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꿈꿨지만 법대 입학 음악과 문학 갈망
상상력 시작은 12개 소품으로 엮어진 ‘나비’
음악신보 발간·상상집단 ‘다비드동맹’ 결성
8개 소품 구성 ‘클라이슬레리아나’로 빛 발해



상상력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원천이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상상력에 대해 “대상을 그 현전이 없어도 직관 속에서 표상하는 능력“이며, ”다양을 하나의 형상(Bild)에로 가져오는 능력이다”고 했다.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856)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적 감정과 시적 표현을 큰 가치로 부여했다. 그의 작품이 더 낭만적이고 시대를 앞장설 수 있었던 데는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만 생가의 피아노.

1811년 독일의 작은 도시 츠비카우에서 서점과 출판업을 운영하는 아우구스트 슈만(Friedrich August Schumann 1773-1826)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슈만은 여섯 살부터 정규 교육을 받으며 피아노를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작가로 슈만에게 짧은 글을 쓰고, 편집일도 종종 맡겼었다. 당시 장 파울(Jean Paul, 본명 Johann Paul Friedrich Richter, 1763-1825)과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1776-1822)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가 문학작품에서 창작의 영감을 받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장 파울의 무덤을 찾아가기도 했으며 심지어 뮌헨에서는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와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주변의 권유에 따라 1828년 라이프치히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했다. 흥미 없는 법률 공부를 하는 그의 대학생활은 평탄했을까? 결국 슈만은 내재된 예술가적 기질과 열망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문학과 음악적 호기심을 갈망하며 낭만주의 예술세계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특히 1828년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은 ‘베토벤 서거 1주년’을 기리며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고, 이 공연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슈만은 작곡가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 슈만은 장 파울과 호프만의 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이들의 문학작품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Motive 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는 창작 초기 피아노를 중심(작품 1부터 23까지 모두 피아노 곡)으로 작품들을 완성했다. 슈만의 초기 작품으로 12개의 소품으로 엮어진 ‘나비(Papillons Op.2)’는 1829년에서 1831년 사이에 완성한 그의 상상력이 시작되는 작품이다.

‘나비’는 장 파울의 소설 ‘무분별의 시대(Flegeljahre)’의 마지막 장인 ‘애벌레의 춤’이 배경으로 작곡되었다. 애벌레의 춤은 ‘발트(Walt: 시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와 ‘불트(Vult: 현실주의자이며 저돌적인 성격)’라는 쌍둥이 형제가 가면무도회장에서 아름다운 소녀 ‘비나(Wina)’에게 구혼을 하는 내용이다.

슈만이 비평가 렐스탑(Heinrich Friedrich Ludwig Rellstab, 1799?1860)에게 쓴 글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 곡을 작곡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은 ‘무분별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가면부도회, 발트, 불트, 가면, 고백, 분노, 가면 벗기기, 마지막 장면, 떠나가는 형제들)을 기억하시죠? 나는 특히 맨 마지막 페이지를 잘 펴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마지막이란 나에게 새로운 출발인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고, 그와 동시에 ‘나비’가 한 마리씩 연달아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Motive Ⅱ

슈만은 1834년 4월 3일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ur Musik)를 발간하여 쇼팽과 브람스 등 당대 음악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했다. 그는 음악신보의 중심축으로 다비드 동맹(Davidsbundler)이란 상상의 집단을 만들어 독일낭만음악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진 속물 음악가들을 필리스틴(Philistins)으로 지칭하여 다비드동맹과 대립적인 구도를 만들었다.

음악신보에는 자신의 이름 대신 플로레스탄(Florestan: 활발하며 성급한 개혁자)의 약칭인 ‘F’나 오이제비우스(Eusebius: 이성적이며 조용한 몽상가)의 ‘E’, 라로(Raro: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합리적 중재자)의 ‘R’을 필명으로 기고하고 가끔은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도 각기 다른 인물들의 다른 평을 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F’와 ‘E’가 Motive Ⅰ에 언급한 발트(Walt)와 불트(Vult)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상상력은 음악신보에 그치지 않고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상상하며 ‘다비드 동맹 무곡집(Davidsbundlertanze, Op.6)’을 완성했다.

슈만은 클라라(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1819-1896)가 작곡한 마주르카 주제 2마디(Op.6 No.5)를 차용하며 무곡집을 시작한다. 그는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 A-B-A 형식의 짧은 기악 소품)를 활용해 빠르고 열정적인 곡과 느리고 서정적인 곡을 교대로 사용해 다양한 감정을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고, 가끔은 두 가지 캐릭터를 한 곡에서 동시에 들려주기도 한다.

8개의 소품으로 구성된 클라이슬레리아나 첫번째 출판 악보표지.

#Motive Ⅲ

그의 상상력은 8개의 소품으로 구성된 클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Op.16)에서 빛을 발한다. 이 작품은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에 등장하는 악장 크라이슬러에 대한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설은 천재 수고양이인 ‘무어’가 집에 있는 이면지에 자신의 자서전을 기술하는데, 편집자의 실수로 이면지에 적힌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의 전기까지 인쇄되어 버렸다는 이색적인 설정이다. 이런 독특한 구성의 소설은 이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악장 클라이슬러는 속세와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예술을 갈구하는 천재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Motive Ⅱ에 소개한 슈만의 이상적인 예술가상으로 필리스틴을 그린 자아도취적인 무어와는 대조적인 다비드동맹의 모습이기도 하고, 법관이었지만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후원자의 도움으로 악장이 되고 오페라도 작곡하게 되는 호프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슈만은 자신의 음악적 상상력을 문학작품을 통해 자주 구현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상상력과 낭만주의적인 환상을 들려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제한된 세상에서 슈만의 음악과 함께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