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
공자는 중국 고대 혼란기인 춘추시대를 살았던 귀족 출신이다. 춘추시대는 주(周) 왕조 후반기로, 한마디로 사회적 혼란이 끊이지 않은 난세이기도 했지만, 위아래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주 왕조 초기의 봉건제가 붕괴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은 공자의 정신



이처럼 무너지는 질서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었다. 그 방법이 바로 '사욕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에서의 예(禮)였고, 인(仁)이었다.
공자는 하늘이 그런 역사적 사명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게 부여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광(匡) 땅에서 양호라는 인물로 오인되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을 때도 '광 땅 사람들이 감히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고 호기를 부릴 수 있었다. 사명감을 넘어선 천명의식과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늘이 자신을 이 땅에 내린 것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라는 큰 뜻이 있어서이니, 어느 누구도 하늘의 동의 없인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들 수 없을 것이라는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끝내 잡지 못한 공자이니 만큼, 삶을 놓아야 하는 순간에 그 좌절은 클 수밖에 없다. 그 좌절의 한탄이 바로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부활했던 것처럼 공자 역시 부활한다. 공자의 사상은 BC136년에 한(漢) 왕조의 동중서에 의해 관학(官學)으로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화려하게 만개해 공자는 신(神)에 버금가는 성인이 되고, 동양사상의 대들보로 우뚝 서고, 나아가 인류의 태산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태산이고 대들보이고 또 철인이라는 것은 자신했지만, 그 철인, 대들보, 태산이 결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세워져 인류의 정신 속에 영생하리라는 것은 공자 본인도 알지 못했던 셈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시대를 마치고 인간철학시대를 연 소크라테스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겠나?"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감사의 표시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바쳤다. 과거에 병이 나은 뒤 닭을 바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또는 독배를 들이켜고 영혼이 육체의 구속을 영원히 벗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겠다는 의도인지 망자의 속마음을 알 길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그렇게 작은 일까지 모두 챙기면서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는 태도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론'을 믿었다. 죽는다는 것은 육체만 없어질 뿐 영혼은 그대로 남는 것이며, 영혼은 자신의 선한 주인인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영혼의 활동인 사유(思惟)를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에게 사유를 방해하는 육체와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가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맞는 태도는 후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진실로 신을 믿고 진실로 천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진실한 신자라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어야 한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보여 주었다. 스스로를 독실한 신자로 내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또 그에게 뒤따라야 할 실천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소크라테스가 평화로운 유언과 초연한 죽음으로써 보여준 것이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