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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2020전남매일 신춘문예 골드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오현석

2020년 01월 01일(수) 00:00
삽화 = 이형우 △홍익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졸 △개인전 19회 △단체전 110여회 △www.artsluke.com
방 안에 웅그리고 있던 어둠의 잔흔이 서서히 물러나자 방의 모습이 희끗하게 드러났다. 자그마한 원룸, 방바닥 가운데에는 무명이불이 깔려 있었다. 두꺼운 이불은 볼록하게 솟아올라 입구를 내놓은 가묘처럼 어른 두상만한 틈이 들떠있었다. 이불 아래에는 노인이 활 모양으로 몸을 말아 외로 누워 있었다. 덮고 있는 이불의 무게가 버거운지 숨결은 고르지 못했다. 한겨울 바람은 창문에 씌어놓은 방한 비닐을 세차게 때렸다. 얇은 비닐은 파동을 치면서 불규칙적인 음향을 냈다.

노인은 두더지가 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 듯 휑하게 벌어진 구멍으로 얼굴을 빼쭉이 내밀었다. 전기장판의 열기로 덥혀진 얼굴에 차디찬 공기가 들러붙자 오줌을 눈 뒤처럼 몸을 진저리쳤다. 노인은 머리만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여러 번 들락날락하다가 숨이 가팠는지 종내는 머리를 쭉 빼고는 긴 숨을 내뱉었다. 사위를 살폈다. 흰 살을 드러낸 채 차갑게 자리하고 있는 싱크대, 벽에 붙어 서 있는 한 칸짜리 장롱과 그 옆으로 브라운관 텔레비전, 잠들기 전 정경이 그대로임을 확인했다. 입술을 반쯤 벌려 공중에 입김을 불었다. 폐에서 빠져나온 따뜻한 숨은 찬 공기에 섞이자마자 허옇게 변하여 공중에 떠다니다 사라졌다. 같은 행동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던 노인은 “살아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 억양만으로는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인지 불만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은 강 여사의 등쌀을 배겨나질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나오니 쓸쓸했다. 추위까지 닥쳤다. 늙어서 고적한 것은 죽음보다 세 곱절 무겁다는데….

“썩을 놈의 망구탱이, 집 나가겠다는 놈한테 지 오리털 파카를 헤쳐서 이불을 만들어 주지 못할망정 무명 이불을 줘. 예끼! 나쁜 년아!”

노인은 천장에 강 여사의 환영이라도 보이는지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혓바닥에 침을 모아 위를 향해 뱉었다. 쇠잔한 혀로 뱉은 침은 천장까지 닿지 못하고 낮게 떠올랐다가 노인의 안면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불 홑청에 얼굴을 닦았다. 무거운 이불을 힘겹게 젖히고 앉았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다가 “아이이고오” 깊은 신음을 내면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손으로 허리를 주물렀다. 계속된 통증에 “아이이‥” 나오는 소리를 재빠르게 중단했다. 노인은 습관적으로 나오는 앓는 소리를 끊고 “외제제제, 외제제제”로 바꿔 곡소리와 유사한 곡조로 끙끙 앓았다.

노인의 신음이 ‘아이이고’에서 ‘외제제제’로 바뀐 것은 외제 승용차를 들이받은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김치를 썰 때도 ‘외제제’하게 썰어라, 못을 박을 때도 ‘외제제’하게 박아라, 국을 끓일 때도 ‘외제제’하게 끓여라,였다. 노인에게 외제차란 썰고, 박고, 끓여도 시원치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외제차만 아니었어도 자신의 인생이 나무에서 떨어진 홍시처럼 으깨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제 일만 가지고도 부아가 복받쳤다. 외제차와 자신과는 철천지원수같은 관계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젯밤 자정 무렵, 노인은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매서운 맞바람이 몸을 세차게 휘감았다. 걷다 서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영하로 떨어지는 찬 기온과 달리 굳게 정한 마음이 풀리려 했다. 흐무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외제제제, 딱 두 대만 하자”고 중얼거렸다.

