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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기의 건강백세] 서리의 추억, 살구와 비파
2021년 07월 27일(화) 16:27
이미지출처 아이클릭아트
[안수기의 건강백세] 서리의 추억, 살구와 비파

‘서리’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다. 서리란 무리를 지어서 남의 곡식이나 과일 또는 가축 등을 훔쳐서 먹는 놀이다. 수박이나 참외 등을 서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근처 동네에서 먹고 싶었던 과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또래들 사이에 연대감도 공유하면서 담력도 키우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여름날의 열대야에 원두막 아래에서 수박을 서리하는 묘미는 짜릿함 이상의 흥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 속 앨범이다. 매미가 울기 전 과일들을 만난다. 만물이 온통 푸르기에 수줍은 듯 내민 노란색 과일들이 반갑다. 아마도 여름에 선보이는 과일의 선두자리는 살구와 비파가 아닌가 싶다. 병원의 정원에서 살구와 비파나무들이 제법 많다. 살구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비파는 온도가 높은 남쪽 지방에서만 자란다. 노란색에 투명한 껍질 등이 생김새가 얼추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확연하게 구분되어진다. 여름철에 이들 열매가 맺히니 고마울 뿐이다.

지금이야 모두가 풍부한 시절이라 과일도 넘쳐난다. 보릿고개 시절에는 과일이야 말로 신의 축복이었다. 배고픔이 끝나간다는 희망의 열매였다. 그래서인지 일찍 익는 살구나 비파는 간식으로 요긴했다. 이제 풍요의 시대에는 이들에게서 건강을 본다. 과일이 약으로 응용하기는 이만한 것도 만나기 힘들다.

살구의 과육을 먹고나면 핵이 남는다. 마치 복숭아 핵의 축소판 같다. 겉껍질로 덮여있다. 조상들에게 이 씨앗은 중요한 약재 중에 하나였다. 바로 살구 씨인 ‘행인(杏仁)’이다. 납작하고 심장 모양의 황갈색의 씨앗처럼 생겼다. 흔히들 행인을 은행나무에서 채취하는 은행(銀杏)으로 착각한다. 아마도 은행에서 쓰는 행(杏)자와 같아서 혼돈한다. 사실 행(杏)이란 글자는 살구나무를 의미한다. 오히려 은행이 ‘하얀 은색의 살구’란 의미로 살구나무에서 이름을 빌려 지은 것이다.

행인은 호흡중추에 작용하여 가래를 삭이고 천식을 치료하며 염증을 없앤다. 전문용어로 화담지해평천(化痰止咳平喘)의 한약들 중에서 대표적인 약재이다. 마황과 행인 감초 석고 등이 들어있는 마행감석탕(麻杏甘石湯)이란 처방은 천식이나 상기도 감염 등에 응용된다. 주로 열이 나면서 가래가 끓고 천식성 기침 증상에 쓰는 처방이다. 현대의 약리적 실험에서도 호흡중추를 억제하여 가래를 삭이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행인은 장을 매끄럽게 하면서 변비를 없애준다. 전문용어로 윤장통변(潤腸通便)의 효과가 있다.

비파는 주로 제주나 남부지방에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되어 있다. 비파는 민간약으로는 버릴 데가 없는 나무다. 다만 한의학에서는 주로 비파 잎이 한약재로 쓴다. 비파엽(枇杷葉)은 정식 한약 명칭으로 주로 호흡기질환과 위장질환에 응용한다. 가래를 삭이고 천식을 해소하며 건구역질이나 상복부의 팽만 또는 트름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사실 한의학에서는 비파 열매는 언급이 많지 않다.

행인과 비파열매의 항암작용이 세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씨앗들이 항암과 체내 면역력을 높인다는 민간의 지식과 인터넷 덕분이다. 특히 암환자들에게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살구는 흔한 편이지만 비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다. 그런데 그린병원 정원에는 오래된 비파나무가 제법 많다. 병원이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방직공장의 기숙사를 개조하여 만들어진 덕분이다. 소문 때문인지 이쯤에는 비파가 수난이다. 노란 비파 열매를 관상하고 싶었다. 그런데 노란 색이 보이기도 전에 하나 둘 사라진다. 분명 어제까지도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는데 아침에 보면 사라진 것이다. 암병동에서 요양하고 계신 암환자를 대상으로 비파에 대해서 일천한 지식으로 자랑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암을 낫고 싶은 심정에 남들이 차지하기 전에 먼저 감행(?)하신 듯하다. 이런 때는 먼 곳을 봐야 한다.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어릴 때 수박을 서리하는 아이들을 대했던 원두막의 주인장처럼 말이다. 올 여름의 비파도 맛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왜 이리 덥나? 매미가 곧 울 듯 하다. 맴~맴, 그 맴이 내 맘이여!



한의학박사 그린요양병원 대표원장 다린탕전원 대표 국무총리상 수상 원광한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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