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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매일-신춘문예]동화 당선작-어색한 전쟁

김보미

2020년 12월 31일(목) 00:00
삽화=이형우
분명했다. 누군가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 말고 낯선 누군가가. 나는 오늘도 오싹 소름이 돋은 채 잠에서 깼다. 한 달 쯤 전이었다.

“엄마야!”

깊은 새벽, 나는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누군가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사람의 손길이라기엔 너무도 가늘고, 재빨랐다. 하지만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대기업 요리연구가에 아빠는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였다. 엄마, 아빠는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돌아왔다. 나는 늘 혼자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달랐다.

“엄마야!”

하고 소리친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였다. 나랑 아빠는 깜짝 놀라 거실로 튀어나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반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빠 말에 엄마가 대답 대신 휴대폰을 내밀었다. 아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엄마 휴대폰에는 새벽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엄마가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라는 것이었다. 밀접접촉자는 검사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안에서만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엄마가 출장 갔다 만났던 사람 중 하나가 확진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지잉 지잉. 때마침 아빠랑 나한테도 문자가 왔다. 엄마와 비슷한 문자였다. 함께 동거동락 한 사이니 한 세트로 검사 후 집에만 있으란다. 사실 난 일주일에 한 번 엄마랑 밥을 먹을까 말까인데다 잠도 따로 잔다. 그런데도 이럴 때는 한 세트라니.

“서류 받느라 만난 시간은 1분도 안 돼. 야외에서 서로 마스크 끼고 있었으니까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걸릴 리는 절대 없어.”

엄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 밑엔 그늘이 졌다. 뉴스에서 보았던 코로나 환자들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애벌레 같은 옷을 입고, 실려 가게 되는 걸까. 숨쉬기도 힘들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내 짧은 13년 인생은 끝이 나고 마는 걸까.

우리 셋은 아빠 차를 타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은 뒤 집을 돌아왔다. 셋이서 함께 차를 타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지하철을 탈 때보다 천만 배 더 어색했다.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왔다 갔다 하는 내내 세 개의 휴대폰들은 정신없이 울렸다. 요즈음 우리 가족을 만났던 사람들이 걱정과 위로를 건네는 척, 우리의 동선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안 그래도 혹시, 정말, 만약에 나도 걸렸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점점 더 부풀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5분에 한 번씩 울리던 휴대폰이 이제는 1분에 한 번씩 울렸다. 학교에, 직장에 오지 않은 우리 가족의 소식이 널리 널리 퍼진 듯했다. 나는 결국 온몸을 흔드느라 뜨거워진 휴대폰을 꺼버렸다. 엄마도, 아빠도 휴대폰을 껐다. 집안이 조용해졌다. 우리 셋은 가만히 소파에 앉았다.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해도 아무렇지 않던 집이었는데 엄마랑 아빠가 같이 있으니까 어색했다. 지금 당장은 코로나에 걸릴까 두려운 마음보다 이 순간 어색한 게 더 힘들었다. 내가 먼저 참지 못하고, TV를 켰다. 그러자 아빠는 일어나서 어제 물 준 선인장에 또 물을 주고, 엄마는 늦은 아침밥을 차리러 일어났다.

아침 밥상은 진수성찬이었다. 엄마가 이름난 요리 연구가니 집에만 있는데도 먹을 것 하난 걱정 없었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가족들 밥 세 끼 빠짐없이 차려주는 데는 자부심이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늘 손수 차린 밥상이었다. 얼굴 잠깐 볼 새 없이 바쁜 것에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반찬도 늘 푸짐했다. 시금치 된장국을 한 술 뜨며 아빠가 긴 침묵을 깼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래도 이런 기회로 가족이 다 같이 앉아서 밥 먹으니 좋은 점도 있잖아? 허허.”

엄마가 태평하게 웃는 아빠를 째려봤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그런 감상적인 소리가 나와?”

이렇게 또 대화가 끊겼다. 우리 가족의 대화는 언제나 이랬다. 아빠는 이럴 때마다 자리를 피해 화분에 물을 주러 베란다로 갔지만 지금은 밥상 앞이라 엉덩이만 두 번 들썩들썩 했다.

