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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화류소목장 조기종
2021년 02월 25일(목) 10:04
[한국의 명장] 화류소목장 조기종

국내 유일 ‘화류 소목장’
동복 오지호 화백이 즐겨 쓴 ‘화류 소목’
5년째 임시 작업장 운영‥지원 절실

우리나라의 전통 주거생활 양식은 바닥 중심으로 몸을 의지하고 생활하는 좌식이다. 마루와 더불어 전통적 공간구조를 이루는 주요한 생활공간은 책상, 다과상 등 목공예가 발달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목가구를 다루는 장인을 만나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자연 재료와 시간이 만든 명품 소가구

신명 나는 대패질 소리가 작업장 안을 가득 메운다. 장인 발밑으로 결을 따라 얇게 썰린 나무톱밥이 켜켜이 쌓인다. 일정한 힘으로 대패질을 하는 행위는 마치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인다. 매끄러운 목재는 대패가 거친 표면 위를 한동안 거침없이 오르내린 끝에 탄생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도구들은 손때로 새까맣게 녹진해졌으나, 제각각 순서를 기다리며 겨우 새어든 작은 빛에도 날카롭게 번쩍인다. 장인은 몇 번이고 각을 잰 뒤 끌로 짜맞출 곳을 정교히 파낸다. 준비가 끝난 뒤에도 완제품이 되기 위해선 최소 반년이 걸린다. 의재 허백련, 동복 오지호 선생 등이 사랑한 조기종표 ‘화류 소목’은 최고급 재료로 최상품의 제품만을 생산해내는 명품 소가구를 일컫는다.

조기종 화류소목장
◇54년간 전통 이어온 소목장

조기종(68) 장인은 광주무형문화재 제13호 화류 소목장이다. 소목장이란 건물의 문, 창문, 장롱, 경대, 궤, 책상, 난간 등을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조 장인은 유난히 뭉툭하고도 예민한 손을 가졌는데, 어릴 적부터 이름 모를 씨앗을 마당에 심어 싹을 틔워내거나 나뭇가지로 무언갈 뚝딱뚝딱 만들어내길 좋아했다. 남다른 유년시절을 간직한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4년 후인 1954년 집안 형편상 열네 살의 나이에 집을 떠나 순천의 한 목공소에 맡겨졌고, 그 인연으로 여태껏 망치질을 놓지 않고 있다.
스승이랄 게 딱히 없을 시절, 첫 목공소에서는 끌 하나 잡지 못하게 했다. 배우고 싶은 열망에 청소, 설거지,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뭔가 더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품삯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가장 많이 실력이 늘었던 곳은 단연 조선 팔도 최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경복궁과 창경궁이었다. 수시로 들락거리니 매표소 직원이 입장료를 받지 않을 정도였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는 우연찮게 복원과 수리를 도우며 재료를 보는 눈과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전통가구라는 게 참 매력적이야. 자연 재료 그대로 그 자체의 멋을 살리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소가구들을 살펴보니 300년이 넘는 가구는 없었지.”1975년 개인 공방을 열어 독립한 조 장인은 천년이 가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 전통 짜맞춤 기법에 매진했다. 못을 박거나 본드를 사용하면 쉽게 만들어 팔 수는 있으나, 녹이 슬거나 틈이 생겨 가구가 쉽게 망가진다는 것이 이유였다.현재까지 그는 정밀하게 다듬은 판재에 홈을 파고 쐐기를 박은 듯 견고하게 결구를 짓는 짜임공법으로 제작한다. 전통기법이지만 날씨나 온도 탓에 비틀어지거나 휘어질 염려가 없다. 조 장인만의 정교한 짜맞춤 방식은 자연스러운 조형미로 원래부터 하나인 것 같은 완성품의 모습이 특징이다.

◇곡선으로 완성한 목공예

소목장의 가치와 실력은 짜맞춤에서 드러난다. 짜맞춤이 제대로 되면 머리카락 한 올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맞물려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다. 색이나 장식으로 기교를 부릴 필요도 없다. 견고히 뿌리내렸던 땅과 하루하루 지내온 날씨만이 목가구의 색상, 강도, 결을 아름답게 빚어낸다. 나이테와 옹이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가장 훌륭한 그림이 된다.
조 장인이 가진 특기 중 하나는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유려한 곡선을 뽐내는 곳들에 있다. 서안(책상), 다상(차를 내리는 좌식 식탁) 등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지는 상의 다리들을 그의 독특한 기법으로 변환시켜 남다른 예술성을 선보이는데 탁월하다.
“대목장이 한옥의 처마 끝을 살리듯 소목장 목공예도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지. 내가 만드는 가구의 곡선을 특히 오지호 화백이 좋아하셨지.”
작품실에 있는 가구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고비(문서나 편지 등을 꽂아두는 가구)로, 형상화한 물고기와 학 등이 재미를 더한다. 오 화백은 그가 가구뿐만 아니라 대상을 보는 눈 역시 뛰어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쉽게 붙지 않는 수식어 ‘화류(樺榴)’란?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장인의 특징이다. 조 장인 역시 그렇다. 오랜 기간 원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에 좋은 원목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얼마 전에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조그마한 둔덕을 샀다. 귀한 재료가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최상품의 나무를 키워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이유다. 오래 나무를 다루다 보니 이제 웬만한 나무는 산림청 직원들보다 더 잘 안다. 어떤 토질에 어떤 나무가 어울리는지, 식재한 나무와 교감하며 어떤 소가구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생각한다.
“나무에는 혼이 있다. 늘 고마움을 느낀다. 인간과 어울릴만한 나무를 찾아 인연을 맺어준다.”
보통 소목장으로 불리는 장인들과 달리 조 장인은 ‘화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화류란 빛날화(華), 석류나무류(榴)로, 500년 이상된 모과나무를 뜻한다. 속살이 불그스름한 색을 띠며 아주 단단해진다. 희소성도 있으나 강한 압박과 충격에도 손상이 가지 않아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이름난 장인들도 화류목을 물속에 가라앉혀 물을 먹인 상태로 톱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마른 상태로 톱질하다 상할 것을 우려한 탓이다. 조 장인은 이런 화류목을 손쉽게 다루기에 타 소목장과 달리 ‘화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무형문화재 전승 위해선 지원 절실

조 장인은 뛰어난 예술성과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뒤를 이을 제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광주시 전통문화관에서 무형문화재의 고유함과 우수성을 알리는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를 개최하며 관심을 촉구하고 있으나 반짝 관심일뿐 예향 도시에 걸맞는 대우는 사실상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동구 소태동에 있는 작업실이 도로하천 확장공사를 하며 철거됐는데, 아직도 이전비용이 지급되지 않아 5년째 임시 작업장을 운영 중이다. 전수관이나 공예전시장 등을 갖추고 있는 타 지역 무형문화재와 판이한 대우다. 임시 작업장은 목재를 관리하기 위해 냉난방이 불가하다.조 장인은 “무형은 유형이 있어야 반드시 태동을 하고, 유형은 무형의 움직임이 있어야 존재한다”며 “소목장 기술을 후대까지 온전하게 이어져 문화자산이 전승될 수 있도록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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