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자존심은 심하게 성처를 입은…





설화는 마음 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는 깨질깨질 밥을 먹고는 퀴퀴한 냄새가 밴 묘막에 누워 긴 낮잠을 한숨 늘어지게 청했다.
해질 무렵 돌아온 임돌은 다시 부모님 묘 앞에서 밥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의식을 행하고는 어제 그 자리에 거적을 펴고 벌렁 드러누웠다. 설화는 뛰쳐나가 아양을 부렸다.
“아이구! 주인님이 불편해 하시니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나 이 밤에라도 가야겠습니다.”
“아 아니 무슨 말씀을!”
“소녀가 있어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묘막 안에서 편히 쉬며 주무시지도 못하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설화는 마치 금방 떠나가기라도 할 듯이 나서는 것이었다.
“아니 됩니다. 아픈 몸으로 이 밤에 가다가 혹여 호랑이나 늑대라도 만나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임돌이 놀라 만류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주인님이 이 묘막 안으로 들어와 같이 주무신다면 소녀도 편히 쉬다가 몸이 나으면 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떠나가겠습니다.”
설화는 아양을 부리며 말했다. 설화의 말을 들은 임돌은 잠시 무슨 깊은 생각에라도 잠긴 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설화는 속으로 ‘제깟 놈이… 그럼 그렇지!’ 하고 피식 웃음을 흘겼다. 임돌이 못이긴 척 묘막 안으로 들어와 구석에 드러누웠다. 좁은 방에 누운 임돌과 설화는 옆구리가 서로 맞닿았다. 한동안 둘은 말없이 그렇게 오래 누워있었다.
그러나 말짱한 정신으로 그것도 피가 뜨거운 남녀가 신체를 맞대고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누워있기란 참으로 힘든 고역이었다. 임돌의 건장한 몸에서 나는 사내 냄새를 맡으며 설화는 깊이 잠이 든 척 몸을 뒤채며 슬그머니 임돌의 배에 다짜고짜 발을 떡 올렸다.
임돌이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슬쩍 발을 들어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설화는 잠버릇이 고약한 듯 이리저리 사정없이 뒤채다가 보드라운 젖무덤을 임돌의 옆구리에 찰싹 들이대었다. 임돌은 몸을 비키려고 안달이었다.
그때 설화가 미끈한 양 두 다리를 과감하게 임돌의 배 위로 올렸다. 임돌이 다시 슬그머니 설화의 다리를 들어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그날 한밤 내 그 일이 계속되었으나 그뿐이고 말았다. 설화는 그렇게 목석같은 임돌이 기이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어디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잔뜩 생겨났다.
다음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설화가 아무리 몸을 밀착하고 뒤채이며 덤벼도 임돌은 그러고만 말 뿐이었다. 설화는 거짓으로 끙끙 앓는 것도 이제 지쳤다. 그렇다고 설화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임돌이란 사내에 대한 불끓는 정복욕과 집념을 도무지 눌러 끌 수는 없었다. 속에서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극한 오기가 끓어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내로라는 학자요 문인이요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을 모조리 한순간에 모두 식은 죽 먹기로 무너뜨려 버렸는데 도무지 목석같이 끄떡도 하지 않는 임돌이란 한갓 무지렁이 사내에 대한 무시에 기반을 한 어이없음에서 발로한 것이었다.
고상하다는 성현의 경서 공부도 순수한 마음에 대한 수양도 전혀 하지 못했던 하급의 인간 임돌이 이 조선 땅에서 가장 빼어난 미모와 기교를 겸비한 하늘에서 막 하강한 선녀처럼 아름다운 싱싱하게 물오른 조선의 최고 천하미색 설화에게 감히 미동도 하지 않다니 말이다. 설화의 자존심은 심하게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