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만들어 버리고서는 지나가는 여인들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이런 봄날 풍경에 하나 더해서 도로 한쪽 끝에 횡단보도 옆으로 트럭 한 대가 서있다. 트럭 안에는 온갖 자그마한 화분들이 놓여있다. 어린 병아리처럼 화분 안 초록잎과 올망졸망한 꽃들은 길가 트럭 아저씨에게 말을 건네게 한다. 트럭을 둘러싼 사람들은 질문이 많은 학생들처럼 꽃화분의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부터 물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다년생인지까지 묻느라 바쁘다. 아저씨는 양지에서 키워야 좋을지 음지에서 키워야 좋을지를 더해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대답을 얹어준다.
그런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어린시절 엄마와 갔던 시장처럼 마음이 나긋해진다. 선인장도 처절한 죽음으로 내몰아버리는 내가 어느새 하늘거리는 초록 가지끝마다 노란색 꽃이 그네 타듯 달려있는 화분을 잡으며 질문을 한다.
“얼마에요?”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던 길가에서 내 손에 들려 얼마인지 물음을 들어야 했던 이름 모를 그 꽃화분은 “해가 잘 들어오는 곳에 두어야 합니다”라는 아저씨의 말을 상기시키며 사무실 창가를 지키고 있다. 작은 꽃화분 하나가 내 주변 공기부터 달리 만들어주고 그 봄향기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지 우리나라 음악 중에 봄날을 이야기 한 것이 참 많다. 그 중에서 오늘은 ‘모란은 화중왕이요’로 시작하는 노래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여자가 부르는 가곡이어서 여창가곡이고 장단을 촘촘하게 엮어간다는 뜻의 ‘편삭대엽’을 하나 더 붙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여창가곡 계면조 편삭대엽 ‘모란은’ 이라고 제목을 이야기 하면 되는데 이 노래의 노랫말은 이렇다.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요 행화(杏花)는 소인(小人)이라 국화(菊花)는 일사(逸士)요 매화(梅花)는 한사(寒士)로다 박꽃은 노인(老人)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少年)이라… 중략”
모란을 꽃 중의 왕이라고 하면서 향일화(해바라기)는 해를 따르니 충신이라 하고, 연꽃은 군자이며 살구꽃은 소인, 국화는 뛰어난 선비이고 박꽃은 노인이며 석죽화(패랭이꽃)는 소년이라는 이 노래의 노랫말은 꽃의 특징을 사람들의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참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꽃의 특징에 비유를 하니 그것도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의 앞을 이끌고 있는 ‘모란’에 눈길이 간다. 모란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유사’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신라 진평왕 때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때가 처음이든 아니든 모란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이 되리라고 그 오래전 그 꽃을 보낸 사람도 짐작조차 못했을 일이다.
화려하면서도 소담스런 모습에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 된 모란은 부귀를 상징해 선조들의 그림 속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단순하게 부귀만을 기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래갈 수 없는 그 부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 단속을 하고자 하는 바람까지 담은 그림이리라.
5월이면 핀다는 모란은 지금 꿈틀대고 있겠지. 우리 희망도 모란처럼 꿈틀대고 있기를 바란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삼백예순 날을 기다리게 만드는 모란이 피는 날을 기다려 본다.




국악방송 www.gugakfm.co.kr
광주 99.3MHz
전주 95.3MHz
남원 95.9MHz
진도목포해남 94.7MHz

/김은하 광주국악방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