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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일곱 개의 궁 '칠궁'

후궁 신분인 왕의 생모 모신 사당
다섯 개 건물에 숙빈 최씨 등 조선시대 7빈 모셔
태조부터 시작해 현재도 제를 지내는 세계유산

2018년 09월 06일(목) 18:58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를 비롯해 희빈 장씨, 정빈 이씨, 영빈 이씨 등 조선시대 왕의 후궁 생모 일곱분을 모신 사당인 칠궁.
칠궁. 일곱 칠(七)에 궁궐 궁(宮)을 씁니다. 일곱 개의 궁궐? 칠궁에서의 궁은 궁궐이 아니고 사당을 말합니다. 다섯 개의 건물에 조선시대의 일곱 분의 신위가 모셔져 전체를 아울러 칠궁이라고 명명합니다.

조선은 유교국가입니다. 유교원리에 의해 국가가 구성되고, 움직이고, 유지됩니다. 인(仁)으로 대표되는 유교덕목들이 현실 생활에서 표현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더 발전할 수 있어야 국정지표로 삼을 가치가 있습니다. 범국가적으로 이럴 땐 이런 예로 저럴 땐 저런 예로 규범화 해 유교원리를 현실에 적용했습니다. 그 중 천지자연과 영혼에게 제를 올리는 예도 명문화 해 실천했습니다. 하늘은 천자의 나라에서, 제후국인 조선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를 지내는 사직단이 있었고, 선왕의 영혼을 모셔 놓은 종묘가 있었습니다.

종묘에는 조선 첫 임금인 태조의 4대조부터 시작해 역대 왕과 추존왕, 그리고 왕비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아직까지도 제를 지내는 세계유산입니다. 그래서 종묘에 모셔진 선왕과 선대왕비들은 한평생을 이승에서 살았지만, 영원히 제사가 모셔지는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이지요.

조선은 유교국가로 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국가 기반의 틀로 삼았습니다. 왕이라고 해도 불효 명목을 갖고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명분으로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광해군이 폐군 되는 이유중 하나는 계모인 인목대비에게 불효를 저질렀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효와 제사. 그 둘이 합쳐진 곳이 종묘이며 오늘 돌아보는 칠궁입니다. 칠궁에는 왕의 어머니이면서도 왕비가 되지 못하고 후궁 신분으로 종묘에 모셔지지 못한 분들의 위패가 모셔 있습니다.

칠궁은 처음부터 일곱 개의 '칠궁'은 아니었고, 그곳에 처음 모셔진 분은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이고, 그가 모셔진 곳이 칠궁 중의 하나인 육상궁입니다.

먼저 숙빈이라는 말부터 이해하고 가겠습니다. 조선시대 남자 중 제일 높은 이는 왕이고, 여자 중에 제일 높은 이는 왕비입니다. 왕이 죽으면 왕비는 혼자 살아야 했지만, 왕비가 죽으면 왕은 다음 왕비인 계비를 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아이들은 "그런게 어딨어요"라며 성차별을 들먹입니다. 어쨌든 왕비는 한명이고, 왕비가 아니면서 왕과 결혼한 이들이 후궁입니다. '비'는 조선 여성중 최고의 지위이며 계급을 넘어선 오직 한 명입니다. 계급상 최고는 왕비 다음의 '빈'입니다. 정1품 영의정과 맞먹는 품계입니다. 세자의 부인인 세자빈, TV 사극에서 보이는 경빈 혜빈 효빈 등등. 세자빈이 아닌 빈들은 왕의 부인이긴 하지만 후궁인 셈이죠.

후궁은 양반가에서 간택되어 들어오기도 했지만 궁녀중에서도 후궁이 되기도 했습니다. 궁녀중 가장 미천한 신분인 무수리에서 빈까지 오른 이가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입니다.

왕위에 오른 영조가 왕실의 예규범집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분석해 재해석합니다. 예의 규범이 만들어지던 당시엔 규범대로 행해졌지만 세월의 흐르면 변수가 생기고 예에 대한 해석은 해석하려고 하는 이에 의해 활용됩니다. 영조는 어머니의 무덤의 격을 올리고, 어머니를 모시는 사당을 지어 숙빈묘라 칭하고, 20년 후엔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의미의 육상이라는 건물의 이름을 올리며, 다시 10년 후엔 육상궁으로 승격하였으며, 200여차례 방문했다고 합니다. 영조가 후궁생모에 대한 제를 올리며 효를 실천하자 흩어져 있던 후궁생모를 모신 사당이 육상궁 곁으로 옮겨와 대우를 받습니다.

추존왕 원종(인조 아버지)의 어머니이며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 경종의 어머니이며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희빈 장씨를 모신 대빈궁. 추존왕 진종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를 모신 연호궁.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조 후궁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를 모신 경우궁.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 엄씨를 모신 덕안궁. 이 여섯에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이 더해져 칠궁이 됩니다.

칠궁의 가치는 무엇일까? 조선은 유교원리에 입각한 효를 중시한 국가입니다. 죽은 조상에 대한 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산 어른들에게 함부로 대할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은 지금의 복지와도 연결되는 제도적 측면도 있었고, 보여주는 교육적인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칠궁은 청와대 서편 담장을 경계로 자리해 청와대 관람 방문객에게만 관람이 허용되었었는데, 올해 6월부터 사전 예약하면 시간에 맞춰 관람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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