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 제4 교섭단체 등장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교섭단체 합의 역사적 실험 시작됐다.”

개헌은 물론 선거구제 개편 논의 탄력

다당제 정치 착근시키는 촉매 역할 기대

6.13지방선거 앞두고 호남지역 영향력 관심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간 국회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진보정당간 역사적인 실험이 시작됐다. 공동교섭단체 구성은 이미 지난 2008년 선진과 창조 모임이 있었으나 진보정당간 교섭단체구성은 처음이다.

특히 민주평화당의 경우 바른미래당과 통합을 거부하고 홀로서기에 나서기는 했으나 독자적인 교섭단체구성에 실패하면서 정치적위상이 크게 약화된 상태여서 호남지역에서 6.13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제4교섭단체 등장은 더불어민주당·평화당·정의당 등 범여권 2개 교섭단체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범야권 2개구도로 재편되면서 바른미래당이 가졌던 캐스팅보트를 평화당·정의당이 공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개혁 성향 정당의 교섭단체구성으로 개헌은 물론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와 선거구제 개편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게 확실하다. 정의당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 확대를 주장해왔다.



글 서울=강병운 기자





정치적 지향점이 서로 다른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국회 교섭단체 구성은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않다는 점에서 크게 관심을 모은다. 양당 모두 논란을 거듭 하다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지만 향후 의회 지형이 요동치고 여야 협상 전략의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내 협상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고차원 협치 방정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제4교섭단체 출범은 다당제 정치를 착근시키는 촉매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거대 양당의 극한대립으로 의정이 마비되는 일이 상시화되면서 국회선진화법 제정 후에는 ‘식물국회’로 전락하며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2016년 총선에서 제3당 국민의당이 등장하며 숨통이 트였다. 완충지대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 독점했던 지역패권 정치 구도에도 균열이 생겼다. 제4교섭단체 등장으로 다당제 정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원내 4교섭단체 체제가 협치를 성숙시키는 변화의 정치를 만들어낼지 관심거리다.

국회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져야 구성할 수 있어 미니 정당의 숙원 과제이다. 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되면 의사일정 변경 동의 등 국회 운영 권한을 행사하고 상임위 간사 자격이 주어지는 등 원내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 민평당은 14석이고, 정의당은 6석으로 두 정당이 합하면 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을 맞출 수 있다.

양당은 원내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해 개헌 또는 선거제도 개편 등 핵심현안에 대한 사전 협의에서 배제돼 왔다. 국회는 철저하게 교섭단체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회 관행이 교섭단체 단위가 되어야 상임위원장을 배분 해주고 각종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원내 발언권이 커져 존재감을 확실히 발휘할 수 있다. 언론 역시 교섭단체 위주로 보도하기 때문에 비교섭단체는 그만큼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공동 교섭단체의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도 정당을 표방하는 민평당과 진보 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 간의 정체성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교섭단체의 경우 정당 보조금을 받지 못해 실질적인 혜택은 누리지 못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정당보조금은 인위적인 공동교섭단체를 막기 위해 하나의 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했을 때만 지급된다. 우여곡절을 거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지난 20일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협상에 본격 돌입했다. 4월 임시국회 전까지 협상을 속도감있게 진행해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자칫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공동교섭단체 구성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민평당과 정의당은 양당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원칙 아래 개헌·남북 관계 등 대형 이슈에서 원내 교섭력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양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힘을 합치고 있다. 양당은 소선거구제 폐기와 투표의 비례성 강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주요 쟁점은 공동교섭단체의 사령탑인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배분이다. 양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하반기 국회에서 상임위 1곳의 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을 번갈아 맡는 기간과 주요 상임위 간사직 등에서 양당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의당은 협상 결과를 다시 전국위에 회부해 공동교섭단체 구성 여부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앞으로 평화당·정의당 공동교섭단체가 구성되면 장병완·노회찬 각당의 원내대표 중 한 명이 공동교섭단체의 대표직을 맡고 기존 원내대표직을 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장병완 원내대표가 평화당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면서, 공동교섭단체 대표의원 자격으로 여야 교섭단체 대표 협상에 나서는 식이다. 통상 의석수 20석 이상의 교섭단체의 경우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당내 1인의 원내대표가 맡는다. 하지만 비교섭단체라서 ‘교섭단체 대표의원’이 없는 평화당과 정의당이 공동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되면, 이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한쪽에서 공동교섭단체 대표직을 차지할 경우엔 대표를 배출하지 못한 정당에서 확보 가능한 상임위원장직을 나눠서 맡는 방안도 거론된다. 공동교섭단체 대표직을 평화당과 정의당이 3개월이나 1년씩 돌아가면서 맡는 방안도 거론된다. 또 공동 교섭단체의 명칭은 ‘평화와 정의의 모임’ 또는 ‘정의와 평화의 모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4번째 교섭단체가 구성되면 20대 국회 원내 세력 구도도 바뀐다. 범진보는 민주당 121석(민병두 의원 사직은 미처리), 평화당·정의당 20석, 평화당으로 활동하는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3석,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 정세균 국회의장, 민중당 1석 등 모두 148석이 된다. 범여권이 전체 재적의원 293석의 과반수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