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선암사·대흥사 세계유산등재

수행·생활·신앙의 천년 고찰…‘종합 문화 산실’

한국의 산사 7곳 모두 세계유산 등재…13번째 세계유산

불교 전통 계승, 세계 공감…자연과 동화·합일 구조물

화순 고인돌과 함께 전남 세계문화유산 보고지 각광

관광객들 급증 대비…보다 강력한 보존과 보호 관리 주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불 좌상

1000년 넘게 한국의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을 묶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ㆍ이하 ‘한국의 산사’) 7곳이 모두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이 가운데 전남은 화순의 고인돌에 이어 해남의 대흥사와 순천의 선암사 2곳이 포함되면서 세계문화유산의 보고지로 각광받게 됐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던 상황에서 ‘산사의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우리 문화유산의 자존심을 세우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일본 교토는 ‘사찰의 도시’, 중국 쑤저우(?州)는 ‘정원의 도시’가 되듯 우리나라는 ‘산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세우는데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당초 한국이 신청한 산사 가운데 순천 선암사등 3곳을 제외하고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만 등재하기를 권고했으나,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곱 개 사찰 모두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코모스는 역사적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 곳을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세계유산위원회는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이들 7곳을 모두 합쳐야 유산의 가치가 제대로 드러난다”면서 한국이 신청한 7곳 모두를 한데 합쳐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대흥사 단청

세계유산 필수 조건 ‘탁월한 보편적 가치’ 인정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대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 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신앙행위와 수행자의 삶이 공존하면서 이어져온 독특한 유산이다. 건축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 건축술의 계승이라는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신앙적 기능, 수행자의 삶과 문화를 포함한 의례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살아 숨 쉬는 유산이다. 1500여 년의 세월을 자연과 함께 오롯이 어우러져왔다. 이 가운데 순천 조계산 선암사(사적 제506호?명승 제65호)는 잦은 화재와 7차례의 중건 및 중창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배치를 깨지 않은 유기적 확장이 높게 평가받았다. 뿐만 아니라 2층 구조의 승방과 함께 약 1세기 전의 가람 배치,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사적 제508호?명승 제66호)는 넓은 산간 분지에 도량이 조성돼 있다. 크게 천불전을 중심으로 남원과 대웅보전 중심의 북원으로 영역이 나뉘는 가람 배치가 특징적이다. 한국의 산사는 7∼9세기 창건된 이후 신앙ㆍ수도ㆍ생활의 기능을 유지한 종합승원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았다. 또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 계획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건물 관리 방안, 종합 정비 계획, 앞으로 늘어날 관광 수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사찰 내 건축물을 지을 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협의할 것을 권고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OUV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산사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면서 네 가지 사항을 권고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산사 내 건물 등에 대한 관리 방안과 산사의 종합 정비계획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또 등재 이후 증가하는 관광객에 대한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산사 안에 새로 건물을 지을 때 세계유산센터와 사전에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위원회의 요구는 비지정 문화재까지 포함해 산사 내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보존과 보호 관리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충실히 수행해 세계문화유산적 가치가 잘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앞으로 늘어날 관광객 수요에 대비해 종합적인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우리나라의 산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독일 퀼른 성당의 경우 옆에 있는 신축 건물로 인해 수 차례 경고를 받았다. 유네스코 기념물위원회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면 국제적인 망신이 된다”면서 “잘못 관리하면 (등재가) 취소된다”고 경고했다.





가람배치 형식이 아닌 자유롭게 배치

대흥사 단청

◇ 해남 대흥사

한반도 남쪽 해남 두륜산에 위치한 대흥사(大興寺)는 창건 시점이 명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이전으로 알려진다. 대흥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로 많은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다. 창건은 선암사처럼 아도화상 혹은 도선국사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가 되면서 깊은 인연이 흥미를 끈다. 임진왜란 이전의 대흥사는 일정한 규모를 갖춘 사찰다운 사찰이 아니었다. 그러나 1607년(선조 40)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서산대사와의 인연을 계기로 대찰로 발전한다. 서산대사가 입적한 후 조그마한 사찰이었던 대흥사는 크게 부흥하여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대찰이 되었다.

대흥사의 가장 큰 특징은 가람배치 형식이 아닌 자유롭게 배치한 독특한 공간 구성이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대흥사는 북원과 남원으로 구분된다. 남원에는 극락전, 대장전, 지장전 등 12개소, 북원에는 대웅보전, 나한전, 시왕전 등 24개소의 당우가 있었다고 한다.

