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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항구’ 리스본(Lisboa)
2021년 08월 19일(목) 16:57
벨렝지구
‘매혹적인 항구’ 리스본(Lisboa)



“삶의 방향이 영원히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은 가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목을 끌지 않는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등장한 명대사다. 이 대사처럼 우리 삶은 순간의 큰 포물선을 그리며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성실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변하며 진정으로 성장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리스본으로 떠났다.



글·사진 건축가 김진환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로 ‘매혹적인 항구’라는 뜻을 가진 도시다.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최고의 위치 조건을 갖췄다. 여러 나라와 교류했던 대항해시대의 자부심과 추억을 갖춘 도시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호스텔로 숙소를 정했다. 호시우 기차역의 한 호스텔에서 침대 한 개를 받아 짐을 풀고, 벨렝지구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이곳은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포르투칼 출신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세상의 끝이란 두려움에도 바다에 문을 수없이 두드려 결국 인도 항로를 발견했고,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항해를 통해 이곳에 들어온 귀한 물건들은 이 나라 경제를 살찌웠고 높은 문화 예술을 탄생하게 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 시대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며 탐험가들의 안식처로 표현된다. 중앙이 텅 빈 2층의 중정식 구조로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생과 사를 가를 항해에 앞서 이곳에서 안녕을 기원하며 빌었을 대항해 시대 선원들을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한번 출항으로 약 300배의 이윤을 챙겨 돌아왔다고 전한데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바치는 재물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앙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은 아름다웠으나 “누구의 땀과 피로 만들어진 성전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2층에 카테드랄은 규모나 화려함이 어떤 성당과도 비교해 빠지지 않았으며 진귀한 보물이 있을 법한 박물관에는 별도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아마 힘없는 나라에서 뺏어 왔거나 헐값에 얻어 왔으리라 생각부터 들었다. 약탈 당한 우리 문화재도 다른 나라에서 버젓이 전시되고 있으리란 생각에 씁쓸했다.
발견기념비
수도원을 벗어나 해안가로 이동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발견 기념비’가 보인다. 뱃머리에 선 엔리케 왕이 용감하게 바다를 향해 큰 함성을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영웅 해양 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바다를 향한 웅장한 조형물이다. 대항해 시대의 상징물과 같은 이 조형물에는 꼭 기억해야 할 그 시대 영웅 14명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탑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망대를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벨렝지구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었다.

해안을 따라 더 올라가면 테주강 하구에서 벨렝 탑을 만날 수 있다. 이 탑은 규모가 커서인지 지하층은 감옥이고 1층은 정치범 수용소, 2층은 리스본을 지키는 포대를 배치했고 3층은 망루와 세관으로 사용했다. 지하층 감옥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아 갇힌 작가, 스페인과 음모를 꾸민 브라가 대주교 등 약 100여 명의 정치범을 수용한 곳이라 한다. 몸을 90도로 굽혀서 들어간 감옥은 만조 시 강물에 잠겨 목만 내밀고 죽음의 공포와 싸웠다고 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자기를 반대한 세력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리는 건 똑같다. 이 탑을 요새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탑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리만 튼튼히 지킨다면 아무도 근처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였으며 조각으로는 바다를 향해 선원들의 안전한 귀가를 염원하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을 볼 수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은 끝이 바다에 접해 있어 시원한 대서양 바람에 많은 시민이 뜨거운 열기를 발하며 연주하고 춤도 추는 젊은이들 해방구였다. 이 광장은 리스본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상점과 레스토랑이 많은 아우구스타 거리로 연결된 개선문은 포르투갈 영웅의 조각과 시계로 장식되어 있다. 승리의 아치라 부르는 개선문 상단에는 왕이 월계관을 씌워주는 조각이 있다. 상인들이 오가는 무역 부두였다고 한다. 포르투갈 상징인 줄무늬 바닥 문양의 호시우 광장은 시내 중심지에 있으며 이 바닥 문양은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 세나두 광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머물던 호스텔이 근처에 있어 아침, 저녁으로 매일 지나던 광장이지만 지금도 만났던 친절한 사람들 기억이 생생하다. 근처의 생선 요리 맛은 여전히 군침을 돌게 한다. 여행에서 보았던 건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잃어지지만 느낌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만든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상조르제 성벽
한편, 리스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상 조르제성은 오래된 성처럼 리스본이 자랑하는 트램을 타고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유럽의 대부분 도시처럼 이 성의 위치가 권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무어인의 지배 시대를 거쳐 아폰수 엔리케가 점령해 캐서린 공주와 영국의 찰스 왕세자 결혼과 함께 우호 협정을 맺을 때 이를 기념하여 성 이름을 영국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에게 바쳤다. 이를 포르투갈어로 ‘상 조르제’라 발음한다. 성 입구 매표소에서 받은 지도를 따라 고성을 쉽게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성을 내려오는 길에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테드랄과 리스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호성인 산토 안토니우 성당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쳤다.

올 여름, 나를 위한 여행으로 리스본행은 어떨까.

상조르제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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