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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무엇이 이같은 폭력을 가능하게 했나

권력에 맞선 싸움…피해 생존자 김지은의 기록

2020년 07월 14일(화) 10:42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지난 2019년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아내며 3년 6개월 형을 받고 현재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연합뉴스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 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막대한 관계와 권력으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지엄함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지은 항소심 최후진술서 중에서)



여기 피해 생존자 김지은의 기록이 있다.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비서였던 그녀는 지난 2019년 9월 9일 안희정을 상대로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안희정은 3년 6개월형을 받고 현재 광주교도소에 복역중이다.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비서였던 그녀는 재직 당시 ‘순장조’라 불렸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과 신하들처럼, 그녀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마지막엔 죽음으로 그 입을 막아야 하는 존재와 같았다. 2018년 3월 5일 상사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2019년 9월 9일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여러 번이나 가만히 당했느냐?”, “왜 곧장 말하지 않았느냐?”, “좋아했던 것 아니냐?”

이 책은 상사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당한 노동자 김지은의 권력에 맞선 싸움과 그 생존의 기록이다. 수행비서 시절 그의 업무 환경, 안희정 조직 내부의 분위기, 범죄를 당하던 당시의 전후 상황, 그때 당시 자신의 기분 등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자극적인 기사의 헤드라인 몇 줄로 접했던 이야기보다 훨씬 방대하고 자세한 내용이다. 재판을 위해 필요한 증거를 거듭 정리해 제출하고 반복해 진술하며 보낸 수개월도 실렸다.

책은 수 많은 증거자료와 신빙성에도 불구하고 왜 안희정에게 1심 무죄가 내려졌는지, 위력에 의한 강제적 성범죄를 바로잡기 위한 재판이 피해자를 이토록 힘들게 할 일이었는지에 대해 되묻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무엇이 애초에 이 같은 폭력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가해자에게 가야 마땅할 비난의 화살은 왜 항상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로 끝나는지 답답함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책은 많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 스스로에게 그 대답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김지은은 왜 미투를 결심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다음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세상에 자신의 진실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사실을 말한 후에도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비난과 거짓 선동 속에 또 다시 상처받고 아파야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두려움에 입을 열지 못하는 또 다른 ‘김지은’들이 너무나 많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사회의 위력 속에 갇혀 있었던 김지은의 목소리가 널리 읽히고 기억되는 것이, 지금도 무수히 존재하는 위력 속 가해와 피해를 멈추는 길이자 정의가 아닐까.
/오지현 기자         오지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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