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골프컬럼=이봉철의 골프가 인문학을 만나다

3-1/제러미 벤담의 골프경영
파놉티콘으로 통제와 돌봄의 스윙을 하라

2019년 08월 19일(월) 19:34
자유경제학자로서 성문법 운동을 실천한 공리주의의 아이콘이다.

쾌락은 늘리고 고통은 감소시켜 한다는 공리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법률을 통해 사회과학의 전 분야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을 설파한다.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에 그리스어와 라틴어 교육 등 엄격한 교육을 받은 공리주의자는 다섯 살 철학자라는 애칭을 얻는다. 15세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21세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지만, 변호사 활동보다는 법의 연구에 몰두를 한다. 이는 당시의 법이 구태하기도 하고 비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떨처버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적 틀은 고통과 쾌락에서 찾아낸다. 인간의 감성에서 출발하는 윤리의 태도이다. 종교적 권위가 정치 및 법제 위에 군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사회의 부정적인 문제들이 기존 질서의 가치체계가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기술문명안에서 무엇을 하면 더 이익과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를 수행하게 하는 이기적인 존재일까? 기업조직에서나 산업현장에서의 조직에 대한 감시는 직원이나 노동자를 통제하는 기능 이외에도 작업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벤담의 감시는 감시 대상을 통제하는 기능과 함께 그 대상을 돌보는 긍정적인 의도와 의미를 포함한다.

벤담은 이득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당시 비효율성의 현안 문제를 이색적으로 감옥에서 해결방안을 찾는다. 당시 감옥은 심각한 문제들이 걸려있었다. 통제의 대상이 되는 곳은 감옥이다. 산업혁명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진 현실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몸부림을 시도한다. 일상에서 이탈되어 격리되어 있는 감옥에서부터의 불공정을 바로 잡고자 하는 자본주의적인 발상이다. 수많은 사회 공공시설 중에서 가장 비사회적인 사람들을 모아 사회화시키는 공공기관인 감옥에 자본주의 원칙을 적용한다. 당시의 법제도에서는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면 가족들도 같이 죄다 감옥에 들어갔다. 여기서 벤담은 감옥이라는 것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격리시설이라는 기능에 빈부격차를 구제해주는 구호시설로서, 제2의 삶을 위한 교화시설로서 효율성을 시도한다.

감옥은 부랑자들, 낙오자들을 모아놓고 먹여 살려야 하고 감시인력도 만만치 않는 예산지출이 많이 소요된다. 이것을 깔끔하게 소수의 인력으로 감시하면서 동시에 돈도 될 수 있다면 게다가 사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갱생할 수 있다면 굉장한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파놉티콘의 개념은 모두가 본다는 개방의 체제로서, 소수가 아닌 다수의 개념이다. 둥글게 설계된 감옥의 단면도를 보면, 가운데의 높은 탑은 매우 어둡다. 반면에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각 방은 감시자의 탑 주변으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으며 밝다. 명암의 차이는 감시자는 수감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다. 수감자나 감시자는 감옥 설계자의 생각에 동의할까? 모르더라도 일단 이곳에 있게 되면, 그 장소의 내적 법칙에 따르게 된다. 효율을 생각한 원형 교도소가 벤담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파놉티콘은 감시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한다. 감옥을 완전하게 개혁한다는 것은 죄수들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교화를 보장하고, 신체적·정신적 타락으로 오염된 건강과 청결· 질서·근면을 확고하게 하며, 비용을 감소시키면서도 공공의 안전을 견고히 하는 것이 목적이다. 파놉티콘의 원리는 감시와 경제성을 연결해야 하는 거의 모든 시설에 적용될 수 있다. 병영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공장 등의 근대의 모든 건축시설로 확대 할 수 있는 창의물이다.

벤담의 감옥은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는 학교이다. 세 가지 스윙을 한다. 먼저, 건강 혹은 생명에 해를 끼치거나 치명적인 신체적 고통을 동반해서는 안 되는 고통 완화의 스윙이다. 두 번째는 수감자에게 죄 없고 자유로운 가난한 사회 구성원보다 더 좋은 조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함의 스윙이다. 세 번째는 경제성의 스윙이다. 감옥에 공공 비용을 지출해서는 안 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수감자 감시를 경제적인 스윙으로, 성과 지향적인 스윙으로, 그리고 효율적인 스윙으로 전개한다.

미셸 푸코는 “근대의 모든 시설이 파놉티콘을 모형으로 한 것이라면, 결국 근대사회의 이상은 곧 감옥인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벤담이 의도하는 바는 이른바 근대적, 자본주의적 인간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주목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시자가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주는 스윙이다. 파놉티콘의 수감자들은 감시자가 부재할 때에도 그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상상을 통해 감시자의 시선을 내면화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눈이 된다.
#2019081901000620800018311#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