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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3겹의 액자 속 어른들을 위한 분홍빛 동화
화려한 색감의 달콤한 영상미
치밀한 구도와 비율의 설계도
동유럽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2021년 08월 05일(목) 14:34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컷. /출처=㈜피터팬픽쳐스·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은 액자식 구조와 회상을 통해 세계대전으로 쇠락해가는 유럽의 낭만적 시절을 반추한다. 그리고 시각을 자극하는 달콤하면서 선명한 분홍빛 색감으로 영상미를 끌어올린다. 특히 화면 비율의 변화, 평면적 구성, 대칭적 구도 등 치밀한 설계에 따라 독특하게 전개된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판타지적 이야기는 동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어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
영화는 가상의 나라 주브로브카에 위치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배경이다. 이 호텔 지배인 구스타프의 연인이자 대부호인 마담 D가 호텔을 다녀간 뒤 살인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담 D는 유언에 가문 대대로 내려온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연인인 구스타브에게 남긴다. 유산을 탐낸 아들의 모함으로 구스타브가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호텔 로비 보이 제로, 빵집 아가씨 아가사와 함께 모험담을 벌인다. 겹겹이 벗겨낸 이야기를 거쳐 이민자 소년 제로가 호텔을 소유하기까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는 액자식 구조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한 소녀,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을 쓴 늙은 작가, 그 작가가 젊은 시절 들었던 제로의 이야기다. 결국, 구스타프와 함께한 제로가 말년에 호텔에서 만난 작가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작가가 책으로 썼고, 그 이야기를 소녀가 읽고 있는 구조다.

즉, 관객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점은 1985년, 작가가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점은 1968년,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은 1932년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3개의 액자로 설계된 도면이다.

이를 위해 분장과 소품 등을 활용해 3개의 액자 속 시대를 표현한다. 더욱이 배경이 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 시대에 유행한 화면 비율을 다르게 사용한다. 1.37:1, 1.85:1, 2.35:1 비율을 바꿔가면서 관객에게 그 시대를 느끼는 체감지수를 높인다.

절벽에 위치해 케이블카를 타야 도착하는 신비롭고 화려한 호텔은 유럽의 전성기를 상징한다. 반면 살인 사건에 휘말린 인물의 갈등과 예쁘게 포장된 잔혹한 이야기는 유럽의 위기를 암시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구도다. 시각을 자극하는 선명한 색감, 장면과 장면이 오래된 필름처럼 묘한 연결로 붙어 있는 흐름,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정리된 구도가 그것이다.

또한 영화는 화가 클림트와 강한 구속력과 결속력을 가진다. 사건의 동기가 된 것은 사과를 든 소년이란 작품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영화에서는 별다른 의미나 기능은 없다. 오히려 의상과 배경 그림에 숨어 있는 클림트와의 관계성이 주목받는다.

구스타프가 마담 D의 방을 정리하는 장면에서 너도밤나무 숲 Ⅰ, 자작나무 숲 Ⅰ, 카머 성의 공원길 등 3점의 클림트 풍경화가 나온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마담 D의 방에 들어오는 장면에 나온 엘리자베스 바호펜 에히트 남작부인 그림도 클림트의 후반기 작품이다. 또 마담 D가 입은 벨벳 코트 역시 클림트가 사용한 삼각형이나 식물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클림트 작품이 영화 속에 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영화 시점과 의미에 가장 적합한 화가가 클림트다. 동유럽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상징한다. 영화 속 주인공 구스타프와 같은 이름과 취향은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부다페스트는 영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러니다. 반대로 가상의 국가, 가상의 전쟁, 가상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현실적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 시대를 제외한 모든 설정이 가상에 기반을 둔다.

더불어 유산을 둘러싼 유쾌한 모험담은 분홍색 호텔 외관처럼 풍자와 향수, 쓸쓸함 등 여러 정서를 담아낸다. 다른 시각에선 영화 한 편에 20세기 현대사를 담은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거나, 나치와 파시즘에 대한 풍자로 읽힐 수 있다.

과거는 추억할수록 그리움이 된다. 영화는 세계대전으로 쇠락해간 유럽을 돌아보면서 낭만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호텔 이름이자 영화 제목인 부다페스트를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그리워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그는 나치의 박해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가 영화 속 숨은 주인공일 것이다.

◇영화 속 클림트와 에곤 실레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영화 속 동유럽에 대한 향수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는 황금색의 황홀하고 몽환적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의 삶도 그림처럼 기인적이다. 특히 그림 주인공은 대부분이 여자다. 그림 속 여자는 관능적이고 풍성하고 아름답다. 그는 여성을 지독히도 사랑한 화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도 작품만은 천재적이다. 작품 속에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일부 평론가는 그를 퇴폐적 에로티시즘이라고 비난을 한다. 하지만 클림트는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천재 화가다.

그는 수수께끼 같은 화가다. 생전에 한 번도 자신의 그림에 관해 설명한 적도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사생활마저 철저히 숨겼다. 그의 그림은 자유와 여성 그리고 황금이라는 적절한 안배가 묻어나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속 사과를 든 소년이란 그림을 들고 도망칠 때 대신 걸어놓은 그림이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작품이다. 그의 그림은 색감이 어둡고 분위기는 눅눅하고 암울하다.

특히 그의 그림은 주로 마르고 뒤틀린 육체들이 뒤엉켜있다. 주인공들은 볼품없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당당하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골적으로 확신에 차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적이고 성적인 부분을 대범하게 묘사한 표현주의 화가다. 실레는 스승인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선보였다.

영화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강한 구속력과 결속력을 가진다. 영화 주인공의 이름마저도 구스타프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도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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