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19.07.18(목) 19:10
닫기
박상용과 역사여행<47>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꾸며지지 않은 그대로의 독립운동 역사공간
1908년 도성밖 서대문에 지은 경성감옥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
왕산 허위·유관순·강의규 의사 등 순국

2019년 04월 25일(목) 01:29
서대문형무소는 옥사 건물 15개 동 중 5개 옥사와 나병옥사를 보존해 사적으로 지정하고 몇 차례 재단장을 거쳐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 내부.


삼일만세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도처에서 그와 관련된 기념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100주년 이벤트로 여행이라면 그 첫번째는 이전 지면에서 소개했듯 천안 독립기념관입니다. 독립기념관엔 우리 5천년 역사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거의 모든 독립운동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옮겨온 것들이고 만들어진 것이지요. 옮겨지지 않고 꾸며지지 않은 당시 그대로의 독립운동 역사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저는 서대문형무소를 추천합니다. 현재의 공식명칭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입니다.





조선시대 한양. 임금님이 머무는 궁궐을 중심으로 성을 쌓아 도읍지 성인 도성이 되었고, 동서남북에 문을 내어 출입했습니다. 4대문을 나서면 도성 밖, 시외입니다.

일제가 우리를 강제 병합한 공식년도는 1910년 경술년이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하나씩 우리의 권리를 빼앗았고, 1895년 을미년의 왕비시해사건(을미사변)이나 1905년 을사년 외교권 박탈(을사늑약) 등에서 보듯 경술년 이전 이미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지요.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뀐 이름으로 나라가 망하기 2년 전인 1908년 대한제국의 외교와 정치 군사를 맡았던 일제의 한국통감부에 의해 도성 밖인 서대문 앞에 감옥이 지어집니다. 당시 도시 이름을 따 경성감옥이라 이름합니다.

그 한 해 전인 1907년 군대가 해산됩니다. 직업 군인들이 직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먹고 살려면 다른 직업을 찾든가 군인 직업을 되살려 대세 일본에 고용되든가 아니면 군대해산에 대한 항쟁을 하겠지요. 항쟁세력들은 급료를 받지 않는 군인인 의병이 됩니다. 군대가 해산되었는데 군대 활동을 한다? 국가전복 세력으로 잡혀 갇힌 곳이 새로 지은 경성감옥입니다. 기존 시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필요에 의해 세워진 감옥이지요.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려 군대마저 해산하던 그 이듬해 수가 늘어난 의병들은 조직적으로 서울진공작전을 폅니다. 주축이었던 의병장 중 왕산 허위 선생을 그려봅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엔 그 분의 얼굴과 활동이 소개되어 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안보입니다.

조선의 신하였던 그는 “질 줄 안다. 그런데 왜놈이랑 한나라에서 못살겠는걸 어떡하느냐?” 며 지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도 항쟁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첫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이름은 서울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도로 이름인 ‘왕산로’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그 도로엔 나라 잃고 항쟁했던 무수한 무명인들도 함께 들어 있겠지요.

독립운동 이야기를 하면 안중근도 있고 윤봉길도 있고 김구도 있으며, 서대문에서 순국한 유관순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념하는 분들이지요. 저는 서대문형무소에 순국하신 독립투사 한 분을 더 불러보고 갑니다.

강의규 의사. 1920년 새로 임명되어 들어오는 일본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졌던 백발의 노인. 일제강점후 만주로 이동해 젊은이들을 계몽하는 교육사업에 종사하다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는 것에 맞춰 폭탄을 반입해 의거를 일으키고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당시 65세. 백 년 전의 65세라면 지금의 80세 가량의 노인이었겠지요.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음이 부끄럽다. 내가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당연시하고 영원할 것이라며 지식인들마저 민족개조론을 말하던, 저항이 오히려 죄가 되는 모순의 시대에 백발노인의 의거는 노인도 그러할진대 청년들이 식민지 조국에 안주하여 사는 것에 경각심을 주는 것이지요.

경성감옥은 이후 마포에 더 큰 감옥이 지어져 서대문형무소로 개명되고, 일본이 물러난 후에도 교도소로 이용되다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갑니다.

당시 옥사 건물 15개동 중 역사성을 고려해 5개 옥사와 나병옥사를 보존해 사적으로 지정하고, 다시 몇 차례 재단장을 거쳐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는 문구입니다. 일제로부터 되찾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권리를 말할 수 있음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민주투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체험학습 동행 (historytour.co.kr) 대표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광고문의기사제보웹메일청소년보호정책
대표전화 : 062) 720-1000팩스 : 062) 720-1080~2인터넷신문등록번호:광주 아-00185
회장:박철홍 / 대표이사 발행인·편집인:김선남 / 편집국장:박원우
[61234] 광주광역시 북구 제봉로 322 (중흥동) 삼산빌딩 이메일 : jndn@chol.com개인정보취급방침
*본 사이트의 게제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 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