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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는 조례, 잠자는 조례

이혜자 전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

2020년 03월 26일(목) 17:16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법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어느 사회나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 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 즉 규범이 필요한 이유다. 규범은 사회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해지고, 사회가 진화할수록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발전하면서 자치입법 활동이 활발해지는 이유도 같은 연유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제정된 지방자치법(1949년 7월 4일 제정)에서 비롯됐다. 최초의 지방의회인 시·읍·면의회 선거는 1952년 4월에 실시됐고, 그 뒤에도 몇 차례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5·16 이후 지방의회는 해산되고 이후 30여년 간 지방자치는 중단됐다. 1991년 6월에 이르러서야 지방의원 선거가 다시 실시됐고 지금까지 30여년간 주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오고 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11대 전남도의회는 어느 시도 의회보다 활발한 입법 활동을 해오고 있다. 전남도의회는 올해 3월 기준 모두 376건의 조례를 제·개정했다. 이는 전북 229건, 경남 337건, 충남 352건, 충북 234건 및 전남도와 규모가 비슷한 경북 247건 보다도 많은 수치다. 조례 제·개정을 통해 주민의 권익을 보장하려는 전남도의회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자치법규는 지방의회의 의결로 제정되는 조례와 자치단체장이 제정하는 규칙 등이 있다. 지방의회에서 제정된 조례는 주민의 삶과 행정을 규율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의 규범으로 작용한다.

조례안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그리고 일정 수의 주민이 발의할 수 있다. 전남도의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의원발의 조례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민선7기 376건 조례 중 의원발의가 314건으로 84%를 차지한다. 이처럼 의원발의 조례가 늘고 있는 건 지역민의 제도개선 요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그에 상응한 도의원들의 적극적 의정활동으로 풀이된다. 의원발의 입법 증가는 주민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여러 사안들에 대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주민에게 필요한 조례인데도 불구, 과도한 해석과 오해로 제정되지 못하거나 개악된 사례도 더러 있다. 제정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쳐 폐기되거나 상정조차 못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어려운 과정을 통해 태어난 조례가 지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아예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조례가 주민의 환영을 받지 못한 이유는 현실이 늘 규범을 앞서가기도 하지만, 입법기관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의회 구조가 양당 대립 관계일 경우 아무리 좋은 규범을 발의해도 상대 당의 반대로 심의조차 못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정 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우에도 부작용은 일어난다. 예컨대 서로 잘 아는 의원이 발의하려는 의안은 내용도 살피지 않고 공동발의에 가담한다든가 찬성표를 던진다.

조례는 지역민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를 조정하고 주민의 요구를 직접 충족시키는 자치규범이다.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통해 제정되는 조례들이 주민의 환영을 받고 그 역할을 충실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려면 첫째 조례 제·개정 시 지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지역의 실정을 담지 못한 조례는 잠자는 조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둘째 급속히 성장하는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시의적절한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사회의 추세를 잘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셋째 의정활동 실적 쌓기를 위한 숫자 채우기식 조례 생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조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례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주민의 삶에도 직결된다. 전남도의회가 앞으로 주민의 의견을 오롯이 반영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조례들을 대거 제정하는 등 의회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조례들이 잠자는 조례가 아닌, 지역민의 환영받는 조례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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