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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 넓고 깊은 숲(20) 염양춘

무르익는 일

2017년 03월 31일(금) 00:00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 종종 명인명창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 분들의 기억 속 전통문화와 당시의 환경은 그분들을 통해 듣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기록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만나는 분들의 연세는 대체로 70세 이상이 대부분인데 신기하게도 십대, 이십대의 일들을 기억하며 몇 년도에 어딜 가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당시의 쌀 한가마 가격, 공무원 월급 등을 말씀하실 때가 있다.
‘어떻게 저런 것을 다 기억하고 계실까’ 라는 생각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진짜요?”라고 또 묻는다. 그리고 이내 회오리 속에 빠져들 듯 내 기억의 시간을 돌려본다. 물론 중요 사건 몇 가지는 기억하지만 그리고 그 기억의 단초들도 내 시대와는 다르지만 떠오르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악보를 외우는 일 등은 잘 하는데 어떤 기억 속의 일들은 그다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이런 내가 봄을 기억하는 방식이 있다. 어떤 해의 봄날을 기준으로 삼고는 평년에 비해 올해 봄이 빨리 오는지 늦게 오는지를 판단한다.
분명히 할 것은 ‘평년에 비해서’라기 보다는 1997년 3월 중순에 비해서이다.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일을 1997년 3월에 맞이했고 그 때 길가 개나리는 활짝 피어 황금물결처럼 출렁거렸던 것이다. 내 찬란한 인생의 봄날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래서 기억 속에 있는 봄날에 비해 요즘 개나리 피는 시기를 비교해서 봄이 늦게 오거나 빠르게 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참 단순하지만 내 봄날의 시간은 그렇게 기억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갈색 가지 사이로 개나리의 노란 잎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약간은 초라한 모습의 개나리는 그래도 봄날 햇살을 마중 나오려는 듯 피어있었다. 지역마다 봄이 오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곁에 봄은 2017년 이렇게 조용히 더 짙어지며 무르익는 중이다.
무르익음은 활짝 피어서 어떤 절정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라 더 설레는 일이다. 그 설렘으로 향해가는 음악이 있다. 바로 ‘염양춘(艶陽春)’이라는 음악인데 악곡명이 ‘무르익는 봄’을 의미한다.
노래가 얹어진 가곡 중에서 노래는 빼고 ‘두거’의 반주음악을 독주 악기나 관악합주로 연주할 때 ‘염양춘’이라고 부른다. 이 때 피리 독주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기도 하고 생황과 단소 또는 양금과 단소 등의 이중주로도 많이 연주된다. 봄날의 아장거림과 가녀림이 이들 악기와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여럿이 연주할 때는 잘하든 좀 못하든 사람들 사이에 묻혀 연주의 기량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독주로 혹은 이중주로 연주할 때는 연주자의 기량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무르익는 봄날의 정경을 ‘염양춘’에서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특히 박인기 명인의 피리독주곡 ‘염양춘’을 듣다보면 길게 뻗는 마지막 음(音)까지 연주자의 숨결이 가녀리지만 봄날의 기운찬 땅 속의 생명력처럼 진지하게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공력이 쌓여야만 음을 길게 뽑을 수 있고 그것이 가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확 끊기는 쉬우나 가녀리게 점점 사라지게 하는 힘! 그 가녀림은 초보 연주자는 따라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공력을 쌓을 수 있는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 무르익는 봄날이 되시기를…. 그리고 명인명창 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을 공유하며 그들의 봄날을 되새겨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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