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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북경 자금성

명·청나라 24황제 8천칸 궁궐서 호령
현존 궁궐 세계 최대…소현세자 머물렀던 곳

2018년 06월 28일(목) 19:49
천안문에 이어 오문을 지나 태화문에 들어서면 자금성에서 가장 거대한 태화전을 마주하게 된다.
경산공원에서 바라본 자금성.



역사여행 팀을 인솔해 중국 북경에 와 있습니다.

북경(北京). 중국의 수도인데 왜 북쪽 북에 서울 경을 써 북경이라 불릴까? 북경은 3,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도입니다. 참고로 중국 맥주하면 우린 청도맥주를 많이 떠올리는데 북경에는 연경맥주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가 연경인 지금의 북경이었습니다. 중국이 청나라인 시절 조선에서 청으로 가는 사신들은 '연행(燕行)'이란 표현을 썼고, 다녀온 기행문을 '연행록'이라 했습니다.

기원전 활약했던 연나라의 도읍지 연경은 이후 몽골족의 원을 비롯 몇몇 왕조의 도읍이 되었다가, 남쪽 금릉(지금의 남경)에 도읍을 정했던 명나라 주원장이 원을 멸하고 북쪽을 평안케 했다는 의미로 북평(北平)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명 3대 황제는 황제가 되기 전 북경 일대를 분봉받아 연왕으로 불리었는데, 그가 황제자리에 오르고 도읍을 옮기면서 서울 경이 들어간 북경이란 이름이 사용됩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600년 동안 이름하고 있지요.



역사여행으로 우리의 서울에서 딱 한 군데만 보겠다고 하면 어디를 보게 할까? 저는 경복궁을 추천합니다. 경복궁이 서울을,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제쳐두고, 궁궐 건축은 그 당시의 최고의 기술의 집합체이고, 서울은 현대화 되었지만 이전의 역사 또한 응축되어 있기에 고도의 품격을 드러내는 궁궐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수도인 북경에서 딱 한 군데를 간다면 바로 북경의 궁성인 자금성을 추천합니다.

자금성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현존 궁궐로는 세계 최대 크기입니다.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에 금지할 금(禁)을 써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영어 명칭은 금지함과 거대함으로 의역해 Forbidden City(숨겨진 도시)로 불립니다.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부터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물러날 때까지 두 왕조 24황제가 머물던 궁궐입니다.

9천9백99칸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실제로는 8천여 칸이 된다고 합니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의 면적 안에 건물들이 꽉 차 있어 자금성 안의 건물을 다 돌아본다는 것은 단기 여행객에겐 불가능한 일이지요.

자금성에 들어서려면 천안문 광장을 지납니다. 1949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 현장이며, 1989년 중국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건이 발생된 곳이기도 합니다.

천안문에 이어 오문을 지나 태화문에 들어서면 자금성에서 가장 거대한 태화전을 마주합니다. 황제가 공식행사를 하는 곳이지요. 조선에서 연행했던 수많은 사신들은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규모에 눌렸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원대 이후 조선 공녀로 차출되어 자금성에 머물렀던 수많은 조선 여인들의 향수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역사여행하는 우리 일행들에겐 이곳에서 딱 한 명을 더 생각해 보자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금성에서 70일간 머물렀던 조선의 세자가 있습니다. 세자는 다음 왕으로 결정된 차기 대권 일순위 후보이지요. 조선 인조의 큰아들인 소현세자.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심양으로 끌려와 청나라가 북경으로 도읍을 옮긴 후 자금성에도 머물렀던 조선의 세자는 아담 샬이라는 독일의 과학자 신부와 소통하고, 청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서구 과학기술이 조선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구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돌아온 조선은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만 똘똘 뭉쳐 그는 귀국 후 2개월 뒤 의문사합니다. 과학 조선의 미래가 멈추는 순간이지요.

이웃 나라 중국, 우리에게 어떤 나라일까요?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당나라와 패권을 다투던 고구려, 당나라의 힘을 빌려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는 국가 체계를 당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후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중국 범주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최근 냉전시기 멀어졌던 관계가 한순간에 최대 교역국이 되는 것처럼 한중 관계는 이념으로 자를 수 없는 숙명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중국에게 그러한 것처럼 중국 또한 우리에게 그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사드 배치문제로 시작된 중국의 횡포가 대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실상은 속좁은 부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중국어 관련 책 세 권을 출판했습니다. 스스로 분류하자면 친중파 계열이지요. 한국을 향한 중국의 악수(惡手)로 저를 비롯한 수많은 친중파들이 이제 반중파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사드의 위협을 넘어 사람을 잃는 것이 됩니다. 자금성의 규모 만큼이나 중국은 중국다워야 하는데요.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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