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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본능이었고, 그림이 있어 행복했다”
2016년 03월 04일(금) 00:00

60여년 화업 회고 광주시립미술관서 초대전
평생 전통·동양의 미 탐구…5부 나눠 60점 전시
광주·전남 유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최고 영예




■ ‘한국 구상화단 큰 별’ 오 승 우 화백
“그림은 본능이었고, 그림이 있어 행복했다.”
평생을 치열하고 우직하게 일군 예술세계를 고향의 후학들에게 보여주는 의미있는 전시를 여는 오승우 화백(86)이 지난 2일 광주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왜소한 체구에 백발 머리카락, 흰 수염, 연노랑 넥타이에 양복과 코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노화백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전시를 찾아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어서 감사하다”며 미소와 함께 연신 인사를 전했다.
그의 ‘자화상’ 속 강렬한 카리스마였던 짙은 색이 들어간 안경으로 불편한 눈을 커버한 화백의 곁에는 평생 그의 눈과 안식처가 되어준 아내 정금애 여사(84)가 함께 했다.



화백의 이번 광주시립미술관 전시는 지난 1996년 시립미술관 ‘오승우 100산 초대전’ 이후 꼭 20년만이다.
“초대전이지만 사실상 회고전이다. 20년 전 전시 후 상당한 세월이 흘렀는데 이번 전시에서 예전 작품들까지 만나게 돼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또박또박 인터뷰에 응한 노화백은 이번 초대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국전 출품작들이 가장 반갑다”는 화백은 조선대를 졸업하고 1955년 25세의 나이에 국전 입선을 시작으로 광주여고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4년동안인 1957년부터 4회 연속 국전에 특선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1년 31세의 나이에 국전 추천작가 반열에 올라 우리나라 미술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3회 국전에서 낙선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 동네, 집, 군에 입대해서도 내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걸로 알았다. 제대할 때 조선대학교 벽돌공장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국전에 냈다가 낙선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못 그린다는 걸 알았다. 창피했다”며 “그림은 기초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30년 화순 동복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인 고 오지호 화백이 개성 송도고보 미술교사로 부임하던 6살에 개성으로 이주해 중학교까지 다니게 된다.
1945년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와 1950년 조선대에 입학하고 군복무를 마친후 본격적으로 화업에 몰두한다.
1962년 서울 배화여고 교사로 부임하며 서울로 이주한 화백은 이후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
그의 화업의 밑바탕이 되는 작품들은 불상, 법당, 풍경, 요정, 산, 꽃, 십장생도 등 한국의 전통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상향의 모티브가 되는 소재들이다.
“자연은 우리 스승이다. 거기서 이미지를 얻는다”고 강조한 화백이 전국 130개 산을 직접 오르고 현장사생에 바탕하는 100여점의 대작(100산 시리즈)들을 남긴 것도 그런 생각의 실천이다.
1986년과 1987년 양쪽 눈을 수술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화업 열정에 불편함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눈이 안좋아 독서를 통해 자기정진을 할 수 없어 여행으로 공부를 대신했다고 전한다.
그는 구상화단과 후학들을 위해 1983년부터 1993년까지 목우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구상화단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63세이던 1993년 그는 광주전남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화가로서는 최고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1995년 ‘100산’ 시리즈, 2001년 ‘동양의 원형’ 시리즈, 2008년 ‘십장생도’ 시리즈를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이며 예술인생을 꽃피웠다.
이번 전시작들은 화백이 마지막까지 소장하고 있는 남은 작품 중 직접 엄선한 작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무안오승우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중 60여점을 추린 것이다.
전시구성은 5부로 나눠 △전통과 미 △한국의 100산 △동양의 원형 △십장생도 △나와 세계 순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1949년 화백이 19살의 나이에 양림동 풍경을 그린 작품 ‘신록’이 맨 먼저 관객을 맞는다. 70여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작처럼 생생한 붓터치와 보관상태에 감탄하게 된다. 화백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백두산’(1991)과 ‘한라산’(1992) 500호 대작은 2부 ‘한국의 100산’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영산이라고 하는 백두산은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인 민족성에 감흥을 주는 바 크다. 한라산은 그동안 여러번 다녀왔지만 백두산은 듣기만 했지 본 적이 없었는데, 가보니 영산이란 걸 느꼈다. 딱 한번 본 이미지를 담기 위해 참 정신없이 그렸다”고 회고했다.
화순이 고향이지만 미술관은 무안에 건립돼 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무안에 미술관이 건립된 것은 서삼석 당시 무안군수의 제안과 성의에 감명받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뜻을 펼치면 좋았겠지만 지역을 굳이 따지지 않았다. 무안군수도 그때 처음 봤다. 집을 지어줄테니 그림을 줄 수 있나 제안해 와 수락한 것이다. 미술인들, 문화계 유지들 모두 반대했지만 성의에 감명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제2의 오승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당부말을 덧붙였다.
“왕대 나온데서 왕대가 나온다고 한다. 예능계를 통해 유명한 사람이 나오면 그 다음에 거기서 또 그런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화순 동복에 오지호가 유명한데 10년후, 아니면 20년후 또 그런 작가가 나온다. 지금은 하잘 것 없더라도 어느 때 계기를 받으면 큰 작가가 나올 것이다.”
전시는 오는 4월 27일까지.
이연수 기자          이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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