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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심사평

“생생한 묘사로 비극성 가중시키는 뚝심 돋보여”

2020년 01월 01일(수) 00:00
이화경 소설가
‘문학은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네안데르탈의 계곡에서 커다란 회색 늑대에게 쫓겨 뛰어나온 그날 태어나지 않았다. 문학은 소년이 뒤에 늑대가 없는데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날 태어났다.’

문학의 탄생에 대한 재밌고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였다. 그는 문학이란 만들어낸 이야기(허구)이며 작가는 위대한 사기꾼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거짓말쟁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사람들을 속이고 홀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문학이 건네주는 마법이라고도 했다.

전남매일 신춘문예에 응모한 소설들을 마주하면서 일상에서 만날 리 없는 늑대의 출현을 외치는 소년을 만나고픈 마음으로 읽었다. 읽는 이에게 전율을 안기는 빛나는 통찰력과 문체, 플롯, 수사, 상징, 은유 등 이야기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생의 비의를 짜릿하게 들춰내는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많은 작품들이 주관적으로 체험했던 삶과 관계의 곤경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었다. 문제는 강도 높은 체험에 지나치게 압도당한 나머지 산문의 객관성을 저버리고 있다는 데 있었다. 몇 작품은 과도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의 과용으로 인해 구체적이고도 실감나는 생의 진면목이 묻혀버린 한계를 보여주었다. 몇 작품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소재주의적이고, 관습적인 측면이 너무 강해 오히려 감응력을 반감시키기도 했다.

본심에는 ‘히어로가 되는 방법’과 ‘어쩌다가’ 두 작품이 올라왔다. ‘히어로가 되는 방법’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악과 싸우면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존재인 히어로에 대한 역설을 의뭉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볼품없는 취업준비생 주인공이 적자생존을 넘은 특화생존의 전략으로 삼은 ‘히어로 되기’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음울한 초상을 적실하게 그려낸 장점이 있었으나 이야기 전개가 평면적이고 밀도가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어쩌다가’는 심각한 노인의 존엄 문제와 실존적 위기에 몰렸으나 비상구조차 없는 빈곤의 그늘을 차분하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긴밀하게 조직되면서 주인공 노인의 몰락을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차 없는 세상의 비정한 폭력을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비극성을 가중시키는 뚝심, 소설의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꾸만 어긋나는 관계까지 암울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잃지 않는 점이 돋보여서 ‘어쩌다가’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새로운 이야기꾼의 출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문운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한다.



이화경 소설가


1997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 ‘둥근잎나팔꽃’을 발표하며 등단. 주요 작품으로 △수화 △나비를 태우는 강 △꾼-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화투 치는 고양이 △탐욕 △그림자 개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열애를 읽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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