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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글짓기대회 고등부 대상

한라에서 백두까지
박소현(살레시오여고 2년)

2020년 12월 15일(화) 14:43
박소현(고등부 대상)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은 우리나라 애국가 가사 중 일부이다. 우리는 학교 행사나 국가 행사등 다양한 행사에서나 아니면 그저 아무 때나 애국가를 부르고는 한다. 우리가 쉽게 부르고 다니는 애국가에서는 첫 가사부터 백두산이 나오는데 우리는 백두산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 본 적 있을까? 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8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백두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없다. 백두란 내게 먼 곳이었고 백두는 어째서인지 무서운 범죄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고, 살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을 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이자, 다가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한 존재였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나는 언제부터 백두를 바라볼 때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본 것일까. 내가 태어나기전, 그리고 오래전 백두와 한라는 애초에 모두 같은 나라였다. 오랜 시간 동안 백두와 한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둘은 늘 함께였고 수만 번의 일출과 일몰,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 놓으며 빛나는 밤 하늘을 바라보고 많은 역사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오랜 시간 함께했다. 한라와 백두는 서로의 두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그 날은 조금 이상한 날이었다. ‘해방’이라는 기쁨과 함께 한라와 백두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념적 혼란과 대립으로 인해 한라와 백두 사이에는 선이 그어졌고 1950년 6월 25일 그들에게는 선이 그어진 것보다 더 큰 아픔이 생겼다. 한라와 백두는 동족상잔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갈라서게 되었는지, 왜 같은 민족을 잔혹하게 죽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그저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백두와 한라는 순간 놓친 서로의 손을 다시는 잡을 수 없었다. 같이 지새웠던 수 많은 밤과 함께 보았던 무수히 많았던 별과 따스했던 태양 빛이 사라지자 서로를 그리워하며 슬퍼하자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둘의 만남을 약속하고 소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백두와 한라가 같이 보았던 한 개의 태양은 사라지고 두 나라에서는 각자의 태양이 새로 떠오르게 되었고, 사람들은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각자의 길에서 살기 바빴다. 사람들이 한라와 백두에 대해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그 둘을 따스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둘을 비판하거나 조롱하기에 바빴다. 예전에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서로를 증오한다. ‘뒤떨어진 공산주의’, ‘경제력이 안 좋은 나라’ ‘후진국’‘미국의 종’ 등의 말이 서로에게 오갔고, 서로의 실수를 끄집어내어 비판하고 자신의 나라를 치켜세웠다. 시간이 더 흐를수록 한라와 백두사이는 좁혀지기보다 오히려 더 멀어지기만 하였고, 다시 그 두 손을 맞잡자는 약속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둘은 어째서 서로를 비판하게 된 것일까. 둘은 왜 다시 손을 잡기보다 서로의 손을 잘라버리려고 했을까. 한라에서는 왜 백두를 싫어하고, 백두에서는 왜 한라를 싫어할까. 분단된 국가라는 현실에 다들 적응을 해버리고 지금도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현재 우리나라는 분단된 국가이지만 전 세계라는 넓은 관점에서 봐도 손가락에 꼽힐만큼 경제가 많이 성장했고, 살기에도 무척이나 좋은 나라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는 통일을 지양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부터 함께했던 민족 통합을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경제적 측면에서 따지기 바쁘다.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으면 민족 통합을 위해서보다는 경제적 이익이나 불이익을 따져 통일을 찬성하거나 반대한다.

예를 들어 통일에 찬성하는 입장인 경우 통일을 하면 북한의 지하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북한의 멋진 자연경관을 이용해 관광사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며, 남한과 북한에 긴 철로를 지어 기차로 세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반대하는 입장인 경우에는 북한이 남한에 비해 많은 개발이 필요한 곳이고, 남한은 북한을 위해 많은 지원과 개발을 해야해서 남한 국민들에게 많은 세금 납부가 요구 될 것이므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는 한다.

물론 통일을 생각할 때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나라의 경제력이 중시되고 있어 우리가 경제적 이익과 불이익을 따지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자신에게 올 이익과 불이익을 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세계 시장이 넓어지고 커지면서 세계에서는 점차 사랑이 결여되고 있다.

나는 이 점 또한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에 어느정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먼저 따지고 나서 민족 통합과 같은 정신적인 것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는 것은 서로를 경제적 측면에서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것이다. 우리는 늘 서로를 목적으로 대해야하며 경제적 이득을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서로를 수단시하는 생각과 행동은 버려야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야 말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지는 튼튼한 다리를 놓는 것이 아닐까? 한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백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서로에 대한 편견 등과 같은 어려움들을 앞으로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하나씩 없애가야하는데.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그 시작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걸음이고 결국 한라와 백두가 다시 서로의 손을 잡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실천. 아직은 상상조차 잘 되지 않고 힘든 길을 가야할 것 같지만. 이는 여행을 가는 것과 같다. 여행을 준비 할 때는 걱정도 많이 되고 여행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야한다. 자신이 가는 곳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그곳의 문화를 배우는 등의 준비를 하게되고 여행을 가면 자신이 있던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느끼는 그 뿌듯함과 성취감은 누구에게 설명할 수 없을만큼 크고 보람차다.

