뒤쪽에서 시작된 불기둥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고, 건물이 불타는 동안 건물 주변에 광주시민들이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집단 발포가 있던 5월 21일 김씨는 10여명의 항쟁 동지들과 아세안 자동차(당시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장갑차를 확보했고, 화순으로 넘어가는 너릿재의 한 검문소에서 경찰들이 소지한 총기 10점을 가지고 광주로 복귀했다.

김씨는 “당시 검문소에 있던 경찰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시민들에게 총을 가져가라고 했다”며 “총과 차량을 탈취한 시민군은 양동시장에서 주먹밥과 과일 등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고, 광주역과 금남로 등 시내 곳곳에서 계엄군과 전투를 이어갔다”고 강조했다.

당시 광주 시내를 순찰하던 김씨는 옛 전남도청 분수대에 여성의 가슴을 도려낸 시체를 널어놨다는 소문을 접했고, 이 사건으로 시민들이 또 한 번 크게 분노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하루는 장갑차를 몰고 금남로를 향해 돌진하는데 동구청 옥상에서 저격수가 총을 쏴 죽을 뻔했다”며 “다행히 방탄유리에 맞아 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5월 23일 계엄군 작전구역 인근을 순찰하던 중 시동이 꺼져 급하게 시동을 켜다가 손가락 한 마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병원에 가면 계엄군에 붙잡힌다는 소문을 듣고 상처 부위를 옷으로 칭칭 동여매고 대인동의 한 외과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문은 닫혀있었고, 치료 시기를 놓친 그는 결국 손가락 상처 부위를 절단했다.

김씨는 또 계엄군의 외곽봉쇄로 5월 17일부터 27일 새벽까지 계엄군의 눈을 피하며 쌀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27일 계엄군이 광주에서 외곽 이동을 허락해줘 10여일 만에 순천으로 향했다”며 “순천시민들이 ‘실제로 폭도가 있었냐’ 등의 질문을 했고, 광주에서 폭도를 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양평 20사단에 1년 후인 1981년 7월 입대를 했다”며 “당시 상병들의 군복에는 ‘극난 극복기념 리본’을 달고 있었고, 광주에서 왔다고 하니 폭행을 일삼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매년 5월이 되면 다른 기분이다”면서 “80년 5월을 함께한 항쟁 동지들이 많았다면 광주시민들이 많이 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불의를 못 참는 광주시민의 대동정신 DNA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 것에 뿌듯하고 세계 어디를 가던 ‘우리는 광주시민이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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