노인은 며칠 동안 방범용 카메라가 없으면서 외제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을 물색해 뒀다. 그 장소 인근에 도착했다. 검정색 차가 시야에 잡혔다. 차는 훤하게 비추는 가로등 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품속에서 모자를 빼내 쓰고는 장갑을 꼈다. 조심스럽게 걸어 차에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대못을 꺼냈다. 꽉 움켜쥐자 팔이 쥐가 나려했다. 이왕이면 푹 파이게 흠집을 내야 했다. 문짝 유리창에 한 손을 댔다.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요동치면서 맥박이 거칠게 뛰었다. 가빠진 호흡을 조절하려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못을 문짝에 댔다. 못을 든 오른손에 힘을 싣기 위해 밀착한 왼 손바닥에 힘을 주고는 막 긁으려할 때였다. “웽웽웽웽” 사이렌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노인은 차에서 떨어졌다.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했다. 몸의 중심을 잃은 채 뒤로 몇 걸음을 걷다가 보도블록에 걸려 벌러덩 넘어졌다.

노인은 범행 실행 전까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모의실험을 했었다. 그런데 손만 대도 경고등이 울린다는 것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경고등은 쉼 없이 깜박거렸고, 사이렌은 밤의 고요함을 깨웠다.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가로등 빛은 마치 노인만을 집중해서 비추는 조명 같았다. 캄캄한 객석에서 무대에 선 노인의 무언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납게 우는 소리에도 차 주인의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 듯 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뇌의 신호대로 몸뚱이가 움직여지질 않았다. 버둥대기만 할 뿐이었다. 땅 바닥을 몇 바퀴 구른 뒤 나무를 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한참을 나무에 등을 기대고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허리를 붙잡고 절룩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외제제하게 썰어 먹을 놈, 손만 닿아도 울어대면 어쩌라고.”



*



노인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염색공장에 취직했다. 한 회사에서만 50년가량 근무하다 퇴사했다. 회사 직원들에게 집과 공장밖에 모른다고 ‘집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단순하게 살았던 노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갈 곳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고도 익혀진 행동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그때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 채널만 바꿔가며 보고 있자 강 여사는 복지회관을 소개했다. 점심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면서, 권유 같은 강요였다. 한마디로 노인은 강 여사의 눈에 걸리적거리는 유행 지난 장식품 같은 존재였다.

노인은 생소한 곳에 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자연히 강 여사와 말다툼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운함과 화가 치밀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복지회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피신처였는데 그야말로 최고의 해방구였다.

그곳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배웠다. 네 박자를 맞춰야 하는 발은 자꾸 꼬였고, 뻣뻣한 몸은 리듬을 타지 못했다. 다리와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고 스텝을 밟으면서 관절이 뻑뻑해졌다. 때로는 무릎에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신나고 즐거웠다. 강 여사가 고맙기까지 했다.

노인은 5개월가량 맹연습을 했다. 동작이 제법 몸에 익을 무렵 댄스 반에서 사귄 친구가 실력을 점검할 겸 필드에 나가자고 했다. 노인은 필드 의미를 몰라 눈만 깜박거리자 친구가 어깨를 감싸고는 속삭였다.

“이 사람아, 무도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가 뭔지 아는가.”

노인은 필드, 특혜가 무엇인지 짐작가지 않았지만 무시 받지 않으려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프로처럼 그저 살포시 미소만 지었다.

“무도장알지, 기운 있을 때 돈도 쓸 수 있잖은가. 인생 별 것 있던가, 남은 생 멋지게 살다 가세.”

그렇게 노인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 갔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이었다. 앰프에서는 음악소리가 쿵쾅대며 쏟아졌다. 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진동은 노인의 발바닥을 통해 온몸의 뼈로 전달되어 파장이 일었다. 심장은 박자에 맞춰 쿵쾅댔다. 검은 천장에 촘촘하게 박힌 등이 깜빡거렸다. 조명등은 빙글빙글 돌면서 불빛을 뿌려댔다. 일곱 색깔의 야시시한 빛이 실내 공기를 흥건히 적셨다. 무대에서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서 블루스 음악으로 바뀌었다.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부둥켜안고 춤을 췄다. 그것도 대낮에.

노인은 말로만 듣던 곳을 목격하고는 놀랍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노인이 어리벙벙하게 서서 구경하고 있을 때 한 여성으로부터 대시를 받았다. 어쩌지 못하고 당황해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등을 떠밀었다. 여성이 내민 손을 얼떨결에 잡고 무대로 갔다. 서툰 실력이지만 여성의 리드가 뛰어나 춤을 추는 데 무리가 없었다. 콧속으로 분내가 스며들었다. 정신은 몽롱해졌다. 온몸이 짜릿하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노인은 콜라텍을 잦게 출입했다. 습관이 되어 버렸다. 콜라텍이 쉬는 날에는 온 몸이 근질거렸다. 비루했던 과거를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해지기까지 했다. 다리가 움직일 수 있는 그날까지, 이곳에서 남은 인생 멋지게 꼭짓점을 찍겠다는 비장한 결의까지 다졌다.



