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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완도

탁 트인 바다·맑은 공기…늘 빙그레 웃는 섬

2017년 07월 29일(토) 13:27
유배왔던 이도재 건의 완도군 생겨
세계 주름잡던 해상왕 장보고 동상
265개 건강의 섬…육지와 연결 친근

여름 바다가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오늘은 완도로 떠나봅니다.
완도군에는 265개의 섬이 있습니다. 우리가 완도라고 했을 때는 완도라고 불리는 섬 하나를 지칭하기도 하고, 완도군 전체, 그러니까 200여개의 섬과 그 섬을 둘러싼 바다 인근 해역을 지칭하기도 하지요.
역사적으로 완도군의 여러 섬들은 인근의 강진, 해남, 영암, 장흥에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96년 행정개편때 완도에서 9년간의 유배 경험이 있던 이도재, 이분이 전라관찰사로 와서 완도군 창설의 필요성을 제기해 완도군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도재라는 분이 우리 역사상에서 큰 인물로 부각되는 것은 아니지만, 완도에 가면 이분의 유배지가 꾸며져 있고, 군 문예회관 앞에도 공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실은 이도재 공이 유배왔던 고금도가 제 고향이라 전 익숙한 이름이지요.



완도는 왜 완도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완도의 완자가 빙그레웃을 완(莞)입니다. 고전에 간혹 나오고 실제 용어에선 잘 안쓰이는 글자이지요. 이게 왕골 완, 또는 땅이름 관, 그리고 방금 말한 빙그레웃을 완으로 쓰입니다. 완도에선 ‘빙그레 웃을 완’으로 훈음을 말합니다.
지명에 왜 이 글자를 쓰게 되었을까요.
문헌상에 ‘완도’라는 땅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때인 1250년경의 일로 고려 관리인 이영이 완도로 유배오자 그의 숙부 혜일 스님이 완도로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사찰을 짓게 되었다고 동국여지승람 탐진(강진)현 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 기록 전에는 무슨 이름으로 쓰였을까요. 삼국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청해진 - ‘청해진은 조음도에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음도(助音島). 한자로 도울 조에 소리 음 해서 조음도에요.
그래서 혹자는 조음도의 조음은 우리말 좋다의 명사형인 ‘좋음’을 한자로 쓴 게 아닌가, 그래서 ‘빙그레 웃다’라는 훈을 가진 한자를 쓴 게 아닌가 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고요.
또 옛날부터 수목이 우거져 궁궐을 짓는 데 쓰이는 재목과 사슴 등 귀한 짐승이 많아 국가의 동산인 ‘국원(國苑)’으로 정한 것인데, ‘원도(苑島)’가 와전되어 완도가 되었다는 설 등 이런 저런 기록들이 있는데 딱히 이거다 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
완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니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 곳이지요.
해남 남창에서 완도대교를 건너 완도읍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거대한 동상이 맞이합니다. 완도에서 제일로 내세우는 인물 장보고입니다.
요즘 보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산학협력단이나 국가차원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중 장보고 프로젝트니, 장보고 거상 프로젝트 등 장보고 이름이 들어간 걸 보게 됩니다.
한중일, 동북아를 거점으로 하는 무역인재를 선발 양성한다는 프로그램에 바로 장보고의 이름이 쓰이지요.
남극에 있는 우리나라 연구단지인 세종기지가 1988년에 들어서는데 2014년 두 번째 남극 과학기지의 이름이 장보고 기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최초의 잠수함이 1993년 독일에서 도입되어 배치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장보고 함입니다.
장보고는 완도에서 애향심을 유발하려고 내세우는 인물을 넘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인물이었지요.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도 보이고, 중국의 당나라 역사서 그리고 일본 역사서와 일본 엔닌 스님이 전하는 기행문에도 장보고의 활약상이 보입니다.
그런데 장보고의 출생에 대해선 모릅니다.
이렇게 저렇게 전해진 기록에 따르면 신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활을 잘 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궁복, 용맹하고 무예가 뛰어나 당나라의 반란군을 제압하고 당나라에서 무령군 소장이라는 직책을 얻게 되지요.
장사를 해 큰 돈을 벌어 산동에 신라인의 사찰인 적산법화원을 개설하고 우리나라 해안에서 잡혀와 노예로 팔려다니는 사람들을 사서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하고 법화원인근 신라인의 거주지인 신라방에서 살게 했고, 신라인들의 희망이 되지요.
이후 신라로 돌아와 신라 왕실로부터 청해진 대사의 직함을 받고 군사 1만을 보유하게 되며, 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과 연결하는 무역벨트를 관할하게 됩니다.
보통 ‘진’을 정할 때는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게 되는데, 청해진은 이때 새로 나온 이름이고 이때에만 쓰여진 이름입니다. 맑을 청에 바다 해, 바다를 맑게 하겠다. 당시 해적들을 소탕하고 한중일 무역벨트를 구축한 장보고의 꿈이 있는 이름입니다.
청해진은 완도 한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완도 인근 강진 영암 해남 장흥 나주 영산강 일대 일대를 포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사라는 직함인데요. 신라 어느 관직에서도 대사라는 직함은 보이지 않거든요.
이 대사가 무얼까?
당나라 직함에 절도사, 지금 우리가 쓰는 도지사 등등 사로 끝나는 직함에 큰 대를 써서 대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세력이 커집니다. 신라 왕위 계승까지도 영향력이 미칩니다.
실제로 킹메이커가 되어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올리기도 하지만, 신무왕은 얼마 안있어 병들어 죽고, 이후 문성왕때에 자신의 딸을 왕비로 보내는 계획을 세우지만, 골품제도로 대표되는 신라의 신분질서에 막혀 차단되고, 도리어 846년에 자객에 의해 암살되는 것으로 생을 마칩니다.
완도가 국제적인 항구로 성장하고 지금의 완도의 차원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인데 장보고는 암살됩니다. 장보고의 세력을 두려워하는 반대파가 보내는 이에 의해 암살되거든요.
장보고가 죽고 난후, 그를 죽인 이들이 한동안 청해진의 실권을 잡지만, 851년 청해진 세력을 벽골군으로 이주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벽골은 지금의 김제를 말하거든요. 실제 김제 아리랑 문학관 앞에 보면 거대한 탑이 있고 거기에 청해진에서 이주했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왜 여기 사람들을 김제로 이동케 했을까? 그것도 장보고 사후 5년이 지나서.
물론 군사력을 갖춘 해양세력이 신라 왕실을 위협하니 그 요소를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바다와 인접한 김제 일대의 간척사업과도 관계있을 것이다고 말하는 논문도 보게 됩니다. 바다를 개척해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개척해서 경제적인 이득을 노린 것이지요.
장보고를 얘기할 때 앞에 ‘해상왕’이라는 별칭을 붙입니다.
국가간의 경계가 땅으로만으로 제한되던 시절, 바다를 개척했던 나라는 세계 대제국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장보고는 완도라는 한 지역을 넘어서는 국제적인 인물이었지요.
완도군의 브랜드 슬로건은 ‘건강의 섬’입니다.
탁 트인 바다, 맑은 공기,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전복 등의 해산물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해조류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더욱 더 해산물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더라구요. 지역 행사 이름에 ‘세계’를 붙이는 것이 최근 트렌드인 듯 한데, 적어도 완도라면 세계를 주름잡던 장보고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체험학습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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