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23번지(망덕길 249)에 가면 정병욱 가옥이 있다. 정병욱 가옥이 문화관광 명소로 떠오른 것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서시를 쓴 윤동주의 유일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육필시고가 보존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문화재청은 정병욱 가옥을 등록문화재 341호로 지정했다. "1925년 건립된 이 건물은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가 온전히 보존되었던 곳이다. 윤동주(1917~1945)는 1941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 원고를 그의 친우인 정병욱(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22~1982)에게 맡겨 이곳에 보관해 어렵게 보존되다가 광복 후 1948년에 간행돼 빛을 보게 됐다.

윤동주는 생전에 자필 원고 시집 3부를 필사해 자신과 스승 이양하 교수와 자신이 다니던 연희전문대(연세대 전신) 2년 후배였던 정병욱과 나눠 가졌다. 정병욱은 윤동주와 기숙사며 하숙방을 같이 쓰면서 친해졌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 광양에 있는 어머니에게 원고를 잘 숨겨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이나 동주가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잘 간수 하여 주고 둘 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면 연희전문학교에 보내 세상에 알려 달라"며, 어머니는 원고를 마루 밑 독 속에 숨겼다.

그러나 윤동주가 일본 도쿄 릿쿄 대학 유학중 독립운동 협의로 일본감옥에 투옥됐다가 해방을 앞두고 1945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접한 뒤 학병에서 돌아온 정병욱은 원고를 고인의 유족들에게 전달했고 1948년 비로소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정병욱은 회고록의 '잊지 못할 동주 형'에서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동주가 지금처럼 국민적 시인인 된 것은 정병욱의 시고 보존과 함께 지난 9월 5일 작고한 마광수(1951~2017)교수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1983년 박사학위 논문인 '윤동주 연구'는 우리국문학사상 최초로 윤동주 시를 모두 분석했다. 이 논문은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지금까지도 이를 능가하는 윤동주 연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교과서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윤동주 역시 모두 마광수의 논문에서 인용된다. 지난해 어느 방송에서 마광수 교수는 말했다. "윤동주는 기적이에요, 기적.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육필원고가 보존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전에 시인으로 공인받은 적이 없었던 그의 시가 친구들의 힘으로 발굴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의 축복입니다."

윤동주는 후배를 잘 둬 유명한 시인이 된 셈이다. 후배인 정병욱이 원고를 잘 보존 해 빛을 보게 했다면, 그 빛을 만천하에 퍼지게 한 것도 역시 후배인 마광수(연세대)다. 사실 광양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옥 가옥은 윤동주 시고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고 윤동주는 마광수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래서다. 광양 망덕포구의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찾는 이들에게 윤동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면 마광수의 윤동주 관련 업적도 보존 전시해야 하지 않을까. 마광수가 더해진 광양의 정병욱 가옥은 마광수 문학의 업적만큼 문화적 자산으로 축적될 것이다. 올해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올해 마광수 교수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김 철 성 전남도도로관리사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