밥을 다 먹자마자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엄마는 부엌, 나는 내 방, 아빠는 베란다. 내일 아침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앉아서 뭔가 할 만한 기운도 나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방구석 어딘가에서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때였다.

“엄마야!”

엄마가 오늘만 두 번 째 엄마를 불렀다. 우리 셋은 또 거실로 뛰어나왔다.

“바퀴야. 주먹만 한 바퀴벌레라고!”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뛰어갔다.

“으아아악!”

침대 주변을 살피던 나는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침대 밑, 머리맡 모서리 틈새에서 까맣고, 작은 것들이 스믈스믈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침입자. 그 정체를 찾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내 소리에 엄마랑 아빠가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는 침대 밑에 휴대폰 플래시를 비췄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 사탕, 캬라멜 틈에 바퀴들이 득실거렸다.

“엄마가 침대에 음식 가져와서 먹지 말랬지. 이게 바퀴 집이지 사람 집이야!”

엄마 말이 맞았다. 정말로 우리 집은 바퀴 집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잠만 겨우 자고 다녔던 우리 집을 이제야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는 내 방 뿐만 아니라 책장 뒤, 소화기 밑, 창틈에도 있었다. 잠깐 둘러본 새에 이렇게 많은 바퀴들이 나왔는데,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더 나올지 몰랐다.

우리 셋은 다시 거실로 모였다. 거실엔 아까와 같은 어색함은 사라지고 비장함이 감돌았다.

“집에 있는 동안 바퀴를 다 잡아야겠어.”

엄마가 말했다. 나와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퀴 소탕작전이 게시되자 코로나에 걸릴까 걱정되던 마음도 다 사라졌다. 우리에게 살아 움직여야 할 목표가 생긴 것이다.

“트랩을 만들자.”

아빠 말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언제 다 잡아? 보이는 대로 살충제를 뿌려버려야지.”

내 말엔 엄마가 반기를 들었다.

“바퀴벌레는 죽으면서 알을 낳는다고. 알까지 죽이려면 치약이 최고야.”

우리 셋은 모두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세 가지 방법 모두 다 해보기로 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아빠는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대로 바퀴벌레 트랩을 만들었다. 유리병에 생감자 같은 바퀴 먹이를 넣고 병 주둥이에 기름을 발라 놓는 것이다. 아빠가 자신만만하게 먼저 베란다로 앞장섰다. 엄마랑 나도 트랩을 하나씩 들고 따라갔다. 우리는 바퀴가 가장 많이 꼬일만한 곳을 살폈다. 그런데 엄마가 화분 틈새에서 무언가 발견한 듯 눈썹을 꿈틀했다. 얇은 시집이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엄마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시집을 거꾸로 휘리릭 넘기자 오만 원짜리 지폐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언 듯 봐도 4~50장은 되어 보였다. 아빠는 들고 있던 트랩을 내던지고 황급히 돈을 주웠다.

“그동안 나 몰래 비상금 챙겨놨던 거야? 무슨 꿍꿍이야? 빨리 말 안 해?”

엄마는 끈질기게 아빠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빠 입은 철썩 붙어서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 얼굴이 뚫리도록 아빠를 째려봤다. 나도 엄마한테 매번 고분고분하던 아빠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놀랐다. 엄마는 내 팔목을 끌고 베란다에서 나왔고, 아빠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따라 나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살충제를 들고 앞장섰다. 방바닥이 허얘지도록 살충제를 뿌려도 바퀴는 쉽게 죽지 않고 뒤집혀 몸부림을 쳤다. 엄마는 아직도 버둥거리는 바퀴를 쓰레받기에 담았고, 아빠는 눈을 질끈 감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아빠가 책상 서랍 뒤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하곤 바퀴가 든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화를 내려던 엄마 눈이 가늘어지더니 아빠 손에 든 종이를 낚아챘다. 그게 무슨 종이인지 제일 늦게 깨달은 건 한심하게도 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난 순혁이랑 일주일 전에 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걔가 준 연애편지 따위는 바퀴벌레랑 같이 뒹굴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태 연애나 하고 다녔던 거야? 내가 너 연애질이나 하라고 꼬박꼬박 진수성찬 차려대며 회사 다닌 줄 알아?”

나는 엄마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바퀴벌레가 든 봉지에 구겨 넣었다.

