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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린 세 상

호남의 '고통체'
익숙한 삶의 안주 성찰해야
시민들 스스로 깨어나길

2021년 08월 08일(일) 16:54
남편으로부터 매 맞는 부인들 가운데 일부는 왜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함께 사는 것일까. 남편 구타가 견디기 어려워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삶의 개척이 어렵고, 가진 돈도 넉넉지 않아 그냥 폭력을 당해도 차라리 그 편이 살기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란 얘기를 듣곤 한다. 일견 이해가 되지만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렁텅이에서 떠났으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 걸, 그러지 못하는 데는 우리 사회에 마땅한 안식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 구타를 견디겠다는 쪽을 택한 부인의 삶은 불행하게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 희망을 더 이상 일구지 못하고 그냥 주저 않기에 그렇다. 사실 우리 삶이 곧잘 이런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저러한 미래 도전이 성가시고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불안정하고 불안하지만 익숙한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뿐 아니라 회사의 조직, 지역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 운영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장래 불확실성 때문에 현재의 정책에 집착하거나 이를 안일하게 추진할 경우 개혁 또는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의 고통이 다가올지 모를 고통 또는 위험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일이 장기화하면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소위 '고통체'가 개인, 거대조직에 생겨 고착화될 수 있다. 매 맞는 부인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고통체가 조직 내에 형성되면 그 조직은 좀체 개선되기 어렵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저항이 클 것이며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발전은 난망이다.

호남이란 지역공동체도 큰 틀에서 어떤 고통체에 빠져 있거나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지역 발전에 장애가 되는 구습의 틀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차별과 소외를 받는 호남이 국토균형발전을 외치고 국책사업과 예산 분배의 균형을 촉구하지만 번번이 실패할 때 호남인의 입장과 생각은 어떤 것인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좌절과 실패의 덫에 빠져 드는 건 아닌지, 그러면서 새로운 삶의 개척에 의욕을 잃어가는 악순환을 겪는 것은 아닌지 한번 짚어봐야 한다.

물론 최근 달빛내륙철도 건설과 같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 국토부 국가철도망계획에 빠져 있던 사업을 광주시의 집요한 요구와 설득으로 마침내 반영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고속철도가 경유하는 지자체들의 공동 협력 같은 각종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광주시의 공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혜안과 강한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이 건설 사업이 끝내 좌초됐다면 호남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개탄하면서 익숙해진 소외의 씁쓸함, 특유의 고통체에 젖어 들지는 않았을까.

이런 고통체를 깨는 것은 아무래도 '깨어 있는 자'들의 몫이다. 고통을 받고 있는 자, 스스로가 갇혀 있는 고통체로부터 벗어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하다. 남편으로부터 매 맞는 부인이 탈출했지만 삶의 개척이 쉽지 않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가이드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가 지도자와 자치단체장, 지역 정치인, 각계 대표의 역할은 막중하다. 학계를 포함한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모두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깨어 있어야 할 이들 지도자가 자기 영달만을 바라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가일층 고통스럽지만 결국 시민 스스로가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고통체를 탈피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구타하는 남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새 삶을 꿈꾸는 부인의 몸부림처럼 때론 처절해야 한다. 자신과 지역공동체, 도시 번영을 위해서는 익숙해진 차별과 소외란 고통체를 빨리 인식하고 깨야 한다. 본격적인 선거 시즌을 맞아 지역민들이 반드시 성찰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시민들 스스로 깨어 있으면 입후보자들의 인식과 행동양식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정진탄
월간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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