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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 80년 5월 광주와 닮은꼴
2021년 03월 21일(일) 21:51
강성수 논설실장 겸 월간국장
1980년 5월 광주. 이 시기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광주 인근 담양에서 통학했던 터라 5·18이 터지기 전날인 17일 오전수업까지 마치고 귀가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오전수업 이후 급하게 교실로 들어와 오늘 수업을 이걸로 마친다며 종례를 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라.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시골이 고향인 학생들은 모두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지시나 언급이 있기 전까지는 등교하지 말라. 가급적 빨리 집으로 모두 내려가라.” 이는 담임선생님의 5·18을 앞둔 다급한 마지막 전달사항이었다.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계엄군은 이날 오전 이미 투입돼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민사회 민주화 지지 선언-

80년 3월 초 개학을 하면서 필자는 20~30분 거리에 있는 담양에서 시외버스로 통학했다. 개학하자마자 인근에 있는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시위에 나섰다. 시골뜨기 촌놈이 광주로 유학(?)을 왔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 얼떨떨한 모습 그 자체였다. 1979년 10·26 사태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 이후 우리나라 사회는 그야말로 어수선했다. 혼란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 듯하다. 이런 분위기에 공부한답시고 책을 붙잡고 있어도 머릿속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거의 한 달을 집에 틀어박혀 중간고사를 준비했다. 광주가 겪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으로서의 짤막한 기억을 잠시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41년이 흐른 지금, 광주 민주화운동이 미얀마에서 재현되고 있다. 군부 쿠데타에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진 것을 보면 어찌나 닮은꼴인지. 어떻게 보면 너무 흡사해 무섭기까지 하다. 미얀마 군부는 불복종운동에 나선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있다. 심지어 시민들을 향해 총격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학살 만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자국민을 향한 조준 사격, 무자비한 폭력, 언론 통제, 특수부대 투입 등 2021년 미얀마는 1980년 5월 광주의 판박이다.

광주 시민사회는 미얀마의 민주화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5·18을 다시 보는듯한 미얀마 저항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사회·종교계의 연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장과 5개 구청장은 최근 성명을 내고 5월 광주정신으로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군부의 강경 진압에 깊은 우려와 함께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한 권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광주시의회도 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부는 학살 만행을 중단하고 민주주의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은 5·18 민주광장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며 적으나마 성금을 전달했다.

광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반대와 민주화 지지 및 무차별 살상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민중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요청했다. 또 국제사회와 유엔(UN)에 대해서는 미얀마 국민 보호와 시민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민심은 곧 천심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의 미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도 적극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얀마 군과 경찰의 폭력적 진압 규탄과 함께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민주인사들의 석방을 강력히 촉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미얀마 사태로 41년 전 광주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얀마 국민의 열망을 성원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미얀마 폭력 사태에 대응하고, 민주주의와 국제질서 확립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서한문을 보내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주지하듯 불법과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행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민중들의 반대 의지와 시대적 흐름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우리나라 신군부 정권도 결국 역사적 정의의 심판대에 올려져 처벌받았다는 점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1980년 5월과 4년 전 광화문 촛불 정신은 불의에 항거한 민중들의 봉기였다. 또 올바른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 전 세계 민주적 양심 세력들이 연대해 미얀마 사태가 5·18정신으로 극복되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민심은 곧 천심이다.
/강성수 논설실장 겸 월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