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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백제 역사유적 품은 공주

678미터 인절미의 유래는?
조선 인조,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 공산성까지 피난
누군가 떡을 해 올리니
'무슨 떡인데 이리 맛있는가'
임씨가 만든 전하의 절미,
줄여 인절미가 탄생

2018년 08월 23일(목) 18:31
석장리 유적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진짜 동물로서 곰과 호랑이가 아닌 곰과 호랑이를 믿는 부족 간 경쟁에서 곰을 믿는 부족이 외부 세력과 힘을 합쳐 새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지요.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첫나라이고, 그 시작엔 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사유적 도시 중에 옛 지명이 곰나루라고 불리던 곳이 있습니다. 곰 웅(熊)에 나루터 진(津) - 웅진이지요. 지금 지명은 공주입니다. 아이들 학습지 브랜드 중 웅진씽크빅에서 그 웅진이 공주에서 연유합니다. 웅진을 만들었던 기업주가 공주 출신이었거든요. 공주는 곰주라고도 불렸으며, 곰주가 발음하기도 어렵거니와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공주가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거기 하면 그것' 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성을 역사유적으로 한정한다면 공주는 백제역사유적이 대표하지요.

매년 부여와 공주에서 지역축제로 백제문화제가 열립니다. 몇 년 전 축제기간 공주에서 678미터 인절미 만들기 이벤트가 펼쳐졌습니다.

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에 터잡은 이후 고구려의 침입에 웅진으로 천도하고 재기를 노리며 다시 사비에 도읍을 정해 재도약을 하지만 결국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한 백제의 전체 역사가 678년입니다. 678미터 짜리 인절미의 이유이지요. 그런데 왜 인절미였을까?

공주엔 백제의 두 번째 도읍으로 왕궁을 삼았던 공산성이 있습니다. 북쪽으론 금강을 끼고 있어 천도 당시엔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한 산성이지요. 이 공산성에서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은 생포되며 백제의 역사는 끝이 났고, 그 언저리에서 후백제도 고려도 흥망을 뒤로한 시간이 천년이 흘러갈 즈음 또다른 임금이 공산성으로 피난해 들어옵니다. 조선 16대 인조임금입니다.

반정에 의해 옹립된 인조는 신하들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겠지요. 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 공산성까지 피난 온 것입니다. 피난길이었으니 정해진 시간 안정된 먹거리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 떡을 해 임금께 올리니, 궁색하던차 호의가 고마웠을 터, '무슨 떡인데 이리 맛있는가' 라고 되묻고, 공주에서 임씨 성을 가진 이가 올렸다고 하여, 임씨가 만든 전하의 절미, 줄여 임절미가 탄생했고, 발음하기 편한 인절미로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집니다. 678미터 인절미 이벤트는 백제와 조선의 역사가 빚어낸 합작품이지요.

678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제의 도읍은 세 곳이 있어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 식으로 도읍이 있었던 시기에 따라 구분합니다. 두 번째 웅진백제 시기는 475년부터 538년인 64년 동안으로 백제 역사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기간입니다. 백제역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미미하지요. 그런데 공주가 백제 역사를 대표하는데 손색이 없는 유적 유물이 백제 멸망후 1300여년이 흐른 1971년 장마철을 대비한 고분 배수로 설비 공사중 우연히 발견됩니다.

이전의 백제 무덤이 모두 도굴되어 빈껍데기만 있었던 것에 반해 백제 25대 무령왕릉이 어느 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왕과 왕비가 언제 돌아가시고 언제 묻혔다는 기록이 새겨진 지석이 출토되며, 함께 4,600여 점에 이르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그중 12종목 17건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언제 살았던 누구의 무덤인지 아는 만큼 유물의 절대연도가 확실해 백제 역사 뿐 아니라 당시의 동아시아 역사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무령왕릉도 공산성도 역사여행길 공주에선 꼭 돌아봐야할 주요한 코스입니다. 더불어 기왕 공주에 발걸음을 한다면 두 곳만 더 들렀다 가시길 권합니다.

석장리와 우금치입니다. 공주 금강 변 석장리엔 50만 년 전 부터 2만 년 전 까지 구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50만 년 전이면 호모사피엔스 이전의 호모에렉투스라고 불리던 그야말로 까마득한 오랜 시절의 흔적입니다. 공주 석장리유적이란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1894년 전라도에서 출발한 동학동민군이 한양으로 올라가던 길목에서, 조선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10만 농민군이 학살당한 우금치가 있습니다.

왕권을 지키기 위해 외국 군대의 총칼을 빌려 그 백성을 도륙한 집단은 그 백성의 주인 노릇을 포기한 것이지요. 조선왕조가 망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우금치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멸망을 역사로 공부했다면, 현시대 또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총칼로 국민을 억압해야겠다는 계획이 실행된다면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망하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역사 공부는 지나가는 시간에 일어났던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공부하면서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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