*



순식간에 여러 개의 폭죽이 터진 것처럼 굉음이 났다. 귀를 째는 듯한 비명과 쇠가 찢어지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119, 빨리, 119 불러.”

노인은 핸들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도로는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아수라장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어 보려했지만 얼이 빠져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노인의 차는 반대차선 가드레일을 들이 받은 채 구겨진 범퍼와 보닛의 틈새에서 하얀 수증기가 새어나왔다. 차 안을 둘러봤다. 옆 좌석에 있는 여성은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만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고 상황을 간추렸다. 차를 운전해 정주암 방면으로 가고 있었고, 전방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승용차가 진행하고 있었다.

노인은 수년 전 외제차와 접촉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문짝이 약간 긁혔을 뿐인데 일천만 원 넘게 견적이 나와 처리해 줬다는 보험회사 설명서를 받았다. 그때부터 도로에서 외제차로 보이는 차를 만나면 덤프트럭이 곁을 지나갈 때와 같은 공포심이 생겨 심장이 벌렁거렸다. ‘외멀양배’라는 원칙을 세워 가슴에 새겼다. ‘외제차는 멀리하고, 양보하고, 배려하자’는 뜻이었다.

노인이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진행하고 있을 때 뒤 따라오던 고급스럽게 보이는 승용차가 노인의 차를 추월했다. 그리고는 송사리가 방향을 틀 듯 급격하게 각도를 틀어 순식간에 노인의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노인은 화들짝 놀랐다. “이런 싹수없는 놈” 자동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차만 좋으면 다냐, 오기가 발동했다. 앞 차에 바짝 붙었다. 몇 초 후 끼어든 앞차가 급정지했다. 노인도 순간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차는 속도를 내어 그대로 앞차를 들이받았다.

왜 그랬지, 노인은 상체를 숙여 발을 내려다봤다. 그때까지도 발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었다. 노인의 차에 받힌 차는 그 앞차를 박았고, 그 차는 다시 그 앞차를 들이박아 3중 추돌 사고가 나버렸다. 부딪친 차량들은 중심을 잃고 도로에서 원을 그리듯 회전하면서 반대차선에서 진행하던 차들과 부딪히거나 가드레일을 충격했다.

노인은 차에서 내렸다. 넋 나간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현장을 지켜봤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박살난 차 중에 수입차가 세 대나 된다. 벤츠에스클래스 한 대가 삼억 원이 넘는데….”

노인은 피해 차들을 둘러봤다. 어떤 차가 벤츠이고, 외제차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벤츠라는 차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몰랐다. 자기와 상관없는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차 한 대 가격이 3억 원, 노인은 믿고 싶지 않은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은 것인지 표정은 무덤덤했다.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평생을 아등바등하게 살면서 구입한 2억 원짜리 아파트와 비교가 됐다. 사실일까, 믿겨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가입한 보험 최고액이 얼마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119 구급차가 다녀가고 레커차가 부서진 마지막 차를 견인할 때였다. 노인은 경찰관들이 타고 온 사고조사용 봉고차에 올라탔다. 경찰관은 노인에게 사고 난 경위를 작성하라며 용지를 내밀었다. 노인이 미적거리자 경찰관은 구두로 설명을 요구했다. 노인이 겪은 대로 말하자 경찰관은 이를 받아 적었다. 노인은 경찰관이 작성한 진술서를 읽었다. 경찰관이 사고 날 때 상황 그대로 작성된 거냐고 묻자,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진술서 마지막 칸에 이름을 쓰고 서명하자 그때서야 경찰관은 노인의 과실이 많다고 했다. 뒤차가 건방지게 끼어들어 사고가 났는데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따졌다. 경찰관은 뒤차인 벤츠가 막 진입했을 때 사고가 났다면 진입한 차의 잘못이지만, 정상적으로 진입했고 몇 초 후에 충격했으니 노인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는 탓이라고 했다. 노인은 경찰관의 설명이 어처구니가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화를 냈다.