대흥사가 위치한 두륜산은 ‘만년불패지지(萬年不敗之地)’라며 서산대사가 극찬한 곳이다. 한반도 서남단, 해남의 땅끝 가까이에 우뚝 솟은 두륜산은 능선이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와불(臥佛)형상이다. 이런 능선의 모습 때문인지 혹은 주위를 겹겹이 두르고 있는 산세에 위요된 아늑하고 안온한 절의 입지 때문인지 대흥사는 어떠한 외세의 침입이나 굶주림, 돌림병도 없었다. 대흥사가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점은 호국정신이 깃든 도량이라는 사실이다.

대흥사는 한국 다도의 본산으로 일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흥사가 배출한 대종사(大宗師) 13명 중 한 명인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재정립한 인물이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선일여(茶禪一如)’, 즉 다도와 참선은 하나라고 강조했다. 한국 다도의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는 초의선사와 관련된 시설과 흔적도 보존되어 있다.

대흥사 전경

대흥사에는 귀중한 문화재가 많다. 신라시대 자장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가 봉인된 보물 제230호 응진전전삼층석탑, 보물 제301호인 북미륵암 삼층석탑, 국보 제308호로 지정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다. 또한 여러 점의 탱화와 서산대사의 유물,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등의 편액이 남아 있으며, 보물 8건과 전남유형문화재 5건도 있다. 표충사는 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불교와 유교의 공존을 보여준다. 경내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는 조선시대의 명필가들이 직접 쓴 것으로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로 유명하다.

또한 대흥사에는 ‘연리근’이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유명하다. 수령이 500년도 넘은 느티나무는 수백 년 세월 동안 뿌리가 하나로 이어진 연리근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백년해로할 인연을 만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선암사 가람의 특징은 삼무(三無)

◇ 순천 선암사

태고종의 대표적인 사찰인 선암사는 조계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선암사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아도화상이 529년 ‘비로암(毘盧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는 설과 도선국사가 875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선암사는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 대찰이 됐으나, 18, 19세기에 걸쳐 7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네 차례의 큰 화재로 사찰존립의 근간을 뒤흔든 참화가 있었다. 현재 모습은 1824년에 갖춰졌다.

천년고찰의 길고 웅장한 역사가 서려 있는 선암사는 크고 작은 당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찾는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자연스레 쌓인 키 낮은 담장들 역시 정겹다. 선암사의 독특한 가람배치는 가파른 지형 때문이다. 좌우 방향으로는 넓으나 전후 방향은 조밀하게 모여 있다. 급한 경사지를 여러 단으로 깎고, 각각의 단에 축대를 쌓아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다.

선암사 가람의 특징은 삼무(三無)다. 다른 사찰과 달리 첫째, 사천왕문이 없다.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기 때문에 굳이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이 필요 없어서다. 둘째,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인 어간문도 없다.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어야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해서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협시보살상도 두지 않았다.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이 보유한 보물 14점 가운데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잘 다듬어진 자연 암반을 쌓아 홍예를 만든 대표적인 아치형 홍예교로 아치교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한 석교로 손꼽힌다. 매표소에서 선암사에 이르는 1.5km의 아름다운 숲길에는 참나무, 팽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등 짙푸른 녹음이 풍치를 더해준다.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기도 한 숲길은 여름이면 온통 진분홍빛으로 물든다. 선암사 아름다운 숲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봄에 피는 매화인 ‘선암매’다. 특히 봄이면 천연기념물 제488호인 ‘선암사 무우전매’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뒷간’이다. 해천당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된 뒷간이 있다. 맞배지붕에 마루바닥을 댄 목조건물은 T자형 모습을 하고, 아랫층의 큰 주춧돌은 큰 뒷간을 지탱한다.

칠전선원

선암사 특별한 볼거리가 가운데 ‘칠전선원’도 빼놓을 수가 없다. ‘전통차 법제 인간문화재’ 지허 스님이 약 50년간 선암사 다각(차밭을 가꿔 차를 생산하고 다례를 올리는 등 차에 관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스님)을 도맡아 관리했었다.

