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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41> 재도약의 도시 나주

나주읍성·금성관 등 천년 흔적 간직한 목사고을
한전공대 부지 결정으로 재도약 발판 마련

2019년 01월 31일(목) 16:24
나주객사 금성관
나주읍성 서문
나주향교
나주향교


작년 가을부터 이번 설연휴가 들어있는 주말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全羅千年- 전라도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018년 전라도란 이름으로 불려진 후 2018년 천년을 기념하며 많은 행사들이 있었고, 제게 보여지는 천년 이벤트 마지막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특별전인 듯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광역행정구역 이름은 대표 두 도시 앞글자를 따와 이름 지었습니다. 경주와 상주의 경상도, 충추와 청주의 충청도, 전주와 나주의 전라도처럼요. 지금이야 전라도의 대표 도시가 광주광역시이지만 나주가 대표성을 갖고 있었던 시간에 비하면 최근의 일입니다. 지방선거때가 되면 나주에서는 재도약이니 다시 일어서라 라는 등 과거의 영예를 되살리자는 캐치프레이즈가 자주 보이고,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의 포부를 밝히는데도 재도약이라는 말은 반드시 쓰입니다. 최근엔 몇 곳이 경합을 벌였던 한전공대 부지가 나주로 결정되었으니, 설 선물로 재도약의 발판이 또하나 마련되었습니다. 재도약을 준비하는 전라도 대표도시 나주를 찾아갑니다.





나주 해설사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천년 목사고을 나주 해설사 모모입니다’ 라며 운을 뗍니다. 나주에서 업체 상호로도 자주 보이는 ‘목사골’은 목사가 있는 고을이라는 말입니다. 목사는 목에 파견된 정3품 관리로 지방관으론 관찰사 바로 아래 등급입니다. 지방 행정 단위로서 ‘목’은 983년 고려 성종 때 왕성이 있는 개경을 제외한 전국 12개 주요 지역에 내려진 이름입니다. 지금의 광역시 급이지요. 조선시대는 많게는 20개까지도 있어 그 희소성이 줄어든 적도 있지만, 조선말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때 까지 변함없이 천년 동안 목사가 파견된 전국 여섯 개 중의 한 곳이 나주입니다. 북한에 1곳이 있고, 남쪽은 충주, 청주, 상주, 진주 그리고 나주.

사실 천년동안 목사가 파견된 곳이 나주가 유일하다면 천년 목사골의 네이밍에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는데, 전국에 6곳인데 뭐그리 대단하다고 자랑할까 싶고, 같은 충주 청주 진주 등을 가면 역사가 깊다라는 정도이지 천년 목사고을이라는 표현은 안쓰는데 왜 나주는 왕년에 내가 말이야 라는 천년 자랑을 할까.

천년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주읍성이 있고, 읍성안의 중심건물인 객사가 금성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남아있으며, 향교가 있고, 사또가 머물렀던 목사내아는 일반인들이 숙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주를 관광하면 목사고을 나주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옛 관아 앞으론 기념관의 기능을 하며 천년 목사골의 이름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유일한 목문화관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전라도 천년의 범위를 앞선 흔적으로 왕조 변혁기의 한 틀을 나주가 맡습니다.

말을 타고 뛰어오느라 숨찬 장수가 우물가에 있는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그 여인이 물을 건네며 버들잎을 하나 띄워 준 이야기. 남자 주인공이 고려를 세운 왕건이며, 그 현장이 나주 시청 인근 완사천입니다. 우물 옆으론 말을 타고 있는 왕건과 물을 건네는 여인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왕건과 샘물 인연을 맺었던 여인은 고려 첫째 임금의 왕비가 되고, 왕비가 낳은 아들이 고려 2대 임금 혜종입니다. 그래서 나주를 어향 - 임금의 고향으로도 표현합니다. 고려시대 내내 주요 거점지역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삼국시대 한 축인 궁예의 부하로 활약하던 왕건이 영산강에서 후백제 견훤과 대항하던 때. 사실 나주 또한 후백제 세력권인데, 완사천 이야기에서 보듯 나주는 왕건과 연합합니다.