차에서 내린 노인은 정주암 사찰 가는 길 쪽으로 얼마간 걸어갔다. 좌측으로 바다가 보였다. 도로와 갓길 사이에 설치된 철책을 넘어가서 가파른 절벽 위에 앉았다. 넓고 큰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푸른 바다에는 두둑한 너울이 일었다. 밀려드는 파도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기라도 하려는 듯 노인이 앉아 있는 절벽 아래를 세차게 때렸다.

강 여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이 먹먹했다. 세 명의 자식들을 가르치며 살아보겠다고 험한 일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산 여자였다. 자신이 분수도 모르고 날뛴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자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살던 대로 살아야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늘그막에 춤을 추고, 여자를 만나고, 밤바다를 보려고 여행을 한 것인지 후회스러웠다.



*



강 여사는 성벽처럼 높은 담 한편에 설치된 주차장 입구에 잔뜩 옹송그려 앉아 있었다. 사방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석양에 물든 검은 구름은 사위어 가는 숯불처럼 검붉은 빛이 점점이 묻어났다. 노을 아래에 펼쳐진 산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 형체를 잃어갔다.

강 여사는 사고만 치고 집을 나간 미련한 노인의 얼굴이 맴돌자 뒷목이 땅겼다. 평생 염색이나 할 줄 알았지, 요령이라고는 깨알만큼도 없는 미련한 영감탱이, 주제에 딴 주머니를 차, 집에 들어오는 날 뼈마디를 자근자근 부러뜨리겠다고 굳힌 마음을 되새김질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도토리 나뭇잎 하나가 뱅그르르 돌며 강 여사의 신발로 떨어졌다. 운동화 끈에 끼인 잎사귀는 미세한 바람에 파르르하게 떨었다. 강 여사는 잎을 주워들었다. 한참동안 잎을 보던 눈길을 돌려 나뭇잎이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 야트막한 산에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샛노란 은행나무, 황토빛깔의 뻐센 잎을 달고 있는 도토리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나무 사이에 해묵은 된장 색깔로 추하게 끼어 있는 도토리나무가 측은해 보였다.

강 여사는 일어나서 허리를 돌렸다. 손과 얼굴을 비비고는 깔고 앉았던 생활정보지를 들어 옆구리에 끼었다. 어둑했던 도로가 밝아졌다. 에워싸고 있는 담 모서리마다 설치된 보안등이 켜졌다. 등 앞에 설치된 카메라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오늘은 기필코 만나겠다고 결심했다. 대문에 있는 초인종을 눌러 피해자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의 말을 믿고 이 집 앞에서 3일 째 기다렸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다가 되돌아갔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 참이었다.

강 여사가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집은 나지막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캥거루의 주머니에 새끼가 들어가 앉은 듯 산으로 둘러싸인 집은 안온하게 보였다. 집 외벽은 옛 성벽처럼 큼직한 돌덩이로 담을 이뤘다. 2층의 한옥주택은 고풍스러웠다. 깊은 산속의 사찰을 볼 때처럼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대문의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넓은 마당에는 금잔디가 부드럽게 깔려 있었다. 정원에 심어 놓은 갖가지 사철나무 옆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었다. 그 석등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석등 때문인지 강 여사는 온기를 쐬는 듯 했다.

강 여사가 피해자를 만나려고 할 때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찔러나 봐야지, 했다. 가망이 없을 것이라던 생각이 집을 보면서 어쩌면 했던 바람이 진짜로 이뤄질 것 같았다.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많이 배웠고, 인정도 많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까지 생겼다.

강 여사는 혼자 가드레일을 박는 사고를 냈다는 노인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고 15일가량 되었을 때였다. 법원으로부터 통지서를 받았다. 부부 공동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와 노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예금과 보험을 가압류했다는 통지였다. 가압류라는 단어에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통지서를 가지고 법원으로 달려갔다. 노인이 가입한 보험회사를 찾아간 다음에야 전모를 알게 되었다. 노인이 가입한 대물보험 최고액은 2억 원인데 피해 차량들의 물적 피해액이 4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기에다가 노인의 차에 여자가 타고 있었고, 여자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 여사는 노인이 집을 나간 뒤에 어떻게든 손실을 줄여 보기 위해 법원과 보험회사를 ?아 다녔다. 대성통곡을 하고 악다구니를 부려 봤지만 실익이 없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힘이 빠져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금액으로 가압류를 신청한 벤츠 차 소유주에게 사정을 해보기 위해 이 집을 찾았다.

