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100세 인생이라면 반환점이 아직 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게걸스레 먹어대 뒤룩뒤룩 살찐 내 모습을 봤을 때 장수는 이미 물 건너갔다.

하여, 더 늦기 전에 인생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실 "인생 별거 있어?"라며 쿨 한척 했지만, 그래도 혹시 얻어먹을게 있나 싶어 이곳저곳 기웃기웃해보고,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각다귀처럼 굴지 않았나 싶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직선에 가까운 곡선을 그리며 살아라."

그래서인지 인생을 하나의 선(線)내지 길로 이해했고, 가끔 유혹에 휩쓸려 길(선)을 벗어나기라도 할라치면 화들짝 놀라 길을 찾아 헤맸다. 또한 방향성을 항상 의식하며 살았다. '반듯하게, 반듯하게'를 되뇌며 말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좋을 거라는 희망, 나를 포함해 세상은 개선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유쾌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질적인 면에서 나도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고, 어찌 해볼 수 없는 내 존재가 가련하고 막막해서 눈물 흘린 적도 있다.

평면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지구는 둥글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우리들은 발버둥 치며 지구를 굴리고 있고, 그리하여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그렇게 꾸역꾸역 나이를 먹는다. 삶의 궤적은 직선이 아니라 어쩌면 반복되는 원형(圓形)이 아닐까.

이구동성으로 인생의 지향점이 '행복'이라고들 말하지만, 과연 행복이 실체가 있기는 한 걸까.

한자를 쓰는 동양 문화권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전후다. 비슷한 말은 있었겠지만 이전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웰빙', '욜로', '소확행' 등 행복에 살고 죽는 행복지상주의 일색이니 격세지감이다.

가령 석기시대 원시인이나, 조선시대 농부에게 "행복하십니까?" 내지 "행복이 장땡입니다"라고하면 돌도끼로 피나게 까이거나 작대기로 먼지 나게 맞을 것이다. 배고파 죽겠는데 무슨 헛소리하느냐며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은 행복이 실재한다고 믿고, 온힘을 다해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행복은 신기루 같아 실체가 없음에도, 환상에 사로잡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이를 쫓고 있지 않은가? '행복에는 날개가 있어 붙들기 어렵다.'라는 속담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인생을 수놓는 천에 비유하자면, 전반기에는 그 겉면을 보며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후반기에는 그 안쪽에 있는 실의 어지러이 연결된 모습, 매듭을 이모저모 살피게 되며 비로소 실타래 같이 엉클어져 있는 인과관계와 삶의 비루함을 목도하게 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현실에 대한 갈망은 자꾸 커져간다. 비례하여 환멸 역시 커져만 간다. 인식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아름답지만, 의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또한 늙어갈수록 즐거운 일보다는 생활고, 권태, 병치레, 죽음 등 고통스러운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이에 상응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나이에 상응하는 여러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이제는 달콤한 행복을 꿈꾸기보다 평지풍파가 휘몰아치는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구명줄과도 같은 튼튼한 정신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쾌락을 바라기보다 고통 없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