한라와 백두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먼 여행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준비해야 한다.서로를 잃어버렸던 시간만큼 많은 차이가 있는 부분은 서로 공부를 하고 존중하며 인정해주고 공존하면 되는 것이고. 그 비어있던 시간들을 다시 메꿔주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편견이라는게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존중해 주어야하고, 인정해 주어야하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라와 백두가 손을 놓쳐 다시 잡지 못하는 이유에 나도 어느 정도를 기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게 통일은 그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올 경제적 불이익이나 손해를 생각하였을 때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들 것이므로 통일을 반대한다.’ 였다.

통일을 하게 되면 민주주의인 남한과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는 북한 사이의 정치 체제 통일은 어떻게 할 것이며 교육 격차는 어떻게 좁힐 것이고, 북한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데 드는 많은 비용은 어디서 어떻게 쓰고 남한 국민에게 많은 세금을 납부하라고 해도 이것은 옳은 걸까? 라고 문제점들만 따지기에 바빴다. 어쩌면 나는 이런 문제점들만을 보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통일을 하면 생길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통일을 회피해 버린 것이다. 내가 통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최근 수업시간에 있던 일 때문이었다. 통일 찬반에 관한 토론이 한 번 열렸었다. 나는 그 때 당연히 반대 측이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경제적 측면에서 통일에 대해 반대를 하였다. 통일 찬반 토론을 마무리할 즈음에 선생님이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왜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북한은 안될까?’였다. 나는 질문을 듣고 순간 머리가 멍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고 나서는 ‘북한도 우리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난민들도 수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과 같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환영하는 편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의 경우도 긍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북한과는 공존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내 생각이 너무나도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와 정치적 성향과 언어, 생김새, 원래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국가까지 사소한 것 하나부터 많이 다른 사람들과 살고 있고 그들을 받아들인지도 오래되었는데 ‘북한과의 공존은 안된다’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쩌면 나는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 탈북민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남한의 현 정치체제를 따르고 우리나라에 완전히 흡수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상대방은 존중해주어야 해’ 라는 말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부적절했다. 내가 과연 저런 말을 할 자격이라는 게 있었을까.

문화 상대주의를 지향한다던 나는 속내를 뜯어보니 결국 자문화 중심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북한에 관련된 뉴스의 영향, 여러 미디어의 영향,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듣고 자란 것에 영향을 받아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던 것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사실 저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인 것은 내 책임이다. 아무도 내게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제적으로 주입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교과서에서는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라고 배웠었다. 교과서나 여러 책에서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야한다고 가르쳐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나는 수업시간 이후로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들을 되돌아보자 너무나도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이 사회에서는 통일을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라와 백두 각각 2개의 태양이 떠오르면서부터 사람들은 이미 바쁘게 움직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면서 한라에서는 한라의 주머니만을 백두에서는 백두의 주머니 안만을 살피게 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피어 오른다고 해서 한라 사람들의 모두가 백두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을 가든지 간에 늘 목소리가 큰 집단이 우세하는 경향이 있어 그들은 백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 한 명 한 명에게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현재까지 있었던 북한의 군사 도발, 핵 실험 등을 생각하면 북한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한라와 백두는 떨어져있을 수는 없다. 오랜시간 많은 역사들을 같이 보내던 한민족인데 언제까지 떨어져 다른 나라 사람을 취급해야하는 것인가. 나는 통일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질문을 똑같이 던지고 싶다. ‘우리는 지금 외국인들과 한 나라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데 왜 북한과는 안될까요?’

한라와 백두가 서로의 손을 놓친지 6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금방 다시 만나자는 둘 사이의 약속은 벌써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고 이 약속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희미해져만 간다. 분단 현실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슬프게도 점점 이 현실에 익숙해져만 가고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한라와 백두를 잃어버리고 있다.

각자의 주머니만을 생각하며 달려가다보면 진정 자신이 채워나가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경제적 발전이나 나라의 군사력 증진 등만을 바라보며 한때 서로에게 가장 소중했던 한라와 백두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이다.

1919년 3월 1일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3.1운동과 같은 빼앗긴 우리 영토를 다시 찾아내는데에는 한라와 백두 모두 노력했고 서로를 도왔는데, 지금 서로를 찾지 않는 모습을 보고만 있으니 너무 안타깝기만하다. 나는 현재 학생의 신분으로서 평화 통일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는 없다. 학생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그저 통일을 소원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교내 통일 관련 행사 참가하기, sns에 통일에 대한 글을 올려 사람들의 인식 바꾸기 등등 누가 보면 영향력 없는 행동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로 인해 한명의 생각이 바뀐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다. 개인 한 명 한 명이 모여 나중에 큰 집단을 이루게 된다면 나는 평화 통일에 기여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라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백두를 생각해본적이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한라와 백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직은 내게 너무나도 먼 거리이지만

마음만은 이미 백두에 도착해있다. 이젠 통일을 떠올리면 통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우선시 되고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하지 않고, 늘 목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대해야하며, 통일에 다가가는 것이 비록 느리더라도 조금씩 확실하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야한다. 비록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이 힘든 과정이 있어야 한라에서 백두 사이에 더 튼튼한 다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끊어져있던 다리를 다시 이어주고 그 들의 손을 다시 붙잡게 도와주어 같은 역사를 두 눈으로 함께 보고, 수 천번 수 만번의 별들이 뜨고 질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너무나도 먼 거리.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좁혀야 할 거리이자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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