강 여사가 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검정색 승용차가 다가왔다. 주차장 철문이 자동으로 개방됐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강 여사는 냉큼 차량을 막아섰다. 운전석의 유리창이 서서히 내려갔다. 열린 창문으로 중년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남자에게 다가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애가타서 사정하는 강 여사의 읍소에도 흔들림 없이 냉정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누가 바깥 분에게 사고 내라고 했어요. 남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변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적은 돈도 아니고 저도 피해액이 2억 원이 넘어요.”

“죄송합니다. 저희 집 영감이 나이 먹고, 운전이 서툴러서 그런 것이지, 일부러 사고 낸 것도….”

“그래서요.”

남자는 중간에 강 여사의 말을 잘랐다. 세상 물정모르는 무지한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짜증난다는 말투였다.

“이 나이에 집 잃으면 저희는 죽어요. 아파트는 대출이 남아 있고, 소유자가 저와 공동명의로 되어 있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선생님은 얼마 못 가져갈 것이라고 그러데요.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 전부인 이천만 원 드릴게요. 압류만 풀어주세요.”

남자는 불만이 흠뻑 들은 면상을 하고는 인상까지 썼다. 편평한 이마에는 몇 개의 갈매기 주름이 지어졌다.

“그 돈으로 낙찰 받으세요.”

남자는 비아냥거리듯 말을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강 여사는 주차장 철문이 서서히 내려가는 것을 멍하게 쳐다만 봐야했다. 들고 있던 생활정보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잘게 찢은 종이를 담 너머로 뿌렸다. 종이는 담을 넘어가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휙 쏠리다가 큰 원을 그리면서 강 여사의 몸으로 가라앉았다.



*



노인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강 여사는 소파를 닦았다. 강 여사는 노인 옆에까지 걸레질을 하다가 찢어진 눈을 매섭게 위로 치켜 올렸다. 성가신 쇠파리를 내?듯 노인 얼굴 앞에서 걸레를 휘저었다. 노인은 소파를 닦을 수 있도록 엉덩이를 엉거주춤 들었다. 강 여사는 노인의 엉덩이와 소파 간에 벌어진 틈에 걸레를 넣어 벅벅 문질렀다. 조선무만큼 튼튼한 팔뚝으로 노인의 궁둥이를 쳤다. 청소를 빙자한 의도적인 폭력이었다. 강 여사의 폭력에 노인은 여러 번 고꾸라진 경험이 있었다. 노인은 오늘도 강 여사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를 확인할 심산인지 잔뜩 긴장한 채 엉덩이를 들고 있었다. 강 여사의 팔뚝이 엉덩이를 닿는 순간 곧추섰다.

노인은 안방으로 가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온 강 여사는 노인이 깔고 있던 요를 확 잡아챘다. 노인의 몸뚱이는 대발을 쫙 폈을 때 도마 위를 구르는 김밥처럼 방바닥을 몇 바퀴 굴러 벽에 부딪혔다. 이쯤 되면 화를 낼 법도 했다. 그런데도 불도그 앞에 꼬리 내린 똥개처럼 주눅 든 얼굴로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노인은 강 여사의 마음을 꿰뚫었다. 이 타이밍에 불평이라도 했다가는 폭발이 준비된 화약고에 불을 붙인 꼴이 될 거라는 걸. 두툼한 손에 목조임을 당할 때만 떠올리면 사지가 떨렸다. 찍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는 걸 체험으로 알았다.

잠시 후 노인은 엉거주춤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강 여사는 이불을 베란다 유리창 밖에다 내밀어 털었다. 장롱에 이불을 넣은 강 여사는 노인에게 다가와 쥐고 있는 리모컨을 낚아채 갔다. 강 여사의 탱자나무 가시 같은 시비에 노인은 삭신이 욱신거리고 뼈가 저렸다. 막다른 골목으로 ?긴 짐승이 개구멍이라도 찾듯 안방, 작은방으로 피신해 봤지만 강 여사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 좀 하소, 나 죽으라고 그런가.”

노인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사정했다. 손만 비비지 않았지 완전 애원 투였다. 그의 애절함에도 강 여사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라고.”