선암사는 자연의 푸르름 속에 자연주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절집이다. 곳곳에 조성한 연못과 활엽수, 꽃나무들이 화원(花園)의 숲을 이룬다. 화원의 아름다움을 지닌 내면에는 화재를 대비한 지혜로움도 세심하게 고려되어 있다. 가람의 곳곳에 연못과 수조를 만들고, 무우전, 응진당, 해천당, 원통전 등의 독립권역에 돌담과 흙담이 유난히 발달한 것도 방화수와 방화벽의 기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칼럼>



‘남도의 천년고찰’ 넘어 세계인의 유산되다

보존을 잘해서 후대에 잘 물려주느냐가 핵심과제

김희태(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



순천 선암사와 해남 대흥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13번째로 등재되며 이제 두 산사는 ‘남도의 천년고찰’을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됐다. 이번에 등재된 ‘산사’는 모두 7개 사찰이지만 전남 지역의 2개 사찰이 선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한국의 산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일반인에게는 신앙의 전당이자 승려에겐 수행의 장소이며 특히 수행, 생활, 신앙 기능이 모두 이루어진 종합 승원으로서 가치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의 전통을 1000년 넘게 변함없이 잘 가꾸어 온 점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선암사와 대흥사는 7~9세기까지의 분명한 창건시기, 현재까지 신앙, 수행, 생활이 온전하게 유지된 종합승원, 유?무형의 문화적 전통 지속, 주불전의 원지형이 유지되며 주위 건물과 주변 환경과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는 2011년에 신청을 한 뒤 2013년 잠정목록 등재에 이어 드디어 최종 등재가 됐다. 전남지역에선 화순 고인돌유적에 이어 2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문화유산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게 됐다.



선암사, 다중공간, 선수행 복합승원

9세기 후반 선종 사원으로 창건된 선암사(사적 제506호?명승 제65호)는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단절 없이 한국불교의 다중 공간 구성을 대표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곡저형 터에 석가신앙의 대웅전과 마당 중심 가람구조를 확립하고, 이 틀이 전체 입지에 네 겹으로 중첩되면서 각각의 용도를 완성하는 복합승원을 형성한다. 종합승원으로서 출가자와 신도들의 신앙공간(대웅전, 원통전, 불조전, 산신각 등)과 수행(달마전, 설선당), 생활(적묵당, 해천당, 해우소 등)의 다양한 전각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석가신앙의 대표 산사로 마당에서 주기적으로 영산재를 거행한다. 많은 대중이 생활하여 무량수전, 적묵당, 종무소, 설선당, 심검당과 같은 ‘□’자형 전각이 많다. 해우소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전통 화장실로 자연친화적 공간이다. 선 수행과 함께 발달한 차밭의 경영도 특징적이다. 차밭에서 흐르는 물을 3단 석조에 받아 활용하여 노동을 실천하는 산사의 면모를 보여주며 차문화 전파도 선도. 아름다운 승선교가 있고 주변 바위에 사찰 유지 모임과 유람 명사 이름이 새겨 있어 오랜 기간 계승된 신앙성을 증명한다.

대흥사, 호국신앙, 선교 교학전통, 대흥사

대흥사는 9세기 후반에 선종 사찰로 창건된 산사이다. 현재까지 단절 없이 한국불교의 계류형 다중 공간 구성과 호국신앙을 대표하는 산사이다. 대웅전 구역에서 계류를 건너 천불전구역, 표충사 구역, 대광명전 구역으로 사역이 확대되었다. 종합승원으로서 출가자와 신도들을 위한 대웅보전·천불전·산신각 등 신앙공간, 동국선원 등과 수행공간, 백설당·심검당 등 생활 공간의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그리고 석가신앙과 표충사의 호국신앙을 계승하고 선교 교학전통의 중심을 이룬 특징이 있다.

대흥사는 조선후기 불교를 정통으로 계승하는 13분의 대종사와 13분의 대강사 등 뛰어난 승려들을 배출하였다. 서산대사를 기리는 표충사와 서산대재(西山大齋)는 불교의 가치와 호국정신 및 유교를 융합한다. 유학자와 교류도 많아 명필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 현판에서 진정성을 볼 수 있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845건, 자연유산 209건, 복합유산 38건으로 총 1,092건이다. 우리나라 산사는 13번째 지정된 것으로 이제 세계문화유산들과 경쟁해야 한다. 지금까지 등재를 위한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어느만큼 보존을 잘해서 후대에 잘 물려주느냐가 핵심과제다.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할 유산이기 때문이다. 관광이 늘겠지만 이는 목적은 아니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