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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 넓고 깊은 숲-(29) 탁영금(濯纓琴)

인연의 손길

2017년 07월 14일(금) 00:00
최근 어느 행사장에 갔더니 학생 둘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무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낯익은 거문고와 해금을 앞에 두고 얼굴 표정 하나 없이 앉아 있는 고등학생 두 명은 오늘의 행사를 여는 무대에서 축하 음악을 연주할 모양이다. 그들의 연주를 보고 있는데 우리 집 어느 벽에 기대어 선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2000년도 어느 시간 귀퉁이에 머물러 있을 거문고가 떠올랐다.
나는 거문고를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국악방송에 들어가던 2000년 9월에 손을 놓았다. 정말 거문고를 좋아해 떨어지면 죽고 못 살 것처럼 늘 끼고 있던 악기는 국악방송을 들어오고 나서 그때부터 내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우리 집 어느 벽에 기대어 그렇게 홀로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 거문고 중에서는 처음 나의 실력을 다 기억하는 거문고도 있다. 어느 장인의 댁에서 골라들고 온 거문고로 그 중에서는 내 손에도 잘 맞고 소리도 좋아 데려다 놓은 것인데 악기를 잘 고를 줄 모를 때여서 선생님과 동행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 가져다 놓은 거문고는 금빛을 두르지는 않았지만 반짝 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고 내 마음에 그렇게 꽉 차 하늘을 둥실 날아오르게 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탁영 김일손(1464~1698)은 좀 특별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평소 자신이 탈 거문고는 나무를 골라서 직접 거문고를 만들어 타고자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어느 노파의 대문을 보고 탐을 냈던 것이다. 대문을 이루는 한 쪽의 나무는 이미 땔감으로 써 버렸고 나머지 한 쪽의 나무를 악기를 만들겠다면서 가져간 것이다. 100년은 되었다는 이 나무를 가져다 정성을 들여 거문고를 만들어 탔는데 그 악기의 소리가 맑았다고 한다.
대체 어떤 소리가 났을지 맑았다는 말이 온갖 상상을 더하게 하는데 이렇게 만든 거문고의 밑 부분에는 대문으로 쓰였을 때 났던 못 구멍이 세 개나 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김일손에게는 자랑스러운 표식이 되었을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열고 닫으면 만졌을 터이지만 김일손에게만 악기로 쓰일 수 있는 좋은 재료로 보였고 이렇게 안목이 다른 특별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는 ‘탁영금’(濯纓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악기는 1988년 6월 16일 보물 제957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인연은 대체 어떤 것이기에 남의 집을 지키고 서있던 대문이 누군가의 마음을 다스리는 악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100년의 시간을 타고 흘렀던 비와 눈과 시간과 공간의 그 무엇을 더해 온갖 변화를 다 겪어낸 나무로 만든 거문고가 내는 그 맑은 소리를 상상해본다.
만나서 반짝 좋은 그런 화려한 인연이 아닌 어쩌면 그렇게 오랜 시간의 강을 흘러 서로 알아봐 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 이루게 되는 것이 인연이 아닐까 싶다. 김일손이 못 구멍 옆에 넣었다는 글을 상상 속 거문고 음색 속에 그려본다.
‘만물은 외롭지 않으니, 마땅히 짝을 만날진저. 백 세대가 지나도 혹 기필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아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김은하 광주국악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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