강 여사는 짧게 말하고는 이빨 자국이 나도록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쥐었다. 그리고는 펜싱선수의 포즈를 취한 채 노인의 얼굴로 리모컨을 조준했다. 당장이라도 돌진해서 노인의 입에 리모컨을 넣어 목구멍까지 쑤셔 박을 것 같았다.

“그년한테 가, 개잡년 집에 가서 놀러 댕김서 살아. 바닷가도 가고, 당신 얼굴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내 손에 죽기 전에 나가.”

강 여사는 악을 썼다. 노인은 지은 죄가 있어 대거리를 못했다. 그는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수시로 지속되는 강 여사의 폭력에 피가 말라갔다.

강 여사가 처음부터 괄괄했던 건 아니었다. 본래 성미는 얌전했다. 노인은 젊었을 때 세 들어 살고 있던 집 주인의 주선으로 맞선 자리에 나갔다. 강 여사를 처음 봤을 때 ‘앗! 감자다’라는 느낌이었다. 땅딸한 몸매에 거북이 같은 굵고 짧은 목, 솥단지를 두 개 엎어놓은 것 같은 펑퍼짐하면서 탄탄한 엉덩이, 평생을 살아도 병 따위가 몸에 달라붙지 못할 것 같았다. 단단하게 보이는 강 여사도 맞선 자리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얼어붙은 자세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노인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는 당황스러워 할 때면 감자에서 연둣빛 순이 수줍게 움트듯 약간 벌린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어 미소를 짓곤 했다. 노인은 가난하고 체구는 왜소했다. 그런 노인에게 튼실한 강 여사는 최적의 신붓감이었다. 둘은 육체만을 지참금 삼아 결혼했다. 몸뚱이만 건강하면 못살 것 없다는 일념이었다.

강 여사는 막내가 학교에 갈 무렵부터 시장 어물전에 나갔다. 억척 하나로 가정을 꾸려갔다.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생활비 정도는 벌었다. 하지만 장사 경력만큼 강 여사의 사나움도 차곡차곡 쌓여 갔다. 노인은 변해가는 강 여사를 보면서 가난을 탓했다. 종국에는 자신이 못난 원인이라는 자책감에 강 여사를 안쓰러워했다.

강 여사가 노점상을 할 때 동네 깡패들이 자릿세를 내지 않는다며 고기 함지박을 찼다. 강 여사의 얼굴로 비릿한 물이 튀었다. 강 여사는 즉각 함지박을 들어 깡패의 온몸에 뿌렸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자 고기 손질을 한 쓰레기를 깡패들이 타고 온 차에 뿌리고는 보닛에 드러누웠다. 나를 죽이고 가든지, 손해 본 돈을 내놓고 가든지,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 때부터 강 여사는 주변상인들에게 ‘깡순이’로 통했다. 그런 강 여사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허덕이던 삶이 지나가면서 성격이 많이 온순해졌다. 그런데 노인이 사고를 치면서 옛 사나움이 원상회복 된 것은 기본이고 몇 배 가중되었다.

노인은 집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집에 가압류 통지서가 날라든 날 자식들 집으로 피신했다. 큰아들 집에 갔더니 아들이라는 놈은 담뿍 찡그린 얼굴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며느리는 아들과 손자들에게 괜한 트집을 잡고는 짜증을 부렸다. 딸집으로 갔다. 아들보다 사위가 나았다. ‘사위자식 개자식’이라는 말은 시대 흐름에 맞게 ‘사위자식 참 자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위는 강 여사의 성격을 닮은 딸과 살아서인지 동병상련의 동지애까지 있었다. 사위는 노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는 호기스럽게 웃기까지 했다. 집은 경매가 진행되면 유찰시켜 저렴한 가격으로 낙찰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자식들이 합심해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따뜻한 위로의 말만으로도 눈물이 날 지경인데, 강 여사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까지 했다. 이후 딸이 강 여사에게 노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하자 강 여사도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노인은 자식들에게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



