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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 넓고 깊은 숲(35) 악학궤범

하루아침에…

2017년 08월 25일(금) 00:00
어쩌다 한번 날을 잡아 지갑을 정리하다 보면 돈은 커피 전문점에서 준 여러 장의 쿠폰카드를 발견한다. 커피 잔 수만큼 도장을 찍어주는 쿠폰카드... 매번 새로 쿠폰카드를 받아 도장을 찍다보니 채우지 않은 쿠폰카드가 지갑 안에 가득하다.

도장 받는 일이 참 즐거운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참 잘했어요'라는 여자와 남자 아이의 얼굴 모습이 있는 도장을 선생님께 받을 때면 집에 가서 엄마에게 내밀기까지의 설렘도 좋았고 딸아이의 작은 결과물에도 좋아하시는 엄마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던 때다. 조금 커서는 인감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도장에 대한 책임감에 그 무게도 커졌던 기억이 있다.

여러 곳에서 도장이 필요했는데 요즘은 자필 서명으로 해결되는 것이 많아서 그런지 도장 파는 가게 또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울 종로 인사동 거리에서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멋스러운 도장을 파는 정도의 용도로 도장을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어느 결에 우리 곁에 여러 것들이 변화하고 있고 그것을 기억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도장보다도 더 오래전에 있었던 도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꼿꼿하게 들고 있는 머리와 둥그런 등 그리고 바짝 올라가 있는 꼬리까지…. 참 예쁜 거북 모양의 도장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 놓인 '덕종어보'의 모습이었다. 이 덕종어보는 1471년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이 세자의 신분으로 요절한 아버지 덕종을 온문의경왕으로 추존하면서 제작한 도장이다. 어느 결에 덕종어보는 바다 건너 미국까지 가 있었고 민간의 노력으로 오랜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2015년 4월 우리나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덕종어보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제작된 모조품이란다. 이것이 모조품임을 알고도 감춰버린 문화재청의 일은 뒤로 하고 이 덕종어보의 모습이 참 처량해 진 것이 안쓰럽다. 꼿꼿하게 서있는 머리, 둥근 등, 힘차게 뻗은 꼬리까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있는 1924년 재제작된 덕종어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처지…. 그것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감추고 이유를 대고…. 오늘따라 말줄임표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디로 가야할까 행선지를 잃어버린 그것이 미국에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만 같다. 아버지를 기리고자 이 덕종어보를 만든 마음까지 먹물이 튄 것만 같다.

그런데 성종은 내게 다른 무엇보다도 성현, 유자광 등이 조선시대 의궤와 악보를 정리해 1493년(성종 24)에 9권 3책으로 편찬한 '악학궤범'이라는 악서(樂書)와 연관되어 떠오르는 왕이다. 왕의 지시와 지지가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악학궤범. 음악의 이론 뿐만 아니라 법식까지 다룬 악서이기에 이 분야에 대해 그 시대를 읽어내고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문헌이다. 이렇게 문화를 사랑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던 성종이 환대받던 덕종어보에서 오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덕종어보 속 거북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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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광주국악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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