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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독립기념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다녀가야 할 곳

2017년 08월 11일(금) 18:35
독립기념관 전경.
저는 매주 광주에서 출발하는 역사여행을 떠납니다. 그 중 주고객층은 초등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입니다. 주고객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더 효율적이겠지요. 그래서 아이들 대상 여행주제는 초등 사회교과서의 주제에 맞추어 준비를 합니다. 3월이나 9월에 선사시대부터 시작해 매달 일정하게 교과서 단원 제목을 주제삼아 시대순으로 떠나기도 하고, 이벤트적인 날짜에 맞추어 그때 그때 일정을 잡기도 합니다.
8월 중순 이맘때 날짜 이벤트에 맞춘다면 곧 다가올 광복절을 소재삼는 주제여행이 좋겠지요.
초등 역사교과 단원중에 ‘주권수호와 독립운동의 전개’라는 목차가 있습니다. 이 단원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곳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입니다.
독립기념관을 안내하기 위해 예비답사차 처음 찾았다가 스스로 결론 내렸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다녀가야 할 곳이라고요.
제 생각과 통했을까요? 군복입은 이들이 삼삼오오 보입니다. 휴가중 군인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면 휴가가 하루 연장된다고 합니다. 이 기사 읽고 있는 휴가군인이라면 친구랑 함께 독립기념관으로...


독립기념관은 넓습니다. 제가 전국의 박물관이며 역사유적지를 많이 돌아다니지만, 단일 주제의 유적지로는 제일 넓습니다. 공식적인 통계로 비교해본 것은 아닙니다만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주차장에서 건물까지 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지만, 전시관 또한 넓고 다양한 유물이 있으며, 해설글 또한 평생을 봐도 다못볼 것 같은 규모입니다.
제1관을 보고 밖으로 나와 제2관으로, 다시 제2관을 보고 밖으로 나오면 제3관의 입구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제1관부터 제7관까지 있습니다.
제1관에는 ‘겨레의 뿌리’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우리역사 각 시기별 자랑스런 과학문화재와 외침을 극복한 모습들이 축소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2관은 ‘겨레의 시련’이란 제목으로 조선말 외침의 시작과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며 독립기념관이 필요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어 제3관 ‘나라지키기’, 제4관 ‘겨레의 함성’, 제5관 ‘나라 되찾기’, 제6관 ‘새나라 세우기’로 각 시기별 독립운동과 해방 등이 큰주제로 묶여 각각 한 전시관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제7관은 체험활동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잡하지요? 제가 박물관 역사여행시 잘하는 멘트. 선택과 집중. 관람시에는 미리 준비된 자료집으로 선택된 유물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만 여기선 딱 세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첫째 제2관의 을사늑약 현장입니다. 을사늑약 - 을사년에 일본과 강제로 맺은 조약입니다. 일본이 외교권을 가져가지요.
테이블에 양측 대표가 앉아 싸인을 하는 모습입니다. 을사오적의 모형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마네킨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토오히로부미와 함께요.
나라가 빼앗기는 모습임에도 평화스러운 광경에 놀랐습니다. 나라가 전쟁에 패해 망하거나, 불가항력의 재해로 없어진게 아니고, 위정자들의 싸인에 의해 나라가 망합니다. 아주 평화스럽게 망하지요.
을사오적은 일본이 우리를 보호해야 우리가 번영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또한 위정자의 잘못이지만, 그러한 판단이 개인의 영달울 위한 것이라면 안되지요. 분명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게 땅을 받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외국과의 무기 거래에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싸인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밉니다. 나라가 평화롭게 망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소개드릴 장면은 한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1932년이지요. 갓난 두 아들을 두었던 스물 다섯의 젊은이. ‘죽어야 할 가장 좋은 때를 찾았다’는 편지를 남긴 그가 떠나기 전 백범 김구와 시계를 맞바꿉니다. 그 시계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일본군의 승리축하 잔치에 폭탄을 던지고, 잡혀, 사형 당하지요.
제5관의 윤봉길 의사 폭탄의거 현장입니다. 폭탄 던지는 장면과 일본군 수뇌부가 나가 떨어지는 모습에서부터, 남긴 편지글, 도시락 폭탄 그리고 사형틀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윤봉길. 그가 만약. 1908년생인 그가 올해 탄생 백주년이라는 1917년생 누구처럼 일본 군관학교라도 들어 갔었으면 두 살 때 영양실조로 죽었던 아들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며 그의 손자들은 지금쯤 대한민국의 정치, 언론, 재벌 어느 틈에 끼어서, 목소리 높이고 있지 않았을까요.

이어 세 번째는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입니다.
정식명칭은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18년에서 1926년 완공된 당시 아시아에서 제일 큰 건물로 일제가 35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했던 총본부로 지금은 독립기념관 한켠에 전시공원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경복궁의 위용을 가리기 위해 근정문 앞 문인 흥례문을 헐고 경복궁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건물이지요. 광복이후에도 우리는 중앙청건물로 이어서 박물관으로도 사용을 했습니다. 광복 50주년을 맞고서야 철거를 하게 되었지요.
일본에서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대로 분해해 일본으로 가져가면 안되겠느냐. 헛소리 말아라 그 다음날 바로 폭파. 사실은 폭파는 없었고, 부시고 뜯어내어 중앙 뾰쪽탑을 이루는 부재들을 독립기념관에 전시해 두었습니다. 독립기념관의 서쪽에, 지면으로부터 5m 아래로 움푹 들어간 곳에 전시되어 있지요. ‘날 일(日)’울 쓰는 일본이 서쪽으로 해가 지듯 아래로 내려가길 염원했을까요?


독립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어디서나 보이는 이런 저런 먹거리가 유혹합니다. 그중 이곳 천안에서는 원조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천안 원조 호두과자가 있습니다. 고속도로휴게소의 대표간식인 호두과자는 바로 천안이 그 원산지입니다. 호두 자체가 천안에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지지요.
천안 광덕사에 가면 호두나무 시배지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전 고려 말 충렬왕 12년에 유청신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묘목 3그루와 종자 5개를 얻어 그의 고향 천안에 심은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는 소개글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시기며 사람이름까지 있는 걸 보면 거짓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런데,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호두씨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신창동이면 기원 전후시기 광주에서 초기철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겨진 곳입니다.
호두의 원조는 천안이 아니고 광주? 독립기념관을 빠져 나오는 길. 호두가 천안이 원조인것만은 아닌 것처럼, 독립을 기념하는 공간은 천안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광주에도 만세운동이 있었고 그로 인해 옥고를 치렀던 사람,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렀던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를 기념하는 광주일고와 수피아여고 3 1운동기념탑 등이 있고,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나 백범기념관도 광주에 있습니다.
광복절이 돌아옵니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그냥 식순이겠지’라며 가벼이 여기지 말고, 내가 내나라에 이렇게 서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을 거라는 고마움을 갖고, 순국선열게 묵념하는 시간을 갖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체험학습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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