*



도로는 분주했다. 설이 다가오면서 상인들은 인도에 과일상자들을 쌓아 놓고 대목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싸라기눈이 노인의 어깨 위에 톡톡하며 떨어지고는 땅으로 구르듯 미끄러졌다. 노인은 장바구니 카트를 밀고 가면서 도로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훑었다. 담배꽁초를 집게로 집어 쓰레기봉투에 넣을 때 고급승용차가 노인 쪽으로 오고 있었다. 재빠르게 도로 한편으로 피했다. 이제는 잃을 것이 없다는 것쯤은 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뜨거운 물에 덴 놈 숭늉보고도 놀라는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쓰레기를 다시 줍기 시작했다. 연령 초과로 재계약 불가라는 담당 공무원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공공근로라도 하며 먹고 살았는데 명치끝이 아리면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독한 년, 내가 비명횡사라도 해야 너 속이 시원하겠지, 노인이 집을 나온 지 1년이 넘었다. 전화 한통 없는 강 여사에게 섭섭함이 극에 달했다. 아들이라는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걸려오는 딸의 안부전화로 섭섭한 마음을 누그러뜨렸지만 아들들에게 드는 서운함은 어쩌지 못했다. 노인은 거칠게 집게를 다뤘다. 그 자들처럼 할까.

노인이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병실에는 나이롱환자들이 즐비했다. 그 자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나가서 술을 마셨다. 노인은 그 자들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면서 달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파출소에도 가본 적이 없던 노인은 겁부터 났다. 어느 날 그 자들은 노인의 처한 상황을 듣고 방법을 알려줬다.

“영감님, 굳이에요. 굳, 굳, 굳! 나이 들었지, 허리 아프지, 카트 밀면서 쓰레기 줍지, 전과 없지,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조건?”

그 자들은 보행자가 드문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신호를 위반한 차가 지나가려고 할 때 카트를 내밀라고 했다. 차가 카트를 치는 순간 바닥으로 넘어지기만 하면 게임 끝이라면서. 안 다치려면 낙법을 연습해야 한다며 휠체어를 밀고 가다가 넘어지는 측방낙법 시범까지 보여줬다. 노인은 그 자들의 말을 끄집어내어 차근차근 되씹었다.



*



찌뿌둥하던 구름은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물기 머금은 눈을 뿌려댔다. 눈은 강 여사가 입고 있는 검정색 점퍼에 닿자마자 물이 되어 천으로 스며들었다. 강 여사는 인도 모퉁이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고기궤짝 위에는 해산물이 소복하게 올려져있었다. 목에 감고 있던 밤색목도리를 풀어 눈 부위만 남겨둔 채 얼굴을 칭칭 감았다. 세 가지 신체부위는 각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눈은 행인들 속에서 가능성 있는 손님을 찾아냈다. 입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했다. 벌겋게 부은 손은 쥐고 있는 작은 칼을 조개 속에 넣어 비틀어 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빼낸 조갯살을 한쪽에 있는 그릇에 정확하게 던져 넣었다.

부모라고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짐만 되고, 지네들 살기도 숨 가쁜데. 자식들이 압류 당한 아파트를 낙찰 받아준 것을 생각하면 안도감과 속상함이 가득했다. 대출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한 푼이라도 벌어서 갚기 위해 그만뒀던 노점상을 다시 벌였다.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장사는 예전 같지 않았다.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 기운이 나지 않기도 했지만 젊었을 때와 다르게 힘에 부쳤다. 힘들고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각인시키려는 듯 되뇌었다.

“자식에게 진 빚이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빛이여.”

강 여사는 시도 때도 없이 노인이 치밀었다. 그때마다 욕지기가 나왔다.

“우라질 놈, 평생 비린내 맡고 산 내게는 여행 한번 가자고 한 적이 있었냐, 이놈아! 비자금으로 이천만 원이나 모아놔. 그래놓고도 막내 결혼할 때 돈 없어 힘들어 하는 걸 지나가는 구급차 구경하듯 해. 에끼, 나쁜 놈!”

노인이 그 많은 돈을 그년에게 썼다고 생각하자 서럽고 분했다. 그년에게 눈물 보인 것을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리고 수치스러웠다. 궁금했다. 어떤 여자이기에 노인이 홀딱 반해서 돈을 썼는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자를 찾아갔다. 머리끄덩이를 닭털 뽑듯이 뽑아 벌거숭이로 만들 요량이었다. 그런 강 여사가 여자를 보고는 몸이 굳어졌다. 막내가 노인 구박하지 말라며 자주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재생되었다. ‘성질 안 좋지, 인물…… 아부지 고마운지 알고 사셔’

