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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 엄마 송순단 “딸 가인, 트롯가수 시킨 이유”

실력으로 인정받은 강신무권 송순단 무녀
무형문화재 보유자 월 130만원 남짓

2019년 06월 26일(수) 10:09
한국문화의집 제공
송가인 엄마 송순단 “딸 가인, 트롯가수 시킨 이유”
실력으로 인정받은 강신무권 송순단 무녀
무형문화재 보유자 월 130만원 남짓

미운오리 새끼(?)에서 화려한 백조로 180도 달라진 인생을 살고 있는 두 모녀(母女)가 있다. 바로 진도의 송순단, 송가인(조은심) 모녀가 그들이다. 인기리에 종영한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에서 파죽지세 1위를 차지하며, 각종 행사 섭외 1순위가 된 송가인씨는 “한번도 틀린 적 없는 엄마 말 듣고 나왔다”는 말로 어머니 송순단씨까지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진도 씻김굿 교육 전수자로 30년간 소리꾼으로 살아온 송순단 당골은 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씨를 만나 ‘씻김굿 얘기’를 들어 봤다. 실력은 물론 얼굴까지 쏙 빼닮은 두 모녀의 내막은 어떨까.

◇진도 당골 무녀 송순단

호남에서는 무당을 당골, 단골이라 일컬으며 그 지역 사람들의 굿을 도맡아 한다. 고대 제사장을 뜻하는 단군, 천군에서 나왔다는 유래도 있으며 신단과 신당을 모시는 마을·고을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제 유래설도 있다.

송순단(60) 당골은 진도씻김굿 전수조교로 유명하지만 세습무권인 진도 당골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보통 진도 당골은 아버지 가계를 중심축으로 사제권이 전승되는 부가계내 고부계승(父家系內 姑婦繼承)을 원칙으로 한다. 즉 무당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 며느리가 당골인 시어머니에게 굿을 배워 당골판을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송순단 당골은 대대로 이어져 온 신을 모시며 그 지역 관할 굿을 도맡아하는 일반 진도 당골들과 달리 평범한 농부에게 시집을 왔고, 2남 1녀를 둔 채 결혼 생활을 하던 중 신내림을 받게 됐다.
“시댁은 당골 집안이 아니었다. 무당 집안이었던 모계로부터 받았다. 막내딸 돌이 지날 무렵 몸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남편이 신내림을 받길 원치 않아 몸이 아픈 채로 지냈다”.

31살이 되던 해 송 당골은 남편과의 불화로 진도읍에 신당을 차렸다.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억측으로 한 차례 이혼을 당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지만 삼남매를 교육시키고 길러야했던 그는 묵묵히 무당의 길을 걸어나갔다. 신이 오면 뛰거나 방언이 터져 굿을 하는 등의 행위는 잘했으나 본인이 당골로서 부족함을 느껴 33살의 나이에 故이한순씨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타인의 조상 앞에서 굿을 하고 소통을 해 천도를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만 받아서는 되지 않는다. 수행과 배움을 게을리한다면 진정한 당골이 될 수 없다”는게 송 당골의 철학이다. 그렇게 그는 둘째 아들은 유명 아쟁 연주가 조성재(36)로, 막내 딸은 정통 트로트 가수 송가인(조순심)으로 키워냈다. 현재는 전수교육조교로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지난 세월은 설움이 가득했다.
“세습 당골이 아니기에 공연이나 굿판이 벌어지면 소위 ‘왕따’ 당하기 일쑤였다. 본인들이 할 수 없는 부분, 내가 서야할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데려가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럴수록 송 당골은 굳건히 실력을 키워나갔다. 관 앞에 병풍을 쳐놓고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소리를 했다. 판소리로 치면 8~9시간 완창을 하는건데, 소리꾼이 평생 한 두 번 할까말까 한 완창을 작은 체구로 거뜬히 해내곤 한다. 이에 숱한 당골들을 제치고 전수생으로 들어가 전수교육조교로 우선 선발됐다.
송 당골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굿을 해왔다. 베테랑이지만 단 한번도 허투루하질 않는다. 그는 ‘진실한 씻김’과 ‘진정성’을 추구하는데, 지난 세월호 참사 당시 진행한 씻김굿은 한이 맺힌다고 했다. 희생자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준비했음에도 불구, 바다에 빠진 아이들의 넋을 건지고 달래주는게 우선이 되지 못한게 가슴이 아파 당시 진도군청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전했다.


