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기로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소설가 정미경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다. 정 작가의 남편 김병종 씨는 1주기를 맞아 집필실에서 발견한 한 편의 소설을 세상에 선보인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은 암 투병 중 급성 폐렴 합병증으로 삶을 마감한 정 작가의 진정한 유작이다. 미리 출판사에 넘겨지거나 가계약을 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책 더미 속 박스에서 발견된 이 원고는 남편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남편 김병종 씨는 "원고지를 출력해놓고 책 더미 속에 놔둔 이유가 따로 있겠지만 아내의 삶도 미완으로 끝났듯이 미완은 미완인 채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출간 계기를 밝혔다.

이 책은 남도에 위치한 어느 작은 섬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평소 삶의 다채로운 양상들을 세밀하게 펼쳐 보였던 정 작가답게 섬을 떠났으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세심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수는 친구 태이를 잃고 상담실과 병원을 전전하는 딸 이우를 고향 친구 정모에게 부탁한다. 점차 시력을 잃어가던 정모는 섬의 소금 창고에 흥미를 느끼고, 도서관으로 꾸밀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정모와 이우는 도서관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괴롭히던 과거와 앞으로의 일들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이우도 말 못하는 판도와 손바닥에 글을 써 대화를 주고받으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소금 창고 주인 영도의 반대로 개관을 코앞에 두고 도서관을 원상복구 시킬 위기에 처한다.

이처럼 손바닥 안에 삶의 희망을 쥐고 사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전한다. 각 인물마다의 사연이 나는 도입 부분은 인물과 배경의 빠른 전환으로 이해가 어렵기도 하나 점차 하나의 이야기로 어우러진다. 탄탄한 뼈대를 구성한 이 소설은 상처와 사업 실패 등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해 점차 사람 사는 모습으로 바뀐다. 말이 없던 이우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하고, 사업에 실패한 태원은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한다. 또, 이삐 할미는 세 명의 아들을 바다에 묻었지만 판도를 거두어 기르고 정모와 이우의 반찬도 챙겨주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다. 한 순간의 삶도 망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강렬한 바람을 섬을 통해 풀어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섬은 전남 신안으로 문화를 중요시하던 당시 신안 군수의 제안으로 이 책을 쓰게 됐다. 집필을 진행하던 시기는 정 작가의 몸이 급격히 무너져 내린 시점과 맞물려 화려한 문체와 현란한 속도감을 자랑하던 이 전 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숨 가쁘게 몰아가던 문장들이 한 결 느슨해지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남편 김 씨는 "예술도 삶도 완성은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정미경 스타일을 벗어난 이 책은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열릴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고 전했다.

문학동네. 22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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