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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4>스포트라이트

사건 방조한 간접 가해자들 묵인하는 사회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 팀 실화
사회 부조리 근본적인 문제 고민
지역사회·언론도 무책임한 방관자

2021년 08월 19일(목) 07:54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는 사제들의 성범죄 자체보다 이를 묵인하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하지만 과장해서 진행하거나 자극적으로 남용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특히 영화는 직접 가해자가 아닌 간접 가해자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사제들의 성범죄 과정보다 오랜 시간 사건을 방조한 변호사, 기자 그리고 침묵하는 지역주민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영화와 다른 접근방식과 진행이다.

영화는 가톨릭교회에서 오랜 기간 벌어진 아동 성범죄 논란을 폭로해 화제가 됐던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이라는 탐사보도 기자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보스턴 글로브에 부임한 마티 배런 국장은 30년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여명의 아이들이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추기경은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다는 칼럼에 주목한다.

이후 마티의 지휘 아래 스포트라이트 팀은 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팀장 월터 로빈슨과 기자 마이클 레젠데스, 샤샤 파이퍼 등은 사건 피해자와 담당 변호사, 신부, 교구청 등을 찾아가 취재를 거듭한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의 실체 일부가 드러났을 때, 마티 국장은 성직자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라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한다. 사회적 부조리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언론의 역할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탐사 저널리즘의 본질에 무게를 둔다. 기자 각자는 담당 취재원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기자들 간 정보 공유를 통해 빙산의 일각이 아닌 빙산을 찾아가는 데 주력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찾아낸 단서들과 가톨릭교회의 인명부를 토대로 약 87명에 달하는 사제 리스트를 작성한다.

취재는 가속도가 붙는다. 사제 한 명 한 명이 아닌 가톨릭 상부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전체 시스템으로 방향을 바꾼다. 영화 속 가톨릭 신부들은 성스러운 언행 뒤에 추악한 이면을 가진 존재들로 민낯을 드러낸다. 그들은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사회적 약자인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접근했고, 성추행과 성폭행을 반복적으로 일삼는다.

결국, 가톨릭교회를 뒤흔든 성추문의 중심에 버나드 로 추기경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 추기경은 아동 성추문을 저지른 사제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다른 교구로 옮기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더욱이 이들이 옮긴 교구에 범죄 사실에 대해 어떤 통보도 하지 않음으로써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사건을 기폭제로 미국 다른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성추문과 조직적 은폐가 드러났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영화 속 지역사회와 언론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무책임한 방관자로 그려진다. 주민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침묵하고 언론도 사실을 외면한다. 영화는 철옹성 같은 보스턴 대교구의 민낯에 접근하면서 간접 가해자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이를 반성하듯 과거 외부인들이 증거를 보냈을 때 사건을 취재하지 않은 보스턴 글로브의 내부자에 대한 궁금증을 영화 후반까지 끌고 간다. 기사가 보도되기 전날 팀장 월터는 이 사건 취재를 무시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고백한다. 무관심으로 방관했던 자신들 또한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스포트라이트는 무대 한 부분이나 특정 인물만을 특별히 밝게 비추는 조명을 말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의 주목이나 관심을 받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의미로 상징된다.

마지막 장면을 가득 채운 전화벨 소리와 자막에 실마리가 있다. 자막은 보스턴과 유사한 아동 성폭행과 비슷한 사례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 걸쳐 있었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이란 거대한 성역을 건드린 영화지만 이런 문제는 한 도시,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앞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많고 방조는 침묵을 낳고 연대는 목소리를 키운다는 것을 상징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첫 기사가 보도되고 스포트라이트 팀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전화벨 소리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전히 그 소리가 귀를 맴돈다.

/사진 출처=㈜팝엔터테인먼트

◇탐사보도와 오프 더 레코드

종이신문의 힘…눅눅한 냄새 그리워



스포트라이트는 인터넷 발달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사라져가는 종이신문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종이신문의 힘은 탐사보도에 있다.

탐사보도는 정치 부패, 기업 비리 등 특정 주제를 직접 조사해 캐내는 보도방식이다. 이를 위해 몇 달씩 매달릴 수 있는 인내력과 기자 스스로 자신과 싸움이 필요하다. 실제 취재부터 보도까지 8개월이 소요됐던 스포트라이트 팀은 언론의 끈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특히 탐사보도는 감춰진 사실이나 현상을 조사 발굴해 세상에 공개한다. 그래서 탐사보도를 분노의 저널리즘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묻혔을지도 모를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독자의 분노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 사회 개혁 수단이 탐사보도일 수도 있다.

영화 속 피해자들이 기자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단어가 나온다.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다. 이 말은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 중 기사화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비공식적인 발언을 지칭한다.

취재원이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면 기자는 해당 내용을 보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거나 취재를 유보해야 한다. 기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적 의무는 없고 지키지 않더라도 법적 구속력도 없다. 하지만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의무이며 서로 간의 신뢰 유지를 위해 직업윤리 상 지키는 것이 예의다.

오프 더 레코드와 혼동되는 단어로 엠바고(embargo)가 있다. 엠바고는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취재원이 기자에게 일정 시점까지 보도 금지를 요청하거나, 기자들이 합의해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또 정보 제공자가 뉴스나 보도자료를 언론사나 기자에게 제보하면서 일정 시간이나 기일에 공개하도록 요청할 경우, 그때까지 보도를 미루는 것과 그 요청까지도 엠바고로 부른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낡은 종이신문의 눅눅한 냄새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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