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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글짓기 대회 고등부 대상
2019년 12월 17일(화) 16:11
닿지 못할 편지

영흥고등학교
1학년 1반 최서연

햇살조차 머뭇거리던 어느 새벽,소복이 앉은 눈길을 지그시 밟은 발들은 그 자리를 뜨지도 못한 채 꼼질거리기만 했다.맞잡은 손들의 온기를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기약 없는 약속이 될 것을,저 마음 깊은 곳은 이미 알았던 걸지도 모른다.
오랜 침묵은 잠들어있던 아침을 참 빨리도 데려왔다.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남아야 하는 사람들.그저 연하게만 존재했던 경계는 등을 돌려 낯선 세상과 마주한 순간 두려움에 치를 떨도록 짙어졌다.무섭도록 삭막한 눈 앞 풍경은 어린 마음에도 깊은 생채기를 내었다.
“꼭 다시 만납세.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모습으로만 다시 만납세.”
휘몰아치는 눈발을 뚫고,우리의 좁은 등가로 와 앉은 삼촌의 목소리는 내가 태어나 들어본 외침 중 가장 슬펐고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
어린 내 손을 단단하게 붙잡은 어머니는 험한 눈길에 한 번쯤 넘어지실 법도 하건만,단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그저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눈밭을 씩씩하게 걸어 나갔을 뿐이다.어찌 그런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으셨을까.사랑하는 부모님을,사랑하는 남편을,사랑하는 고향을 두고 어찌 그런 굳건함을 지키실 수 있으셨을까. 가족들을 뒤로한 어머니의 등은 전에 없이 무거우셨을 것이다.그만큼 뒤로한 모든 것들을 사랑했기에,떠나오는 것이 그리 굳건했으리라,지금에서야 생각한다.
휴전을 한다 했다.우리의 헤어짐을 등 떠밀며 서슬파란 칼날 위를 살그머니 걷게 하던,그 괴물 같은 전쟁을 잠시 ‘쉬어’ 간다 했다.그 쉼표의 자취는 대단했다.내가 바라본 세상과 등 돌린 세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고,우리를 그 경계에 영영 가두었다.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렁이던 기약 없는 약속의 실현이,이렇게 잔인하게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더 처참했다.처절하게 우리를 붙잡듯 외치던 삼촌의 한마디가 자꾸만 귀에서 어른거렸다. 12살 초여름.남겨진 고향과 가족들은 그렇게 마음속 깊이 품어야만 했던,찢어지는 이별의 고통을 나는 일찍이 배우고야 말았다.
분단의 아픔.이별의 고통.모든 것이 내가 겪은 역사 속 순간들이었다.나는 그 후로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사랑하는 늦둥이 여동생,세상에서 가장 친한 내 친구이자 반려견 개똥이,그리고 늘 마음속에 품어 살던 삼촌의 외마디 외침에게까지도.알 수 없는 감정에 손이 쉴 새 없이 펜촉을 휘날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허공 어디에도 손을 놓이지 못해 방황하기 바빴던 날도 수없이 그 행진을 이루었다.그것이 쌓이고 쌓여 산을 이루어도,주소도 이름도 없는 편지는 주인마저 잃고 먼지 쌓인 서랍 속 가장 깊은 곳에 방치되었을 뿐이다. 닿지 못할 편지는 그렇게 나의 그리움을 그려나갔다.
세월이 흐르면 옅어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매 순간을 지나칠 때마다 그 크기를 끝도 없이 키워나갔다.남몰래 눈물을 짓기도 하고,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던 수많은 시간들은 나를 어느새 노년의 끝자락에 앉혀두었다. 강한 풍랑을 만나 인생에 다시없을 절망을 마주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즐거움을 마주하기도 한,그런 수많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그 때 그 고향의 마지막 모습,차디찬 새벽바람,거센 눈발,어머니의 손길까지 단 하나도 기억에서 놓아본 것이 없이 없었다.전쟁에 대한 원망이 모두 다 타고 남아 텅 비어버린 그 자리에는 무엇도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목적지 없는 편지의 행방이 그저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게라도 닿길 기도하며,또 펜을 든다.언제나처럼.

‘꼭 다시 만납시다. 더도 덜도 말고 함께 웃던 그 모습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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