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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예술의 별'-이 영 민 문화공방DKB 대표
2014년 10월 10일(금) 00:00

“연극은 내 운명…정말 연극다운 연극 보여드릴게요”

고 2때 첫 만남 운명처럼 빠져들어
문화·공연 기획자로 바쁜 나날 속
올해 극단 까치놀 30주년 준비 한창
“광주 대표 브랜드공연 만들고 싶어”

누구나 한두번쯤 인생에 운명처럼 다가오는 어느 순간을 만난다. 운명과 마주한 그 순간 자신의 태도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영민(46) 문화공방DKB 대표에게 운명은 고2때 찾아왔다. 광주 대동고에 다니던 그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젊은 집시들’이란 극단에서 연극을 접했고 매료됐다.
“공군사관학교 진학이 목표였죠. 공사를 나와 파일럿이 되는 꿈을 키우며 조용히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는데 운명처럼 연극을 만났습니다. ‘젊은 집시들’의 멤버가 좋았고 내 인생을 연극에 바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를 처음 만난 건 10일부터 열리는 제16회 한국청소년영화제 설명 간담회에서였다. 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이 대표는 30년 역사의 광주 극단 ‘까치놀’ 대표이며, 지역의 내로라 하는 주요 축제와 행사·공연의 기획자로서, 또한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며 문화계의 젊은 기대주로서 열정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열정을 감추지 못하는 살아있는 눈빛과 도전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광주에서 매일 쉬지않고 공연이 올라가는 소극장인 ‘기분좋은 극장’ 2곳을 운영하다 독립 분사 시켰다. 서울에서 매년 열리는 아시아모델어워즈, 장흥물축제, 남도음식큰잔치,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전남도민체전 개·폐막식,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 영암 대한민국한옥건축박람회, 케니지 공연, 베를린 필하모닉, 명성황후 등을 기획하고 총괄했다.
대전 대덕대학교 모델과에서 패션쇼 기획과 모델전략을 강의하며 인재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의 에너지 원천이 궁금했다. 답은 바로 연극이었다.
“극단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자금이 딸렸습니다. 관객을 채워도 항상 배고픈 연극계에서 연극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파일럿의 꿈을 접은 그는 연극을 하면서 20대에 빨리 소극장을 마련할 자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해양대에 진학, 외항선을 탈 생각을 굳혔다. 연극관련 전공은 돈을 번 이후에 편입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배를 1년 탔는데 비로소 느껴지더군요. 돈보다도 지금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는 게…”
그는 이후 군대를 가고 전역한 후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광주 석산고 출신들이 만든 극단 까치놀에서 1997년까지 활동하다 단원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다.
서울로 올라가며 그는 까치놀 대표직을 맡게 된다.
“궁핍했었고 작품도 많이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극단 대표로 단원들 살림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벤트를 기획하고, 대학원을 진학했다”고 털어놨다.
대학원에서 이벤트를 전공하고 농수축산신문에 전시이벤트 팀장으로 들어가 농촌진흥청 박람회, 품평회 등 농업계 행사들을 하면서 네트웍을 형성했다.
그는 서른여섯에 이벤트 회사 문화공방DKB를 창업했다. DKB는 도깨비의 약자다.
“친근한 이름이기도 하고 열정만 있다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불가능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로 올라간 지 10년만인 2007년, 이 대표는 다시 광주로 내려와 준비기간을 가진 뒤 2010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도 그가 제작한 연극 ‘꿈꾸는 해바라기’는 제30회 전극연극제에 광주 대표로 출전해 은상을 수상했고, 소설가 한승원의 유일한 희곡인 ‘아버지’를 각색해 9개 도시 투어를 펼치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장흥군에서 투자받은 1억3,000만원을 순회공연을 통해 벌어 갚게 됐다고 했다.
서른 셋에 연극배우로서 활동을 접고 기획자로 바쁜 날들을 보낸 그는 올해 다시 무대에 섰다. 광주연극제 작품으로 지난 3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를 올리고 월북음악가 안성현을 연기했다.
“그동안 제작자로서 연극을 하고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호흡을 하지 못하니까 주변인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대에 대한 소외감도 느껴져 직접 무대에 서보고 싶었다”며 “하지만 후회했다. 심사 평가를 받는 연극제다 보니 그 연극이 자유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발동이 걸렸으니 다시 무대로 돌아가볼 생각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극단 까치놀의 기념공연으로 정말 연극다운 연극을 준비 중이라며 눈빛을 반짝인다.
“국내 대표 희곡작가 고 이만의씨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올립니다. 스님 역할의 5명 배우가 전부 머리를 깎고 혼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20대때 연극 ‘아일랜드’에서 머리를 민 적이 있어 괜찮을 것 같기도…(웃음)”
이 대표에게 올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상반기 각종 공연행사가 취소됐고, 따라서 예산도 반토막으로 줄었다. 지난 8월엔 구제역으로 대한민국축산물페스티벌이 취소가 됐고 정남진장흥물축제 때는 태풍 직격탄으로 무대가 침수돼 행사장을 두 번 세팅해야 했다. 영암 한옥건축박람회도 AI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됐다.
외부적인 요인때문에 힘든 시기를 맞았지만 그가 계속 해나갈 일은 연극이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연극 관련 구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공연을 만들고 싶은게 꿈이다. 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하는 광주브랜드상품 특성화 발굴사업에 마스크 퍼포먼스 ‘변두리 극장’과 ‘공중의 공원’을 만들어 공연했다. 지금 세 번째 작품을 준비중이다.”
그는 또한 상설극장도 만들어 볼 계획이다.
“광주에 소극장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면 큰 극장 뿐 아니라 주변에 소극장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올해는 광주 연극이 오랫만에 활기를 찾고 부흥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전국연극제에서 이미 세번 대통령상을 받은 광주연극이 올해 다시 대상을 수상하며 전국에 저력을 알렸다. 이를 발판으로 연극협회가 똘똘 뭉쳐 새로운 후배들을 양산해 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는 연극인의 복지문제도 언급했다. 삶이 척박한 연극인들이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갖고 연극을 위해 밤에 모여 연습을 하는 현실속 맘놓고 연극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연 기획자답게 바삐 울리는 그의 핸드폰 전화기에 등록된 지인의 전화번호만도 6,800여 개. 그에게서 광주 연극과 지역문화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어 훈훈했다.
이연수 기자         이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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