강 여사는 병실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침대에 다양한 화장품을 벌려 놓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강 여사는 여자를 멀거니 보기만 할 뿐 다가가질 못했다. 강 여사와 여자는 같은 연배임에도 색깔 다른 양면 색종이 같았다. 많은 것이 달랐다. 여자는 숱 많은 머리채에 얼굴은 주름진 곳이 없었다. 게다가 윤기가 나면서 탱탱하기까지 했다. 후줄근한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맵시가 났다. 강 여사는 웬만한 화장품 하나 갖추지 못하고 살았다. 자식들과 살아야 했기에 몸치장할 여력도 없거니와 사치라고 생각했다. 헐렁한 바지에 색 바랜 점퍼를 입고 있는 자기 모습을 돌아봤다. 힘겨웠던 지난날이 뭉텅이가 되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몸이 스르르 내려앉을 것 같았다. 급하게 병실을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자의 고운 자태가 떠나지 않으면서 지르르하게 눈물만 나왔다.

서편 하늘에는 낮게 깔린 먹구름이 산 중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구름은 붉은 노을에 취해 가고 어둠은 거리를 서서히 메워갔다. 강 여사는 장사를 접을 시간이 되자 초조해졌다. 수북하게 쌓인 해산물을 보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싱싱한 조개와 매생이, 싸게 드릴게요.”

애가 탄 목소리로 외쳤다.



*



차들은 무거운 엔진소리를 내며 도로를 내질러갔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강한 바람이 불어와 도로의 바닥을 훑었다. 뒤늦게 떨어진 자작나무 잎들이 보도를 쓸었다. 노인은 삼거리 주요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지선도로에 서 있었다. 노인이 서있는 도로는 편도 2차선이었지만 한 차로는 주차된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인은 횡단보도를 침범해 주차한 차량 사이에 서 있었다. 가끔 직선로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대형트럭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노인은 몸을 구부리고는 앞에 놓은 카트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벌써 두 시간째였다. 노인은 외제차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범행 대상을 제한하면서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제도 네 시간이나 서 있었다. 외제차를 식별하기도 어려웠지만 어쩌다 기회가 오면 타이밍을 놓쳤다.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신호가 켜지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닛 가운데 표창 모양의 상표를 부착하고 있는 검정색 차량을 봤다. 차는 속도를 줄이고는 우측으로 꺾었다. 노인은 주차된 차량의 높이보다 몸을 낮추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카트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차가 횡단보도에 가까워질 찰나였다. 팔을 쭉 뻗어 카트를 내밀었다. 순간 타이어 마찰음이 노인의 귀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차는 카트를 충격했다. 노인의 손에서 튕겨져 나간 카트는 도로 바닥을 뒹굴었다. 노인은 흐느적거리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을 감고는 주위의 소리에 촉각을 기울였다. 차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졌다. 노인은 허리춤에 손을 대고 신음을 냈다. “외제제제, 외제제제.”



*



교통사고조사 사무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책상 사이로 설치된 칸막이로는 방음이 되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노인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한 남자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왜 내말은 안 믿고 저 사람 말만 믿어요.”

노인은 병원에 입원한 지 3일 째 되던 날, 병실을 찾아온 경찰관과 함께 경찰서로 동행되었다. 노인은 책상을 경계로 조사관과 마주 앉았다. 노인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조사관의 얼굴에서 낌새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어쩌다 조사관의 눈과 마주치면 빠르게 눈길을 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감과 불안이 밀려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면서 간혹 다리까지 떨었다. 조사관은 느리게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모니터와 노인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유심히 봤다. 한참 후 조사관은 길게 숨을 들이켰다가 서서히 뱉어냈다.

“어르신, 며칠간 횡단보도에 계셨어요.”

“며칠간요. 아, 아, 아니에요.”

노인이 더듬더듬 대답하자 조사관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한심한 눈빛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집 앞에 있는 놀이터 의자에 앉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그네 옆에 심어진 나무를 올려봤다. 물기 없는 가지에 깡마른 잎사귀 한 개가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바람이 몰아치면 잎은 가지에서 떨어져 멀리멀리 날아갈 것 같았다. ‘외멀양배’ 멀리 떨어지고 양보했어야 했는데, 늙은이가 무슨 객기를 부리겠다고…. 노인은 일어났다. 허리에 손을 대고 비틀비틀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냉골인 방은 노인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불룩하게 올라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활처럼 몸을 말아 외로 누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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