◇사라지는 문화재 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전승 체계는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이수자로 구성된다. 무형문화재 밑바탕을 이루는 이수자는 보유자·보유단체·전수교육학교로부터 전수교육을 받고, 기량 심사에 합격한 차세대 전승자다. 이수자가 되면 국가가 지원하는 전승 활동에 참여하고, 각종 문화시설에서 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증 취득 자격도 주어진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는 매달 130만 원에서 170만 원 정도의 전승 지원비가 지원되지만 이수자들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공연과 전승 교육 사업은 지원되지만 대상자는 소수다.

송 당골은 전수교육조교로 각종 문화시설에서 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근근이 강사료를 받는다. 군에서 무료 강습을 할 때 받는 강의료는 1시간에 2만원 남짓. 그는 적은 강사료보다 진도군에서도 씻김굿을 하는 횟수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무형문화재 중 보유자가 없는 종목이 26개, 전수받을 조교가 없는 종목은 33개에 달한다. 우리 전통 문화 유산은 전승에 위기를 맞고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국가무형문화재 전 종목에 우수 이수자 선정·지원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기 위하여 앞으로도 예산 규모에 따라 매년 순차적으로 20종목 내외의 우수 이수자를 선정하여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으나 송 당골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세습무권이 아닌 강신무권(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신을 받아 무당이 되는 사람)으로 한평생 진도 씻김굿을 전승, 보존해왔음에도 그는 예인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과 딸을 걱정했다. “집안 대대로 무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딸은 무녀를 시키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트로트 가수를 시켰다. 대접도 대우도 녹록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약 스타덤 오른 딸 송가인

송가인 프로필 사진
“전라도에서 탑 찍어 불고, 서울로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 송 당골의 막내딸인 송가인(33)씨는 최근 트로트를 주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1위를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번도 틀린 적 없는 엄마 말 듣고 참가하게 됐다”던 송씨는 정통 트로트를 구사했고, 심사위원들은 물론 국민들까지 홀리며 7년의 무명 생활을 끝내고 범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화려한 데뷔와 달리 송 당골에게 막내딸 송씨는 아픈 손가락이다. 신병을 앓느라 잘 챙겨주질 못했을뿐더러 본인과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아 중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게 했다. 광주예고를 보내느라 16살의 어린 나이부터 엄마 품에서 떼어내 독립을 시켰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송 당골은 딸을 위해서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원에 이르는 대학 등록금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는 “씻김굿에 소질이 있었지만 내 오랜 꿈도 가수였고, 딸 역시 가수가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딸 송가인씨가 가수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송 당골의 의지였다. ‘전국노래자랑 진도편’이 개최될 당시 송 당골의 적극적인 추전으로 출연하게 된 송씨가 대상을 타게 된 것. 이를 계기로 여러 노래자랑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송씨는 2012년 ‘산바람아 강바람아’라는 타이틀곡으로 데뷔하게 됐지만 긴 무명생활을 거치게 됐다. 뒷받침되어주는 소속사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 송 당골은 두 군데의 소속사에게 계약금과 위약금을 물어주고 딸을 데리고 나오기에 이른다. 서울 가락동의 보증금 1억원, 월 20만원짜리 빌라로 이사하는데 돈이 모자랐을 때는 분신 같은 굿당을 팔아 돈을 보태기도 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그러던 중 종편 프로그램에서 하는 ‘미스트롯’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고민하는 딸에게 기회가 왔다며 밀어붙였다.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 세미 트롯에 익숙해져 있던 대중들은 정통 트로트에 열광했고 1회부터 송가인을 우승 후보로 점 찍으며 열광했다. 이변 없이 최종화에 우승을 차지한 송가인은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나라에 한 획을 긋는 트로트가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딸의 무대를 하염없이 돌려보곤 하는 송 당골은 “딸이 너무 고생해 마음이 아프다”면서 “언제나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데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딸 송씨는 “어느 집을 가서도 몇 시간씩 정성을 들여 굿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는데, 한곡을 부르더라도 어머니 말마따나 ‘죽을 각오’로 부르겠다”고 전했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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