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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생 35년’ 배우 윤 희 철
2014년 06월 20일(금) 00:00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는게 연극이죠”

35년 연극무대 오롯이 지킨 광주연극 산 증인
연극인생 기념 ‘죽음과 소녀’ 연바람서 공연중

지난 1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동구 장동 씨어터 연바람에서는 지역에서 의미있는 연극 한 편이 공연되고 있다. 광주 토박이 연극인 윤희철(55·극단 드라마스튜디오 대표)씨의 연극인생 35년을 기념하는 공연 ‘죽음과 소녀’(아리엘 돌프만 작)가 그것이다.
열악한 지역 연극계에서 선 굵은 연기로 끊임없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이번 공연에 대해 “기록이라는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개인보다는 연극이라는 전체 맥락에서 한 분야의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광주에서 35주년 기념공연을 하면 나를 시작으로 연극이라는 분야가 지역예술에서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공연 연습이 한창인 지난 주말인 14일 그의 공연작업실을 찾았다.

털털한 서민 연기에서부터 장군 등 묵직한 연기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출연한 작품만도 150여편. 지역 소극장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그는 어떻게 연기에 빠지게 됐을까.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함평에서 근무하시던 시절, 함평 문장에 영화관이 한 곳 있었는데 방학이면 이곳에 내려간 그는 아버지 덕에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1~2편씩 상영 프로그램이 바뀌곤 했던 터라 한달이면 보통 6~7편은 감상할 수 있었지요. 영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영화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너무 완고했던 아버지께는 말도 못꺼내고 고교시절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영화사 오디션을 보고 기획사를 찾기도 했단다.
KBS 탤런트 시험에도 낙방하는 등 5~6번 고배를 마시던 그는 아버지 몰래 서울의 모 대학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1차에서 떨어지고 광주에 있는 공업전문대학에 진학했는데 여기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연극반 모집 안내를 보고 친구와 1, 2번으로 나란히 지원했습니다. 이 때부터 학교공부는 아예 담싸고 연극반만 다녔고요. 광주에도 프로극단이 있다는 것을 그때 선배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당시 광주에는 극단 Y, 시민, 예후 등이 있었다. 극단 Y에 들어간 그의 첫 데뷔무대가 1979년 6월 공연한‘화가 이중섭’이다.
이중섭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는 이중섭의 예술정신을 이해하고 물심양면 돕는 선한 캐릭터였고, 그가 연기한 ‘환’은 이중섭의 예술을 오로지 잇속으로만 보고 이용하려는 악한 캐릭터였다.
첫 데뷔작이 악역이었는데 그 이미지 때문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아픔이 있었다고 그는 웃으며 털어놨다.
1981년 전투경찰로 군에 입대한 그는 운 좋게도 군대 안에서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탤런트이자 배우인 이일재씨가 동기로 들어왔고 연극영화과 출신 고참이 있어 셋이 함께 단막극을 만들어 군대 행사에서 공연을 했다.
그가 제대하기 직전에도 신병이 들어왔는데 서울예대 영화과에 재학중이던 학생으로 인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연극에 미쳐 있었다”며 그는 웃었다. 그가 제대하기 직전 광주에 전국 최초 시립극단이 창단됐고, 제대후 그는 바로 시립극단에 들어간다.
극단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연극을 직업으로 삼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지만 우여곡절 끝에 시립극단이 결국 해체되면서 그는 서울로 상경해 7년여간 극단생활을 하게 된다.
“광주서만 계속 연극을 했던 선후배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기억이다”고 그는 말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했던 작품 모두 다”라고 말하는 그는 “어쨌든 재미있었고 모든 것을 다 걸고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내게는 다 똑같은 의미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몇 작품 꼽아달라고 하자 시립극단 시절 ‘충장공 김덕령 장군’에서 외모 덕에 김덕령 장군 역을 꿰찼다며 웃었고, 순천시립극단시절 뮤지컬 사운드오브뮤직의 잘생긴 폰트랍 대령 역도 해봤다며 자랑했다.
그는 전국연극제에서 2번의 연기상을 받았다. 2006년 ‘깡통꽃’과 2011년 ‘막차타고 노을보다’ 두 작품에서다.
광주에서 전국연극제 2회 수상자는 극단Y 대표인 윤미란씨와 윤희철씨 두 사람 뿐이다. 1회 수상자도 5~6명 뿐으로 지역에선 전국연극제 본선 상을 받기란 힘든 편이다.
“지역 연극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 전국연극제에 나갈 때는 극단 차원 뿐만 아니라 광주라는 대표성을 갖고 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현재 씨어터연바람에서 35년 기념공연 중인 ‘죽음과 소녀’는 그가 1979년 ‘화가 이중섭’으로 데뷔한 극단Y와 함께 꾸며 더 의미 깊다. 연출은 30년지기 후배 박규상(53)씨가 맡았다.
이번 작품에 대해 그는 “국가 권력에 의해 성고문을 당한 여성이 1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그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픔에 괴로워 하다가 자신을 성고문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1970년대 칠레 군사정부시절에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인데 우리의 역사와 다르지 않은 불행한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성고문 한 의사 로베르또 미란다 역을 맡은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희생당한 개인의 원한은 비록 사회적으로 용서되었더라도 개인의 아픔과 트라우마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울부짖는 여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은 공연을 보는 관객이 내려야 한다는 것.
“작품이나 분야를 가리지는 않지만 웃고 즐기는 가볍고 경쾌한 작품 보다는 무겁고 진지하더라도 내면과 심리적인 것을 연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체력적 부담이 많이 되는 작품들은 지금 안하면 못할 것 같아요. 더 힘 빠지기 전에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의 작은 소망은 지역예술로서 연극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저변이 확대됐으면 하는 것이다.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연극기반이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영화, 방송,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이 지역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역의 좋은 인재들이 지역에서 머물고 커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죽음과 소녀’ 이후 그는 올해 장르별로 세 개의 작품을 공연할 계획이다. 사회적인 고발극, TV 드라마 같은 달동네 배경의 코미디극 등이다. 연극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캐릭터를 비교해 보며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연극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무 이상만 좇아가지 말고 사람냄새 나는 연극이고, 공연이고, 광주 연극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작업들이 후배들에게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요.”
연바람에서 공연중인 연극 ‘죽음과 소녀’는 오는 22일까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6시, 일요일 오후 5시에 공연된다.
/이 양 기자

약력
▲1960년 광주 출생
▲대표작= 화가 이중섭,대머리 여가수, 오셀로80, 김덕령장군, 버지니아그레이의 초상, 귀향, 총각파티, 광인일기, 막달라 마리아, 관객모독, 거세된 남자, 에쿠우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밤으로의 긴 여로,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사운드 오브 뮤직, 죽음과 소녀, 깡통꽃, 막차타고 노을 보다 등
▲영화 독재소공화국(1991), 시라소니(1994), 정(1996), 효자동이발사(2004), 아이스케키(2006), 불신지옥(2009), 아부의 왕(2012), 도희야(2014) 출연
▲진주 개천 예술제 최우수 연기상(1980), 광주 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3회, 전남 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3회, 광주 연극상, 전국 연극제 연기상 2회 수상
▲광주 KBC 아침마당 패널, 광주교통방송·여수문화방송 MC·리포터·패널, 현재 광주국악방송 빛고을 상사디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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