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크레파스 몇 개가 전부이던 시절, 양림동 언덕 위에 앉아 쓰다만 누이의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이제 훌쩍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아이는 이곳에 돌아와 그림을 펼친다…”

양림동은 이형우 작가에겐 유년의 기억이 출발하는 곳이다. 초등학생 시절 그림을 시작했던 곳이고, 다양한 그림의 소재를 제공해줬던 곳도 양림동이었다.

이형우 작가가 남구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20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오는 10일까지 ‘You told me it was fiction’을 주제로 최근 완성한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5년만의 광주 전시이기도 하고 처음 그림을 시작했던 장소에서 여는 전시이기에 작가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호랑가시나무언덕 일대에 단풍나무가 아주 많았죠. 사직도서관에서 조선대쪽을 바라보며 풍경화를 그렸고, 야외수영장 벤치에 앉아서도 그림을 그렸어요. 벌써 45년 전 이야기네요.”

아트폴리곤에 작품을 걸고 나서 양림동 일대를 걸었다는 그는 “마을은 변했지만 장소마다 새겨진 기억들은 온전했다”며 그래서 어린시절로 회귀한 듯 편안하기도 하고, 급격히 달라진 모든 것에 슬퍼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Tarrega’

그동안 ‘허구’를 주제로 작품을 그려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더욱 ‘농익은 허구’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작가 특유의 인물과 동물 묘사는 한층 더 위트가 넘치고, 작품마다의 돌발상황은 뇌의 상상영역을 자극하며 웃음을 유발시킨다.

작가는 허구적 공간을 통해 허구가 갖는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색감이 풍성한 스토리에 시너지 효과를 더해준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유치한 듯 하면서도 해맑게 순수하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허구투성이지만 자유롭고 진지해 보인다.

작가는 ‘You told me it was Fiction’이란 주제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쉼없이 일어나는 우리 자신의 허구성을 되새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간을 말할 때 허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작가의 생각이다.

“비록 모든 것이 허구일지라도 작업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작가노트 중>

‘their harmony’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00호 대작 ‘마지막 말장난(The last joke)’이다.

100호 크기 3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인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재해석해 작가 특유의 위트로 패러디 했다.

예수와 열두 제자들의 다양한 모습, ‘오병이어’를 연상케 하는 빈곤한 식탁 위 두마리 생선과 5개의 떡, 식탁 밑으로 보이는 목줄 달린 개 두 마리와 배경의 동양화 그림 등 깨알 디테일이 흥미롭다.

“최후의 만찬은 언젠가는 꼭 그려보고 싶었던 과제같은 작품이었어요. 사실 인간이 마지막을 앞두고 만찬을 열기란 쉽지 않죠. 만찬 속 열두 제자들은 내일 아침 일어날 배신에 대해 저마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 결국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허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구상에서 완성까지 6개월을 매달렸던 작가는 이번 그림을 통해 “나도 부족하지만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에 대한 토론과 작가와 대화 등 프리토킹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별도 행사는 취소됐다.

문의 062-682-0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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