“이제 다 끝났어. 이미 지난주에 차였다고!”

나는 일부러 바닥을 쾅쾅 차며 거실로 나왔고, 아빠는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 엄마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치약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나도 신경질적으로 치약을 구석구석 발랐다. 아빠도 말없이 우리 뒤를 따랐다. 그런데 찬장 맨 꼭대기 틈새에 반짝이는 비닐 같은 게 끼어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비닐을 쭉 당겨보았다. 그 순간, 와르르르르. 찬장에서 수십 개의 반조리 식품들이 쏟아졌다. 미역국, 소고기무국, 육개장부터 장조림, 메추리알, 우엉 조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럼, 당신 그동안...”

아빠가 입이 떡 벌어져 말을 다 못 이었다.

“엄마가 전부 손수 한 거라서 남기지 말라며. 엄마는 손이 부르트도록 밥하고, 회사 다니는데 편안하게 공부만 하면서 불평하지 말라며!”

아빠가 다 못 한 말을 내가 맺었다. 회사 다니면서 손수 반찬도 해 먹인다는 요리연구가 엄마의 거짓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쩐지 그동안 맛있었다. 엄마는 얼굴이 빨개져서 쏟아진 반조리 식품들을 서랍에 집어넣다 말고 소리쳤다.

“회사 다니면서 이런 거 데워서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인 줄 알아? 여태 잘 먹었잖아!”

우리 셋은 결국 다시 흩어졌다. 우리는 이렇게 잠깐 뭉치기도 힘든데, 바퀴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한 몸처럼 몰려다녔다. 엄마, 아빠, 나는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따로 따로 전쟁을 계속했다. 우리 셋은 마치 짠 것처럼 서로 동선 한 번 겹치지 않았다.

혼자서 전쟁을 계속해가며 나는 엄마, 아빠의 숨겨진 모습들을 또 발견했다. 바로 엄마의 스케줄러와 아빠의 플로리스트 자격증이었다.

화장대에 꽂혀있던 엄마의 스케줄러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스케줄이 가득했다. 바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바쁠줄은 몰랐었다. 진짜 엄마 말대로 그 시간을 쪼개서 반조리 식품을 뜯어놓는 것도 대단했다. 서재에 있던 아빠의 자격증도 충격적이었다. 아빠가 꽃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몰래 공부해서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꽃에 빠져있는 줄은 몰랐다. 엄만 몇 개 남은 화분마저 버리고 싶어 했고, 난 아빠가 꽃을 좋아하는 게 창피했는데. 아빠의 비상금은 아마도 이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스케줄러와 아빠의 자격증을 다시 그 자리에 얌전히 놔두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방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 일기장 위치가 살짝 바뀌어 있었다. 일기장엔 그동안 혼자였던 나의 외로움과 그래서 만났던 순혁이 이야기가 가득한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마음이 이상했다. 그동안은 몰랐던 엄마, 아빠의 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이상했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내 마음을 보여준 것 같아 이상했다. 서로 미안하거나 고맙다거나 그러기엔 너무 낯 간지럽고 더 어색할 것 같았다. 그냥 이 이상하고, 복잡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밤이 늦도록 바퀴를 잡는 일 뿐이었다.

지잉. 책상 위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습게도 오른손엔 아직까지 살충제를 들고 있었다.

잠결에 휴대폰 문자를 확인했다. 보건소 문자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엄마, 아빠도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나와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무사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만세!”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엄마도 아빠도 표정이 밝았다. 지잉, 지잉, 지잉. 휴대폰 세 개가 또 한 번 한꺼번에 울렸다. 보건소에서 온 두 번째 문자였다. 코로나는 아니지만 2주 동안은 집에서만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우리 셋은 얼음이 되어 서로를 쳐다봤다. 어색함은 하루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 때, 거실에 검은 바퀴 한 마리가 슬금슬금 지나갔다. 순간, 나는 엄마, 아빠 눈이 반짝이는 걸 분명히 보았다. 나는 다시 살충제를, 엄마는 치약을, 아빠는 트랩을 들었다. 2주간의 전쟁동안 우리는 또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서로를 쳐다보는 우리의 입가에 스르륵 웃음이 번졌다. 아직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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