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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에서

김한호(문학박사·문학평론가)

2020년 05월 27일(수) 02:13
민주광장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5·18 민주항쟁 때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광주 시민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그런데 그 노래를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33년간 장기집권한 훈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촛불집회를 하면서 자국어로 부르고 있었다.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과 금남로는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곳에서 모여 시위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5·18 단체도, 노동 단체도, 종교 단체도, 심지어 타지에서 태극기 부대까지 몰려와 앰프를 크게 틀어놓고 시위를 하는 열린 광장이다.

옛 전남도청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지어져 2005년까지 사용되었다. 전남도청은 원래 전일빌딩 자리에 있었으나 새로운 청사를 신축하기 위해 대황사라는 절을 허물고, 지금의 자리에 현재와 같은 하얀 외관이 아닌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는 도청이 무안군 남악 신도시로 이전해 가고, 광주시청이 상무지구로 이전해 가기 이전에는 광주의 중심지였다.

금남로는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북구 광주천 발산교까지 이어지는 2.6km로 5~6차선 도로이다. 그 중에 옛 전남도청에서 옛 광주은행 사거리까지 518m를 ‘유네스코 민주 인권로’로 지정했다.

금남로는 도로명 우편번호가 생기기 이전부터 충장로와 함께 광주의 대표적인 거리였다. 금남로는 도청과 시청이 이전해 가기 이전에는 공공기관과 금융 회사 등이 모여 있는 상권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지하상가와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으며, 도청 앞 분수대가 있는 지하에는 만남의 광장이 있다.

금남로의 금남(錦南)은 정충신(鄭忠信 1576~1636)의 호이다. 정충신의 탄생한 이야기는 ‘계서야담’에 전해오고 있다. 광주 향청의 좌수였던 정윤은 꿈에 무등산이 갈라지면서 청룡과 백호가 튀어나와 품에 안겼다. 예순이 가깝도록 아들이 없던 그는 신기한 꿈이라 여겨 부엌에서 자고 있던 계집종과 정을 통했다. 그 후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눈빛이 총명하고 골격이 남달랐다.

정충신은 어머니가 천민이기 때문에 천민으로 살면서 아버지가 있는 관아에서 통인으로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 목사였던 권율 장군을 따라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의주로 피난을 가서 명나라로 망명하려는 선조 임금에게 권율 장군의 장계를 전달하여 선조 임금이 망명하지 않도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해 무과에 합격하여 양반이 되었으며,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1등 공신이 되어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그는 정직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평생 청빈하게 살았다.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계엄군들의 집단 발포와 헬기 사격으로 광주 시민들이 무참히 죽었던 비극적인 장소이다. 지금도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에는 그때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 그 후에도 전두환 군사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대학생들의 화염병과 전투경찰의 최류탄이 난무하던 거리였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리던 민주·평화의 광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에서 각종 시위뿐만 아니라 5·18 행사와 충장 축제, 시민을 위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더욱이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되고 난 후에는 주말이면 다양한 프린지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그래서 금남로에는 슬픈 과거와 즐거운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나는 금남로에서 역사의 현장을 과거에 이어 현재까지 함께하며 살아가고 있다. 5·18 이태 전에 공수특전사 장교였으며, 5·18 당시 전방부대에서 휴가를 나온 나는 금남로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광주사태는 북괴군 600명이 광주 시민들과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하면서, “광주 시민들을 빨갱이”라고 하는 왜곡된 유언비어를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되는 5월에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5·18에 대한 진실을 알게 하고 역사인식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금남로를 거닐면서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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