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국립광주박물관 제10대 관장으로 김승희 관장(58)이 취임했다. 김 관장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등에서 26년간 근무한 박물관 전문가로, 업무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동안 지역의 이름을 건 특별전을 진행해 온 국립광주박물관은 김 관장을 수장으로 맞으며 아시아관련 역사문화 콘텐츠로 시야를 확장, 이를 발굴·축적하고, 재생산하는데도 초점을 맞출 계획이어서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고 있다.



- 취임을 축하드린다. 광주와 인연은.

▲ 광주는 나의 육신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항상 동경해왔던 마음의 고향이다. 광주는 우리 현대사의 성지와 같은 곳 아닌가. 존경하는 많은 분들과 벗들이 이곳에 계신다. 이곳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고 영광이다.



- 국립광주박물관 40주년, 전라도 정도 천년 등 올해는 의미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행사 계획은.

▲ 전라도 정도 천년이자 광주박물관 개관 40주년을 맞는 올해 관련 행사들이 가을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먼저 전라도 정도 천년 기념으로 10월 22일부터 '전라도,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특별전이 개막된다. 광주박물관 40주년 기념으로는 12월 14일에 개최되는 학술대회 '전라도 공동체의 뿌리와 정신'을 한국학호남진흥원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이 40년간 운영될 수 있도록 함께해 준 시민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고 관련 인사들을 초청할 생각이다.

이밖에도 올해 보물 제1993호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를 공개했다. 잘 아시다시피 필문 이선제 선생은 광주가 광산현으로 강등됐을 때에 복호에 앞장섰고, 광주향약을 제정하셨던 분이다. 그분의 묘지가 어떤 연유인지 일본에 가 있었는데 이번에 기증받게 되고 국가중요문화재인 보물이 돼 우리 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12월 10일까지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시가 진행된다.



- 임기 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 구상은.

▲ 광주는 아시아문화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 박물관도 아시아관련 역사문화 콘텐츠를 발굴, 축적하고, 오늘날의 기호에 맞춰 재생산하고자 한다. 재생산이란 전시회를 포함한 다양한 박물관의 활동이다. 그것이 지역과 함께할 수 있는 박물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관에서 추진하는 '아시아 도자전문박물관 네트워크 구축 사업'은 광주라는 아시아문화 도시의 미래상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 소장품 중에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한 중국도자기는 이미 확보된 우리 박물관의 강점이다. 강진과 부안 등 고려시대 물질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도자기의 생산 역시 이 지역에서 주로 이뤄졌다.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은 계속 보완할 생각이다. 굳이 약점을 말하라면, 광주박물관은 당대 문화와 함께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세간의 인식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도자기와 관련하자면 현대 도예의 수용성을 높이는 것도 문턱을 낮추는 일일 것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장 등 전국 유수의 국립박물관에서만 26년간 일해 오신 박물관 전문가다. 박물관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박물관은 과거를 기록, 보존하는 상태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당대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획자들은 늘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관람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박물관 전시는 역사를 담아내고 그 역사가 오늘날 현실 속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선보이는 게 주 목적이다.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관람객이 오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지역 역사·문화의 전통성을 보존하고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문화 자긍심을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다양하고 색다른 접근을 통해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생활 밀착형 전시를 선보이고 싶다.



- 국립광주박물관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새롭게 차별화하실 점은.

▲ 지역이나 도시마다 당대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있다.

가령, 경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과거 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향수는 있으나 당대 문화에 대한 만족감은 미흡하다. 광주 사람들은 당대 문화에 관한 이해는 깊고 넓으나 과거에 대한 애착은 비교적 엷다. 광주나 전남지역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담양에 산재한 정자의 예를 들어 보자. 정자문화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개방성과 포용성에 있다. 정자에 물건을 들여놓거나 수식이 많으면 차경(借景)을 망친다.

정자는 비워져 있을 때, 장식이 적을 때 포용력이 확대된다. 전통을 대하는 광주나 전남 사람들의 태도는 정자를 대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옆에 정자를 두었으나 그 존재를 엷게 인식하는 것이다. 다양한 현대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내면화돼 있다는 뜻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정자와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늘 곁에 있으나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박물관은 호남전통의 자존감을 굳건히 지켜주는 장소로 지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기를 희망한다.

- 그동안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지역의 이름을 건 특집전, 대규모 특별전 등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 같은 기획들을 이어갈 생각이신가.

▲ 특별전은 주제의 시기나 당위성 등을 면밀히 주시하며 계획하고 있다. 다만 올 가을에 열릴 전라도 정도 천년기념 특별전이 비엔날레의 개최 시기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직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화순이나 곡성 등 지역전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 불교회화사를 전공하셨는데 불교문화 관련 전시 계획은.

▲ 전시 주제의 선정은 아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시점은 큐레이터의 연구가 축적되고 새로운 시선이 요구될 때이다. 내년에 있을 디자인 비엔날레와 보조를 맞춰 서로 도움이 되고 확산성이 큰 주제를 생각하고 있다.



- 국립광주박물관만의 특화된 점이 있다면.

▲ 농경과 도자문화가 특화돼 있다. 모두 생활 밀착형 주제이다. 거기에 더하여 풍류와 낭만이 깃든 주제가 있다. 시서화이다. 박물관의 특성화도 중요하지만, 박물관은 늘 새롭게 변신한다는 것을 시민에게 인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전통이 새로운 매체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지역 내 타 문화기관과의 협업 계획은.

▲취임 직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 광주시와 문화재단 등 여러 관계자들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상호 발전할 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통하고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함께 협력하겠다.

- 끝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 박물관 정원은 전시실 개방시간과는 달리 아침 8시에서 저녁 9시까지 365일 열어놓고 있다. 박물관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작은 정자를 만들고 곳곳에 평상을 설치해 시민 휴식처로 만들 예정이다.

박물관 내 아카이브 공간을 적극 활용해 전시도 보고 독서도 할 수 있는 공간도 구축하려 한다. 박물관 뜰을 이웃집 마실 가듯 이용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약력>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 · 아시아부장 ▲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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