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단 일소를 위해 힘쓴 문인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33~1592)은 서울에서 출생한 조선중기 문인이었다. 그는 유년기 10세에 이르도록 글을 배우지 못하다가 소재 이중호에게 처음으로 학문을 배웠는데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그 깊이가 일취월장했다. 이후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연이어 수학하면서 학문적 역량을 더욱 높였다.
고담은 선조 5년(1572년) 40세에 이르러서야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정자로 첫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이후 1575년에는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 사간원 정언, 부수찬을 거친다. 1576년에는 정언, 수찬, 이조좌랑, 지제교 등을 역임했으며 1577년에는 탄핵으로 체직(벼슬의 강등)되었다가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된다. 이 당시 고담은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명종 제위시절 외척으로 권세를 남용하던 윤원형이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오른 것을 부당함을 주장하고 삭훈을 청했으며, 당시 윤원형에 맞서다 관직이 삭탈된 인원들의 관직회복을 건의했다.
고담의 나이가 50에 이른 1582년에는 응교, 사간, 장악원정 등을 거쳐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제술관이 되었으며, 1583년에는 직제학에 올랐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1587년에관직에 복귀한 고담은 동지사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589년에는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형조참의로 제직하면서 문인들의 희생을 줄이고자 했으나 역적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해직되어 낙향했으며 이때 학문에 더욱 매진한다. 그러나 고담의 낙향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가 몽진길에 오르자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왕비와 세자 호종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다시 한양과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고담은 피난길이 평안도 선천에 이르자 과로로 쓰러졌고 곧 세상을 떠났다. 그때의 그의 나이가 59세였다.
이순인은 앞서 언급하였듯 늦게 학문을 익혔지만 뛰어난 문장력으로 아계 이산해, 최경창, 백광훈 등과 함께 조선 8문장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임진왜란의 병화 속에서 고담은 숨을 거두었고, 많은 분량의 작품들도 사라져 현재 남아 있는 고담의 시는 300여 수에 그친다.
고담의 시는 관직에 몸담으며 관료의 가치관이나 임금에 대한 충정을 나타낸 시부터 자연경관을 소재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한 시 등 다양한 소재를 시에 반영했다.

천애(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연히 쌍계루 스님을 만나니
오신 것이 기뻐 병중에도 시를 썼노라
목옹이 남긴 기문은 옛 절에 퍼졌고
포옹이 남긴 시구는 감정을 더하누나
젖은 가을구름 어디선가 들리는 피리소리
한 밤의 맑은 달빛에 사람은 누각에 기대었네
천리 먼 길에서 그리워하며 가지 못하니
산 가득 솔과 전나무인데 가을 등반 저버렸네

포은 정몽주의 시를 차운한 쌍계루 제영시는 제 1·2구에서 쌍계루 스님과 교유하게 된 기쁨의 정취가 서술되고 있으며 제 3·4구에서는 쌍계루 기문을 쓴 목은 이색의 명성을 칭송하고, 포은 정몽주가 남긴 시문을 본 느낌을 전하고 있다. 제 5구에서는 가을의 풍경 속에서 피리 소리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청각적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표현했으며, 제 6구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낮에서 밤으로 변화 하면서 달빛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제 7·8구에서는 산가득 소나무와 전나무가 있는 풍경을 묘사하며 쌍계루에 가지 못하는 자신의 아쉬운 심정을 담고 있다.
해당 쌍계루 제영시 이외에 이순인의 시문을 엮은 ‘고담일고(孤潭逸稿)’에서도 쌍계루에 대한 시가 보인다.

白巖山雙溪樓(백암산쌍계루)

홍수교 가에 비자 잎은 무성하고
흰 구름 속에 성긴 경쇠소리 들리는 가을 일세
홀연 이십 오년 전 일이 떠오르니
해 지는 쌍계루에 헛되이 누대에 기대었네
(＊‘백암산쌍계루’의 해석은 박미국의 논문 ‘역주 고담일고’를 참고했습니다.)

해당 시 또한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 속에서 쌍계루의 정경를 묘사했다. 1·2구에서는 쌍계루 인근의 교량과 어우러진 비자림의 풍경, 흰구름 낀 가을하늘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사찰(백암사)에서 들리는 경쇠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함께 나타내어 시적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3·4구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고뇌를 해지는 쌍계루의 정경을 묘사하며 나타냈다.
이처럼 고담은 쌍계루에 관한 시를 2편이나 남겼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을 때 지금의 금산 황석강가에 정사라는 개인의 누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쌍계루에 대한 복수의 작품을 남긴 것은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이는 그만큼 고담의 마음속에 백암산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대한 동경과 쌍계루에 대한 각별 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