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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과거와 현재 잇는 ‘관광의 별’이 되다
2017년 06월 02일(금) 00:00


<컬처 현장 -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대구 근대문화골목 역사탐구 현장’ 연수 >


대구 핫플레이스 근대골목길 입소문 자자
문화·경제·종교·독립운동 흔적 오롯이
소통·도심재생 성공…관광 자원화 눈길


대구 중구 근대골목은 관광객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 관광코스 중 하나다.
잘 알려진 중구 대봉동의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을 비롯해 근대골목투어, 서문시장 야시장 등 대구는 그야말로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탄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지난달 25~2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대구 중구 근대골목 현장연수는 골목이 ‘관광의 별’이 되기까지 과정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구는 왜 골목을 관광코스로 개발했을까.
관광 불모지였던 대구는 2007년부터 관광개발사업에 착수했다. 1907년 일제가 대구읍성을 헐면서 훼손된 성벽터에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의 4성로가 조성, 수많은 골목이 형성됐다. 대구시는 이 골목 사이에 문학, 예술, 역사가 깃든 곳을 관광화 시켜 1코스부터 5코스까지 테마별로 조성했다.
2008년 대구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287명이었지만 대구시와 중구, 주민들의 노력으로 2016년에는 140만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대구가 이렇게 뜨거운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들과의 꾸준한 소통과 도심 재생의 시너지 효과를 꼽을 수 있다.
대구는 선조 34년 경상감영이 설치된 이후 41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영남의 중심지였다. 또, 서상돈, 박태준, 이상화, 이인성 등 민족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도 많이 탄생한 곳이다.
이렇게 풍부한 역사자원을 가졌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도심이 쇠퇴하고, 대구읍성의 흔적도 사라져 갔다. 대구가 가진 자원들로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대구시는 병원, 성당, 고택 등을 개·보수해 관광코스로 만들었다.
성공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기까지 주민들과 잦은 충돌도 있었다. 바로 200여개의 불법 노점상들이 문제였다. 노점상들의 불법 영업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경기침체를 불러일으켰지만 대부분의 노점상들은 생계형이었고, 강제철거 규탄 및 시위로 소음은 커져만 갔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성로 대책위원회와 노점심의위원회는 21차례에 걸쳐 꾸준한 협의를 진행한 결과, 야외공연장과 벤치, 가로수, 간판정비 등 보행자 중심의 시민 휴식공간을 조성하되 생계형 노점상들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노점상 특화거리도 함께 만들어 갈등을 해소했다.
대구근대골목의 가장 큰 차별성은 도시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일반 식당과 카페 안에도 근대의 흔적들이 전시돼 있으며, 거리를 지나가면서도 심심치않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연수는 첫째 날 근대골목투어, 김광석길 투어, 둘째날 향촌문화관 방문, 경상감영당성길, 순종황제어가길 테마 투어 순으로 진행됐다.
첫째 날은 5코스 중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투어를 실시했다. 1.64km로 2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근대골목을 통해 대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여’ 라는 노랫가사의 무대다. 청라언덕은 대구에 실제 존재하는 곳으로 서양식 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인 선교사 아담스와 존신이 동산을 구입해 병원과 신학대학을 세웠으며 현재는 계명대학교 안에 자리하고 있다. 1999년 동산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박물관으로 재탄생했으며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선교사들의 무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청라언덕을 지나면 3·1만세운동길이 보인다. 3·1운동에 참여한 열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벽 옆에는 태극기와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한국의 3대 성당 중 하나라 불리는 ‘계산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명동과 평양에 이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3번째 성당이다. 원래는 한국식 목조 건물의 성모성당이었으나 화재로 손실돼 1918년 현재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국채보상운동과 시를 통해 일제에 맞섰던 고상돈·이상화 고택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집 안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서랍장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곳곳에 있는 작품과 사진들로 그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경북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도 볼 수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1898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세웠으며 전통과 서양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뤘다.
이 외에 약령시한의약박물관과 대구 최초의 소아과 의원, 여성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진골목 등 대구의 근대모습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가까운 대구의 모습을 느끼고 싶다면 대구 토박이 김광석 거리를 가보자. ‘사랑했지만’ ‘서른즈음에’ ‘거리에서’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김광석의 음악인생을 엿볼 수 있는 곳.
350m 가량 이어지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서는 그의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그의 음악과 신청곡으로 행해지는 버스킹 공연도 펼쳐진다. 또, 김광석의 실제 키와 똑같이 제작된 동상은 눈길을 끄는 포토존으로 인기다.
둘째 날에는 경상감영 달성길을 걸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행정중심도시로서의 대구의 면모와 근대 상업발전의 근간 등 흘러간 시대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코스다. 3.25㎞의 거리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곳은 수제구두점과 공방, 대구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인기였다. 수제화 구두거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군화를 신사화로 재가공한 것을 계기로 생겨났다. 300m 남짓의 거리는 수제구두점들이 죽 들어서 있으며 백화점 못지않은 다양한 디자인의 신발들이 있다. 일본식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카페도 바로 옆에 있어 쇼핑과 관광, 여유로움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다.
삼성 그룹의 시초가 된 제일모직 건물도 볼 수 있다. 당시 제일모직 본관은 창업기념관으로 리모델링되며 바로 옆에는 당시 사용하던 금고가 위치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며 금고를 한 번 쓸어보곤 했다. 다만, 제일모직 금고라는 안내가 전혀 돼있지 않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웠다.
남녀노소 모든 이들의 마음을 뺏은 향촌문화관은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 ‘선남상업은행’ 자리에 있다. 이곳 향촌동은 1970년대까지 대구의 젊은이들이 몰린 번화가였으며 다수의 다방, 술집,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당시 실제 사용했던 물건과 새로 만든 세트가 어우러져 향촌동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 놨다. 즐겨 마시던 막걸리와 안주, 철물점, 버스, 전화기 등은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을 선사했다. 2대째 내려오고 있는 LP판 음악감상실과 지하에 위치한 녹향은 과거 사교장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특히, 고전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녹향은 경영난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대구시의 도움으로 향촌문화관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대구 중구청 김명주 과장은 “대구 중구의 근대 골목은 문학·언론·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무엇보다 주민들과 끊임없는 대화로 도시전체가 관광지로 변화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를 벗어나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대구 근대골목 투어를 추천한다. 총 70명의 해설사들이 여행을 더욱 알차게 만들어주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정기투어를 하고 있다.
이보람 기자          이보람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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