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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옥장 장주원
2021년 06월 28일(월) 14:41
옥장 장주원 선생
[한국의 명장]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옥장 장주원

“‘신의 기법’ 옥공예 종주국 될 수 있다는 방증”
환주기법·회전관통기법 등 창안‥전 세계 유일 구사
중국서 ‘특급대사’ 칭호…3D프린트 보다 섬세한 경지
인내심·열정 타의 추종 불허…국가적 지원·관심 절실

옥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옥새, 옥좌 등에 사용될 정도로 진귀한 대접을 받았다. 재료도 구하기 어려운 데다 하나하나 갈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과 고도의 예술성, 집중력을 가진 공인만이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인조 옥 생산으로 그 명맥과 가치가 희미해졌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했던 국내 옥공예가 목포 출신 장인의 집념과 자긍심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그만이 구사하는 세계 유일 기법에 끝 모를 창의력과 예술성을 더해 옥공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옥장 장주원 선생을 만나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 귀화 요청 받는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목포가 낳은 옥장 장주원 선생(83)은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욱 뜨거운 찬사를 받는 예술가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환주·환옥기법’과 ‘고리연결기법’, ‘회전관통기법’ 등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십여 년 전 완성한 작품 ‘녹옥사귀용문해태향로’, ‘반가사유상’ 등은 현재까지도 정확한 감정가를 매길 수 없을 정도다.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장 선생의 위상은 옥공예 종주국이라는 중국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난 2015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옥공예 콘테스트에 참가해 중국 정부로부터 옥공예 최고 명예인 ‘특급대사’ 칭호를 받았다. 국보급으로 대우받는 특급대사는 중국인이 아닌 인물이 처음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8점을 출품해 대상과 금상, 은상, 창작상 등 5개 분야에서 수상했다. 대상을 받은 ‘삼원관통향수병연결목걸이’는 특기인 ‘고리연결기법’, ‘회전관통기법’을 사용해 만든 목걸이다. 향수병 내부가 비어 실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데다 연결한 줄은 하나의 원석에서 발굴하듯 이어져 당시 감정사와 경쟁자들이 “신의 기술이다” “진정한 천공(天工)이다”는 평을 내렸다. 중국에는 옥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이가 8만여 명을 넘어섰고, 이중 3만 명 이상이 옥 기술자로 인정받지만, 장 선생만큼의 기술을 구사하는 이가 없다.
아직까지도 장 선생이 구사하는 다양한 기법들은 중국에서 구사하지 못한다. 3D프린트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는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옥공예 전문가와 대부호가 수십, 수천억을 제시하며 귀화 제의를 해왔다는 게 장 선생의 전언. 그러나 중요무형문화재로서 다른 나라의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 전세계 유일 옥공예 기법 창안

‘녹옥사귀용문해태향로’
세계 최고 수준의 옥공예 기법을 구사하는 장주원 선생이 되찾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옥 종주국’ 타이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석기시대부터 옥을 다뤘던 역사가 있지만, 국내 옥공예 명맥은 흔적이 전무했다. 여기에 옥 종주국은 중국이라는 통념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장 선생은 국내 사료를 전부 탐독한 뒤 대만의 고궁박물관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큐레이터가 “중국 옥공예가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며 사슬 목걸이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오기가 생겼다. 관람객들을 속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눈에는 보였다. 불완전했다. 줄의 처음과 끝 고리를 원석에서 연결시킬 수 없어 금붙이를 사용해 눈속임을 했던 것이다. 장 선생은 “옥공예는 하나의 돌에서 작품을 완성 시킨다. 다른 돌에서 떼어다 붙이거나 잇지 않는다. 그게 원칙이다”며 ‘고리연결기법’을 창안해낸 비화를 설명했다. 하나의 원석에서 완결 고리로 사슬목걸이를 만들어내고, 또 그걸 엮는 더블체인까지 실현해낸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 얇고 가늘게, 작게 만들어내는 초정밀 기술을 선보였다. 중국 공예가들이 몇십년은 따라오지 못할 기술을 구현해냈지만 옥에 대한 애정과 도전 정신은 거듭 새로운 기술들을 탄생시켰다. △구슬 속에 또 다른 구슬을 빚어내는 ‘환옥기법’ △해태와 용의 입안에서 여의주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환주기법’ △옥 내부를 파내 주전자나 향수통 등에 액체가 담기는 ‘회전관통기법’ 등이다. 그는 “원석의 결이 질겨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옥은 어떤 보석보다도 훌륭한 재료다”고 설명했다.

◇ 옥공예 전수 끊임없이 이어져야

황옥 원형 좌식 관통 주전자 세트
옥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남다른 인내가 필요하다. 모든 원석에는 자연에 의해 생성된 결이 있다. 옥 역시 결이 있다. 하지만 숨겨진 결의 형태를 예측할 수 없다. 단면을 잘라 확인해야만 한다. 아무리 비싼 값을 주고 돌을 사 왔어도 100% 쓰이는 법이 없다. 사면이 깨끗하게 발견돼 밑그림을 그린 뒤 작업을 시작하더라도 내부에서 미세한 균열이라도 발견되면 작품은 파기된다. 밀리미터(mm)단위로 정밀한 작업과 창의성이 필요한 공예의 특성상 다른 요행은 바랄 수 없다. 또 세계적으로 발굴되는 종류 3천5백여 가지 중 공예에 쓰일 수 있는 재료가 50여 가지에 불과하다. 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선택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장 선생은 “옥의 매력이 그것”이라며 “옥과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창안해낸 기술들이 나오기까지도 수십 년 이상이 걸렸다. 쪼거나 붙이는 과정 없이 갈아내기만 하는 전통 옥공예 방식을 사용해 공정 시간도 오래 걸린다. 오로지 옥을 갈아내는 연마기나 그라인더 등으로 수천, 수십억번 반복해 작업할 뿐이다. ‘회전관통기법’으로 만들어지는 옥공예 제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곡면까지 갈아내기에 세포 하나까지 곤두세워야한다. 장 선생은 여전히 하루 스무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린다. 불가사의한 인내심과 열정, 장인정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월급까지 주며 제자를 키우려 노력했지만 모두 떠나고 20년 이상을 함께한 제자 한명만이 남았다. 몇 년 전에는 보다못한 막내 아들 장 석씨가 합류했다. 스승 없이 시작해 그 어려움을 알기에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옥공예에 평생을 바쳤고, 공예분야에서는 처음으로 화관문화훈장까지 받았지만 국가의 지원은 전무하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제 문화영역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옥공예 기법이 있다는 것은 자긍심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옥공예 종주국이 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옥에 한평생을 바친 옥장 장주원 선생의 외침이 여전히 귓가에 선하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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