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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 넓고 깊은 숲(42)죽장망혜

소시민의 꿈

2017년 10월 27일(금) 00:00
퇴근길 우편함에 꽂혀있는 고지서들이 혓바닥을 길게 내뻗고 있듯 우편함 밖에까지 나와 있다. 이것들은 내는 날이 왜 저마다 달라 맞춰 내기 힘들게 하는지….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자동이체를 하라지만 그것도 귀찮음 지수가 높은 나로서는 아직도 직접 은행을 가서 낸다.(그게 더 귀찮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다보니 지갑 안에 잔뜩 고지서들을 모았다가 무엇인가에 떠밀리듯(더 밀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체금을 더해가며 내는 때가 허다하다. 어느 개그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스튜핏 그레잇!"

월급날에 대한 설렘도 없다. 그저 나중에 통장을 보면 흔적만 남기고 아련히 사라지는 것들이라서…. 그러다가도 가끔 큰마음을 먹고 계획할 때가 있다. 한 달에 얼마씩 적금을 들면 일 년이면 얼마고 삼년이면 얼마고…. 계산하던 계산기의 숫자를 '0'으로 만든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는 해도 월급에서 얼마를 떼어 모아보려니 모아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노년에 들어가 어떻게 또 사십년을 살지 계획을 해야 하는데…. 이런! 모든 것이 말 줄임이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도 없는 모습을 보며 참 욕심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사실 큰 욕심은 없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이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머리 위에서 거품처럼 팡팡 터진다.

이 순간 떠오르는 노래 '죽장망혜 단표자로…' 정말 이 노래처럼 삶을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이 노래는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소리 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서 짧게 노래하는 단가로 또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병창을 할 때 많이 불리는 노래 단가 '죽장망혜(竹杖芒鞋)'이다.

'죽장망혜'라는 노래 제목은 우리 노래가 흔히 그렇듯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單瓢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로 시작하는 노랫말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그리고 '죽장망혜'라는 뜻은 대지팡이와 짚신을 뜻하는 것으로 욕심을 버리고 간단한 차림으로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던 자연인이 그런 것일까? 욕심을 버리고 산천을 구경 간다는 내용의 이 노래에는 우리 노래에서 또 흔히 볼 수 있듯 중국 고대의 성현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잠시 이 노래의 역사를 보면 1940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창극'은 판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창극사'에는 당시의 여러 명창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판소리의 유래와 이론, 그리고 역대 명창들의 더늠 등을 담았다.

그런 내용 가운데 조선시대 철종·고종 때 동편제(東便制) 명창인 김세종에 대한 언급이 있고 그가 너름새를 강조하면서 예로 '죽장망혜'를 언급한 내용을 보아 단가 '죽장망혜'는 아주 오래전부터 불린 것으로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중들은 냉정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내 사라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노래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애창되는 것은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힘든 세상 훌훌 털고 산천을 구경하며 멋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가며 살고 싶은 꿈…. 그것을 대변해 줘 그런 것은 아닐지.

저 멀리 산까지 가지 않아도 가을을 만난다. 논의 벼가 노랗게 익어간다. 길가에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어간다. 익고 물들고 참 바쁜 이 계절 소시민의 꿈도 단단하게 익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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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광주국악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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