왕건은 부인이 29명으로 전국 각지에 그 연합세력이 존재하지만, 왕건의 뒤를 이은 2대 임금이 나주 출신 어머님인걸 보면 나주의 위상과도 부합됩니다. 왕건과 견훤과의 격전지 중 하나인 자미산성. 지금은 낮은 언덕 정도의 모습이지만, 그 정상에 서면 반남 벌판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나주 반남에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아니 안가려해도 눈에 보이는 유적들이 산재합니다. 거대한 옛무덤들입니다. 신라 백제 가야 고분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겐 의아한 곳입니다. 여기에 나라가 있었나?

우리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입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었고, 왜 대한민국이었을까요. 정확히 백년 전 1919년입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나라이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에서 망했으니, 다시 대한으로 흥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은 19세기 말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나라의 권리가 하나 둘 뺏겨나가는 시점에 조선의 임금은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大韓)으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니 그 나라가 바로 대한제국입니다. 1897년 10월의 일입니다.

조선의 임금 고종은 왜 대한이라는 국호를 만들었을까?

삼한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고, 이은 삼국 또한 삼한으로 불렸고, 신라의 통일이 삼한의 통일이라고 했으니, 대한의 ‘한’이 딱 어디의 어느 시절임을 국한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시초는 마한 진한 변한의 한(韓)에 있습니다.

진한이 신라로, 변한은 가야로 계승되었지만, 마한은 백제에 정벌됩니다. 중국기록에 보이는 마한 54개국은 북쪽에서 내려온 백제에 점점 복속되어 가고, 그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곳이 영산강 인근 나주 반남 지역의 고분 주인공인 마한세력이었습니다.

그 고분으로 인해 이곳엔 국립박물관이 자리합니다. 우리나라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종합박물관은 13곳으로, 마지막 13번째 2013년에 개관한 곳이 국립나주박물관입니다.

사실 국립종합박물관은 중앙 서울을 제외하곤, 청주, 전주, 광주, 춘천 등 도청소재지이거나, 경주, 부여 공주 같은 고도에 생기게 되는데, 나주 또한 한반도에 세를 과시했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나주 박물관의 건물 모양을 봅니다. 항아리 모양으로 고분 속의 관에서 착안한 듯 합니다. 고분에 시신을 안치한 관은 항아리 옹(甕)을 써서 옹관 또는 독널이라고 말합니다. 시신이나 뼈를 독에 넣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인류의 보편적인 장례문화입니다. 그런데 여기 영산강유역 나주 반남고분은 대형 옹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옹관으로 부족하니 두 개의 옹관을 이어서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형옹관고분은 전라도 서부지역 영산강을 따라 나타나 이 지역의 고대 묘의 모습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가장 밀집도가 높은 곳이 박물관 인근의 반남 지역으로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거대한 옹관고분을 만들었던 주인공은 언제까지 지배력을 행사했을까가 내내 고고학의 연구 주제입니다. 백제가 369년 마한을 완전병합했다는 역사기록이 있습니다. 반면 백제의 무덤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무덤인 옹관묘는 4세기 이후 6세기까지 같은 시대 백제의 무령왕릉보다도 더 큰 고분으로 층층히 쌓여 남아 있습니다. 마한이 4세기 중엽 백제에 병합됐다면, 백제왕릉 보다 더 큰 고분을 만들기는 어려웠겠지요. 적어도 삼국이 쟁탈전을 벌이던 당시까지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세력과 더불어 나주에도 금동관을 쓰고 거대한 고분을 만들어 내는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나주를 말할 때 쓰이는 천년 목사고을 시간 길이보다 더 깊은 역사가 나주엔 들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름의 기원이 된 삼한, 그중 마지막까지 남은 옹관 고분의 마한 세력은 나주 재도약의 바탕이 될 것이며 이 지역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도 부상할 것입니다. 또다시.

지금 우린 오천년 이래로 가장 자주 시간 이벤트를 가지고 있는 세대로 보입니다. 옛 사람들이 물려준 설 추석에, 믿건 안믿건 종교 기념일을 범국가적으로 행하고, 이국의 이벤트에도 호응하며, 인연끼리는 백일 일년 천일 하면서 갖가지 기념일을 만들어 옛사람들이 명절을 보내듯 챙겨 지냅니다. 왜 이런 이벤트가 필요할까? 재밌게 살기 위해서이고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여행을 다녀보면 나의 존재와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에서 비롯됨이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런 나는 다음 세대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고요.

설날. 감사하며 복 짓는 새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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