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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서 3년째 작업 서양화가 황순칠
2015년 03월 13일(금) 00:00
“확실한 나만의 작품세계 완성해 가는 중...정말 좋은 작품 나오면 전시 열 것”

고인돌 마을과 배꽃의 화가 황순칠.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 탓에 종교인 또는 도인의 이미지가 강렬한 화가는 실은 음악과 풍류, 그림을 사랑하는 천상 예술가다.
그는 자신의 전시에서 그랜드피아노를 놓고 직접 연주를 들려주는가 하면 거침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뽑아내기도 한다. 광주에서 화가의 전시가 열린지 벌써 11년. 그동안 대학에서 겸임교수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도, 김원중의 달거리공연 등 뜻있는 이들의 공연과 전시를 뒤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정작 자신의 전시회는 뒤로 미룬채 화순 운주사에서 3년째 작업에만 올인하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운주사를 찾았다.

와불로 오르는 계단 중턱,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를 만날 수 있었다. 오가는 등산객들이 작업하는 화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멀찌감치 뒤에서 한참 그림을 감상하다 떠나기도 했다. 그가 작업중인 작품 제목은 ‘거북바위 석불군 풍경’.
트레이드 마크인 배코 친 머리,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 호탕한 웃음소리가 여전한 화가가 작업을 멈추고 반긴다.
‘고인돌마을’, ‘배꽃’과 ‘매화’ 시리즈로 독창적인 화폭을 구현하며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주로 그려온 그는 2013년 4월 자신만의 또다른 그림세계 구축을 위해 운주사에 들어왔다고 했다.
“매화를 그리는데 자꾸 운주사 탑이 떠오르는 겁니다. 발탑(그릇모양 탑)을 그리러 왔다가 두달여에 걸쳐 그림을 완성한 후 바보석불을 그렸지요. 이왕 몇 점 더 그려보자 한 것이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석불만 하나 더 그리려다 너무 좋아 푹 빠져버렸다는 그는 운주사 앞 도암면 추동리 농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사시사철 매일같이 이젤을 등에 메고 나와 야외작업을 하고 있다.
“아침 7시면 일어나 1시간여 운동을 마치고 9시경 운주사로 나와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야외작업을 하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가 가장 힘들죠.”
화가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천불천탑과 와불이 있는 운주사에서 그는 부처님을 그리는게 아니라 우리 미래 선조들의 혼을 그린다고 말했다. 과거의 석불이지만 미래의 편안한 우리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그림 속에는 자기자신의 모습이 들어갑니다. 우리 어머니, 할아버지 등 조상의 모습도 더불어 담기게 되죠. 이는 미래의 선조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름없는 석불에 어린이상, 소녀상, 미인상, 장군불 등 내 스스로 이름 붙여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업이 즐겁습니다.”
운주사의 이름없는 상들은 풍화작용에 의해, 또는 미신에 의해 머리나 코가 떨어져 나가있는 등 다양한 모습들이다. 자식을 염원하는 의미로 새벽에 와 코를 베어간 흔적들이 있는 석불들. “이 또한 해학과 풍류가 담겨있는 것 아니겠냐”며 화가는 다양한 석불들을 안내한다.
이처럼 운주사의 일부가 돼 있는 화가의 전시 소식은 언제쯤일까. 3년 동안 그는 도대체 몇 점의 그림을 완성했을까.
“작품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한 점을 그려도 양이 아니고 질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전시하느냐고 묻지만 전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작업을 합니다. 확실하게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을 때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뭔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하하!”
2003년 광주 남도예술회관과 광주신세계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진 그는 힘 있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도 있지만 어떤 감동에 의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연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서 깨달아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 운주사에 와 석불 하나 그리고 가려고 했는데 예전 고인돌 마을의 정서가 이곳에 있었고 우연한 깨달음과 감동이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고인돌 마을’ 역시 서민들의 삶이나 이웃들과 옹기종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운주사에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 평등사회, 모두가 잘 사는 사회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며 미래의 아름다운 세계, 확실한 황순칠의 세계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해질 무렵까지 작업을 마치고 해가 지면 거처로 돌아와 영어공부와 서예에 매진한다는 그의 거처에는 공부를 위한 책상과 소박한 잠자리, 그리고 또 어김없이 피아노가 함께 있었다.
노래하기 좋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해 뒤늦게 피아노를 배웠다는 그는 이곳에서 피아노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며 그만의 행복한 봄을 맘껏 부르고 있는 듯 했다.
“이곳에서의 3년동안 점점 더 자신감을 얻습니다. 제 그림은 계속 미완성입니다. 하지만 삶의 행복은 양에 있지 않고 질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작품도 양이 아닌 질입니다. 세상 그림은 넓고 크게 봐야 합니다. 감동이 있는 넓고 큰 작품을 완성하겠습니다.”


약력
▲여수 출생 ▲서예 입문, 동양화 박행보 사사 ▲서양화 전환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신한미술상 수상 ▲개인전 27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 ▲베를린 한국 현대회화전, 파리 살롱 도똔느 특별전 등 국제전 다수 ▲TV 미술관 경매전 ▲2002년 황순칠 고인돌마을 작품 고교 미술교과서 등재.

이연수 기자         이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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