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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의 심판

데스크칼럼/이연수(문화부장)

2020년 08월 05일(수) 01:56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하라.’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심판’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결정해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져놓은 황금사과를 건네줘야 하는 인간 파리스의 이야기다.

미모의 차이를 가르기 어렵자 세 여신은 공정한 심판을 위해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소년 파리스에게 심판을 부탁하지만 곧바로 뇌물로 유혹하기에 나선다. 헤라는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지혜와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맺어주겠다고 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이로 인해 트로이전쟁을 불러일으키고 비극적 최후를 맞지만….

이 이야기는 루벤스, 르누아르 등 많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그려져 더욱 유명하다. 애꿎은 파리스의 선택은 미의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조건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뇌물의 가치에 마음을 연 것이다.

간혹 심사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 ‘파리스의 심판’이 떠오르는 상황이 있다. 좀체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선정을 꼭 해야할 때다. 이 때는 본질보다는 주변의 것들에 판단이 현혹되지는 않았나, 학연·지연·혈연을 참고 사항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았나를 스스로 경계해야만 한다. 특히 심사를 맡은 나 자신은 과연 심사의 자격에 부합한가 자기점검도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심사는 투명·공정한가


최근 들어 각종 심사 결과에 대한 날선 신경전을 접한다. 사업 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심사나 우수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심사, 각종 오디션, 레지던스, 비중있게는 문화기관 수장을 뽑는 심사나 예술인 지원금 선정 심사 등 심사의 연속이다.

코로나19로 날려버린 상반기 문화예술계의 타격을 지원하고자 긴급 작품구입 공모가 진행중인 광주시립미술관이나 전남도가 시행하는 예술인 긴급복지지원금 심사도 예술인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다.

최근 지역의 몇몇 성악가는 광주문예회관의 하반기 오페라 배역 오디션에서 광주의 성악가가 배제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공식 오디션에서 8개의 배역 중 2명만 광주 출신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문예회관 측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고 흠결없이 심사를 진행했으며, 국립오페라단과의 첫 공동제작 작품인 만큼 기량이 뛰어난 지역 성악가를 발굴하고 출연기회를 확대하는데 집중했다고 밝힌다.

오디션이 끝나면 심사에 항의하는 사례는 종종 있어 왔다. 미술작품 공모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미술공모전의 심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탓인지 공모결과 발표 후엔 늘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학연, 혈연, 지연을 떠난 공정한 심사, 역량있는 심사위원의 확보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을 위한 공모는 지원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계의 큰 관심거리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모 절차와 해당 직위에 걸맞은 사람이 선임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모에는 총 7명이 지원했으며, 4일 4명의 서류심사 합격자가 발표됐다. 10일 면접심사를 거쳐 2인 이상을 선정해 시장에게 추천하면 시장이 낙점한 1인에 대해 시의회 청문회를 거친 뒤 임명한다.

지역 내에서는 원서를 낸 7명이 누구인지 이런저런 말들이 넘쳐난다. 특정 학교 출신이 거론되며 동창회를 중심으로 소문이 나기도 하고, 공모에 낸 것으로 하마평이 무성했던 한 인사는 나중에 임원추천위원으로 확인되며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심사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은 기본이다. ‘어디 출신’이란 말을 우선시하는 구시대적 발상은 ‘출신’들의 더 넓은 무대 진출의 장벽이 될 뿐이다. 역으로 ‘출신’ 장벽때문에 광주 출신이 타 지역 무대에 서기가 어렵다면 그 또한 우물 안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한 심사 장소에서 만났던 심사위원을 다른 심사 장소에서 또 만나게 되는 심사인력풀의 한계도 지역의 빈약한 인력구조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까 한다.


달빛동맹 교류 심사 어떨까


광주시립미술관이 광주와 대구 작가들의 교류전인 영호남 달빛동맹전 ‘달이 떴다고’를 열고 있다. 양측 작가 70여명의 작품이 대구와 광주에서 자리를 옮겨 진행 중이다. 교류전을 보며 지난 2013년부터 교류와 협력을 이끌어온 광주와 대구의 ‘달빛동맹’에 영·호남 상대지역의 각종 심사에 대한 심사 교류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수 있겠지만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실력 위주의 공정한 심사가 달빛동맹 교류로 가능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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