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소방차 전용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볼 때마다 화재라도 발생하면 큰일이 나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1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의 한 아파트. 아파트에 진입한 한 택배 차량이 ‘소방차 전용구역’이라고 쓰인 공간 한가운데 멈췄다.

운전석에서 내린 택배기사는 자신이 주차한 곳이 아파트 내 지정된 소방차 전용구역이라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물칸에서 택배를 내렸다. 택배기사는 차량을 그대로 주차해 놓은 채 아파트 여러 동을 돌아다니며 택배를 운반했고, 20여분이 지나서야 다른 장소로 차량을 이동시켰다.

아파트 주민 이모씨(25)는 “아파트에 택배 배송 차량이 오면 항상 소방차 전용구역에 차량을 세운다”며 “택배기사는 택배를 잠깐 놓고 곧바로 이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같은 날 오후 8시께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퇴근 후 귀가한 입주민들은 주차장 빈자리를 찾아 차량을 주차하기 시작했고,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다 보니 주차공간이 협소해 금세 가득 찼다. 뒤늦게 아파트에 들어온 차들은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수십여분 동안 아파트를 돌아다녀도 주차공간을 찾지 못하자 결국 소방차 전용구역을 무시한 채 이중주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민 김모씨(46)는 “아파트가 오래돼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밤마다 소방차 전용구역을 가리지 않고 이중주차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잠자는 동안 화재가 발생하면 대응이 늦어져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씨는 이어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을 개정했지만, 일부 아파트에만 적용된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광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개정된 소방기본법에 따라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하거나 물건을 쌓는 등 방해행위를 하면 1차 50만원, 2차 이상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처럼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 소방차 전용구역에 대한 과태료 부과가 가능해졌음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방기본법 시행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과태료 부과 등 법적 제재가 불가능해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광주지역 100세대 이상 아파트 836곳 중 신고가 가능한 아파트는 28곳(3.3%)으로, 대다수 아파트가 적용대상에 제외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3년간(2022년 6월~2024년 6월) 불법 주정차 문제로 접수된 민원건수는 총 2,010건이었지만, 이중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214건에 불과했다.

조선대학교 소방재난관리학과 이윤하 교수는 “화재 발생 시 피해를 보는 것은 해당 아파트의 주민들이기 때문에 법을 개정해 소급적용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며 “불법 주정차의 주요 원인은 부족한 주차구역이기 때문에 지자체도 공영주차장 운영을 확대해 지난 2018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 주민들에게 우선권을 제공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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